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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경숙 Nov 08. 2023

꽃피는 봄이오면 (3)

2023 아르코 선정작 희곡부문 

3장 - 


순이네가 쟁반에 막걸리와 파전을 가지고 대문으로 들어온다.


순이네     뭣이 이래 절간처럼 조용하데? 형님! 안 계세요? 


시어머니 이마에 흰 천을 싸매고 마루로 나온다.


시어머니   왔으면 들어와.


순이네     아이고, 형님… 머리까지 싸매고 무슨 일이래?


시어머니   어여 와서 막걸리나 한잔 줘봐……


순이네     파전도 금방 구워서 따끈따끈해요. 같이 잡사 봐. 근데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돌도 씹어 자실 만큼 건강한 양반이 이러고 드러누워 계신대……



마루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막걸리를 따른다.


시어머니   사는 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네 (잔을 들이킨다.) 


순이네     내 머리털나고 형님만큼 독하고 강한 사람은  못 봤다카이. (잔을 마시며) 아들 둘을 그래 보내고 내 같으면 지정신에 못살……


시어머니   뭐라꼬?


순이네     (눈치 보고 입을 손으로 막으며) 아이고 이누무 주둥아리… 그때 형님이 정신줄을 놓을까 봐 내가 월매나 신경을 쓰고… 막말로 그때 형님까지 잘못 됬으마


시어머니   멀쩡하게 술 쳐먹고 지금 술주정하는 기가? 어?


순이네     죄송해요. 말이 자꾸 헛 나오네.. 


시어머니   그럴려거든 몽땅 싸들고 가. 


순이네     아휴~ 노여움 푸시고 한잔 받으시오


시어머니   병 주고 술 주고 잘한다~



큰며느리 들어온다.


큰며느리  오셨어요? 근데… 뭐가 그래 잼나시대요?


시어머니  니 아까 장에 간다고 안 했나?


큰며느리  예, 오늘 저녁에 고기 구워서 오랜만에 어머니 몸보신 좀 시켜드릴려구요.


순이네    고기는 어딨는겨?


시어머니  와 빈손이고?



큰며느리 당황해하며 우물쭈물거린다.


큰며느리  아이고 내 정신.. 장바구니를 육숫간에 두고왔나 보네.

시어머니  뭐라꼬?

큰며느리  죄송해요. 얼른 찾아올게요. 


큰며느리 나가고


순이네    요새 더 자주 깜빡하는 거 같네


시어머니  자가 와 저라노… 자도 나이 먹는갑네……


순이네    근데 뭣이 우리 형님 심기를 요렇게 불편하게 했대요?


시어머니  지 아부지 껌딱지 순이는 유치원 잘갔나?


순이네    울 형님 또 말 돌리신다. 그저 속 시끄러울 땐 술이 최고여~ 술이나 한잔하시오.



시어머니 남은 술을 들이킨다.


순이네    아유~ 안주도 자시고 마셔요! (파전을 입에 넣어주며) 자~ 요놈 좀 드시고……


술을 한잔 따라 벌컥벌컥 마시더니 노래를 시작하며 일어선다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우리형 님 술잔은 또 비었는데 채워주는 사람은 어데로 갔나?

뱃고동 소리도 울리지 마세요

하루하루 술잔만 바라보다 한숨 지으며 힘없이 바라보는

술잔은 술잔은 다 모두가 그렇게 다 아하 아하

눈앞에 안주를 핑계로 채워지는 술잔엔 술 인생은 덧없다…


시어머니 노래를 들으며 웃는데



순이네    아이고 우리 형님 웃었다


시어머니  내가 순이네 때매 다 웃네 


순이네    그려요~ 인생 뭐 있대요 그냥 되는대로 살다가는 거지요.  가만 있자. 술을 마셨더니 소피가 마렵네… (슬쩍 귀에대고) 형님 모른 척해요. 흥겨워서 몸 좀 흔들어 댔더니 빤스에 지렸지 뭐요. 헤헤헤……


시어머니  예끼~ 얼른 댕기와


순이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화장실을 간다.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전화벨이 울린다. 따르릉.


시어머니   여보세요. 어 영희네가 웬일이우? 장바구니? 가가 거 육숫간에다… 아이다. 

 거 있어 봐요. 내 얼른 가께. (수화기를 내려놓고) 참말로 가가 정신이 없기는 없나 보네? 


시어머니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대문을 나선다.


잠시 후 순이네 나온다. 빈상을 둘러보며



순이네    형님은 술 먹다 말고 어데로 가뿐노? (빈상에 혼자 앉아 술을 따라 마신다. ) 


고모 한 손에는 캐리어를 다른 손에는 박스 하나를 낑낑거리며 들고 들어온다.


고모        언니~  언니~ 저왔어요……


순이네      누구여? 


고모        우리 언니 어디 갔어요? 왜 남의 집에 혼자 앉아 대낮부터 술타령이래


순이네      거 여 고모네… 제삿날 왔다 간기 얼마나 댔다꼬 또 내려왔대요?


고모        그런 건 알 필요 없고! 이 집 큰며느리하고 우리 언니 어디 갔어요?


순이네      궁금하면 그짝이 직접 알아보시든가?


고모        하~! 이리로 와서 이거나 좀 도와줘요. 


순이네      내가 와 그짝을 도와싸.. 또 무신 봉변을 당할 줄 알고……


고모        진짜 그러기에요!


밍기적거리며 일어난다. 


순이네      (혼잣말로 투털거린다) 에휴~ 여꺼정 혼자 잘 들고 왔으면서……


고모        이거 박스 좀 옮겨줘요. 


순이네      (투덜거리며 박스를 들어본다) 뭣이 들었길래… 이래… 무겁노……


고모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해요!


순이네      아이고 무거버라 허리짝 다 나가게 생깄다.


낑낑거리며 박스를 들고 오는 순이네 앞서 캐리어를 끌고 고모 마루에 가 앉는다.


고모        아휴~ 더워… (막걸리를 발견하고 따라 마시며)

이 집 사람들은 다 어디 갔냐구요?


순이네      준이네가 고기 사러 장에 갔다가 깜빡해가 다시 가고~ 내가 소피 보고  나오니까 형님은 안 보이고… 뭐가 뭔지 나도 모르게따.



전화벨이 울린다. 따르릉.


고모        여보세요… 준이네를 왜 여기서 찾아요. 장에 갔다더니……


뚝!


고모        여보세요… 언니! 아, 먼저 전화를 끊고 지랄이야.


순이네      (혼자 술을 따라 마시다) 말 한번 곱게 한다. 올케언니한테.


고모        아유~ 덥다!


괘종시계 소리가 들린다.

뎅! 뎅! 뎅! 뎅! 

시계 소리에 맞춰 모션 정지.

밤인 듯 무대가 어두워진다.


(음향) 대문을 여는 소리 


시어머니 뛰어 들어온다.

순이네와 고모 얼큰하게 취해 있다.



시어머니       큰아 안 왔나?


순이네         술 묵다 말고 어대로 도망가셨더래요? 


고모           언니~ 저왔어요~


시어머니       큰아 여 다시 안 왔냐꼬!


순이네         준이네 아까 육숫간 간다꼬..


시어머니       거 안 왔다 카더라. 이렇게 늦게까지 안 올 아가 아인데… 어데 가뿟노……


고모           고정하셔요, 언니! 친구라도 만났나 보죠, 오다가.


순이네         다 큰 어른이 길을 잃어버린 것도 아닐 거고.


시어머니 혼이 나간 채 마루로 가서 걸터앉는다


시어머니       모르는 소리, 야가 요새 아무래도……


초인종 소리 ‘딩동’

일제히 대문 쪽을 바라본다. 모션 정지.


(음향) 대문 여는 소리

낯선이 들어서며 종이 쪽지를 보며 중얼거린다.


낯선이         봉산면 신리 465번지면 여긴데... (뒤를 돌아보며) 아지매, 여~ 맞지요? 

 (없는 걸 확인하고) 어대 가뿟노? (대문밖으로 나가) 아지매~


큰며느리를 앞세워 들어오며 


낯선이          보이소, 여가 맞지요?


큰며느리 한쪽 신발은 벗겨지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살핀다.

정지 모션 해제.

일제히 큰며느리 쪽으로 달려온다.


시어머니        야이야, 준이 에미야, 니 이기 뭐꼬.. (큰며느리를 살피며) 우째 된 일

이고……


고모            준이네야~


큰며느리 경계한다.

 

시어머니       야가 와이카노? 아저씨요. 야를 어데서 우째 데리고 오셨는교? 


낯선이         큰길 옆에 민들레빵집이라고 거기서 빵을 하나 가지고 나온 모양인

데, 주인이 도둑이라꼬 하도 난리치는데 지나가다가 보이 이 아지매가 그래 보이지는 않아서 주인한테 빵값 주고 데리고 오는 길이라요.


시어머니       하이고 감사합니다…  야가~ 와이라노.. 근데 우째 우리 집을 알고……


낯선이         손에 이걸 꼭 쥐고 있어서……


시어머니       큰아 글씨체 아이가…… 


고모           자기 집 주소를 왜 가지고 다닌대… 별꼴이네.


시어머니       (허리 숙여) 참말로 감사합니다. 평소에 그런 아가 아인데 오늘 무슨 큰일이 있었나 보네요. 이 은혜를 우째 갚아야 할지……


낯선이         (손사래를 치며) 아~ 아입니다. 아지매가 딱 봐도 멀쩡해 보이던데… 그런 봉변을 당했으니까나 마음이 안 좋을 끼라요… 아… 그럼 저는 이만 가볼랍니다. 어대를 가던 길이라가…


시어머니       아이고 이래 보내가 우짜노……


낯선이       아입니다. 저 가보겠습니다… (급하게 서로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선다.)


순이네         (큰며느리 옆으로 다가서며) 준이네… 괜찮나? 


시어머니       (큰며느리 데리고 들어간다) 하루 종일 힘들었제… 들어가가 좀 쉬면 괜 찮아질 끼라.



다들 걱정스런 눈빛으로 큰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응시한다.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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