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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경숙 Nov 08. 2023

꽃피는 봄이오면 (5)

2023 아르코 선정작 희곡부문 

- 5장 -

 



무대 중앙 훌라후프를 돌리며 운동하는 

고모


옆에서 공기하는 큰며느리




고모          어제는 고무줄 오늘은 공기…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준이네는 좋겠다.


큰며느리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고모지요.


고모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운동을 멈춘다.



고모          엄마야! 준이네 뭐라꼬? (갑자기 사투리) 니 뭐라 했노? 


큰며느리      찔리긴 하나 보네. 

지아비 먼저 보낸 것도 설븐데 

두 아들까지 앞세운 올케네 가방 하나 

딸랑 들고 내려와가 살림방 내노라카는 기

 지정신이면 그래 못하지 아무 생각 없는 기 아니믄 모꼬.



고모          니… 니…  뭐라 카노…  지금…



큰며느리      (아주 태연하게) 왜요? 

참말로 염치없는 짓이다 생각 들면 얼른 짐싸시던가 


고모 (소리를 지른다) 준이네야~!


시어머니 들어오다 소리를 듣고


시어머니      고모 뭐 하는 기라요? 아픈 아한테 소리는 왜 질러요!


고모          방금 자… 자… 하는 소리 못 들었어요?


시어머니 큰며느리를 쳐다본다.

큰며느리 태연하게 공기를 한다.


큰며느리      일 더하기 일은 이, 

이 더하기 이도 이, 삼 더하기 삼은 삼,

 사 더하기사 도 사, 오 더하기 오는 오……

 (중얼거린다)


시어머니      아~ 를 보이소. 

자가 뭐라 캐도 그게 정상이 아닌데……



고모         (답답해하며) 정상이 아닌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시어머니   아유 고모도 참… 운동 그만하고 아침이나 자시러 들어와요. 

              

(무대 바깥으로 나간다.)


고모         (사라진 시어머니를 부르며 뒤따라간다.) 언니~ 




무대 어두워지며 스포트라이트 큰며느리 일어나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큰며느리     (노래)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그러나 당신은 소식이 없고 

오늘도 언덕에 혼자 서 있네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 나서…


준이 씨 나 어제 엄마랑 둘이 나들이 다녀왔어요. 

엄마가 삶은 달걀도 주고 사이다도 주고…


엄마가 민들레빵집 얘기도 해줬어요. 

팥빵을 너무 좋아해가 준이 씨 생각 많이 난다꼬… 

참 행복해 보였어요… 


준이 씨 원하던 대로… 거긴 어때요? 

여기만큼 살기 좋아요?……

(눈물을 훔친다.) 

준이 씨 모르지요?

 세상이 생긴 대로 맨날 똑같이 가는 거 같지만 안 그래요.


 고모 훌라후프 소리도 기분 좋을 때는

뱅글뱅글 끝도 없이 돌고… 

일이 잘 안 풀릴 땐 몇 번 안 하고 툭 떨어져요.


치킨집 사장님도 순이네 아줌마도 

기분 좋을 때 안 좋을 때 엄마 부르는 소리가 입구에서부터 다른 거 알아요?

나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다 알아요…

근데 인제는 그렇게 다 아는 것도 좀 힘드네요


준이 씨는 지낼 만해요?

저…

 인제 그만 준이 씨 곁에 가고 싶어요… 

 엄마도 고모님이 계시고… 

이만하면 준이 씨도 없는 집에 엄마 모시믄서 잘 버팄다꼬 칭찬받을 만하잖아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걸 죽을힘으로 버티가 왔는데… 그래도 되지요?

… (하늘을 올려다 본다.) 


나 알아보겠어요? 

 나잇살도 붙고 주름도 늘고

나 못 알아볼지도

… 아이다. 실망할지도 모르겠네요.

준이 씨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뭐 어때요?

여서 못 이룬거 거기서 재미나게 살믄 되지요……





시어머니 큰며느리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시어머니     큰아야~~ 뭐 하노 밥묵자!


큰며느리     예~


(하늘을 한번 아련히 쳐다보고는 시선을 거둔다.) 


노래를 하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퇴장한다.


큰며느리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그러나 당신은 소식이 없고 

오늘도 언덕에 혼자 서 있네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 나서…




무대 한 켠 밥상에 둘러앉은 세 여자의 모습이 그림자로 비친다.




시어머니    (큰며느리 밥에 고기를 올려주며) 

골고루 무라.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제.



고모가 고기를 집으려 하자 시어머니 손을 탁친다.



시어머니    쫌!


고모        어머! 고기 좀 먹겠다는데 


시어머니    그게 쫌 먹은 거예요? 

아픈 아를 먹일라 캤디 

밥, 고기, 고기, 밥 따른거는

젓가락도 안 가고 


고모        지금 내 입으로 고기 들어가는 게 그렇게 아까워요


시어머니    아까워요


고모        언니!


큰며느리    고기, 고기, 엄마! 고기, 고기 


시어머니    그래 마이 무라 고기

(고기를 집어 큰며느리 밥 위에 얹어준다.)


고모        아휴~ 눈꼴시려 못 봐주겠네.


큰며느리    눈꼴시려, 눈꼴시려.


시어머니    참내~ 아 앞에서 별소리를 다 하네


고모       고기도 못 먹어요. 

늙은 애 앞에서 말도 가려야 해. 

도대체 나한테 왜이래요?


 시어머니    밥이나 자셔요.



큰며느리가 고기를 고모 밥그릇에 올려준다.



큰며느리    고기,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제


시어머니    야 맘 쓰는거 쫌 보이소. 정신만 오락가락하지.

심성 착한 건 하나도 안 변했다 아임니꺼.


고모        병 주고 고기 주고… 가지가지 한다.




작은며느리 캐리어를 끌고 들어온다.




작은며느리  어머니, 형님, 저왔어요. 


시어머니    이기 몬소리고 작은아 아이가?

  


그림자 사라지고 다같이 무대로 나온다.




시어머니     어여온나.


고모         그 짐은 다 뭐꼬? 


작은며느리   저녁은 드셨어요?

어머니, 저 밥 좀 주세요. 배가 등가죽에 붙을라 카네.

낼부터 제가 형님하고 어머니 밥해드릴게요. 



고모        이기 다 몬소리고?

니 여~서 아예 눌러 살 작정으로 짐보따리 싸가 내리왔다 이 말이가?


시어머니    뭐 하고 섰노? 

배고프다메 얼른 들어가라. 

고모는 아 짐이나 좀 받으이소.

내는 밥 차리가 드가꾸마.



고모        (큰며느리를 슬쩍 흘겨보고는) 아유~ 내 신세… 일로도!



시어머니 주방으로 사라지고 고모는 방으로 들어간다. 

무대에는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 둘뿐이다.




작은며느리   (울컥하며) 형님, 착한 우리 형님,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요? 



큰며느리     동생, 동생, 내 동생… 예쁘다.


작은며느리    맞아요. 형님 동생 빈이네… 

우리… 이제 같이 살아요.

 형님이 슬프면 

 나도 슬프고 

형님이 웃으면 나도 기쁘고… 

같이 울고 웃으면서… 

우리 어머니캉 오순도순 그래 살자고요.



큰며느리      동생이 슬프니까 나도 슬프다..


작은며느리    (억지로 웃으며) 

형님 내 안 슬퍼요. 

내 얼굴 봐요. 웃고 있지요. 기뻐서

웃잖아요. 그카이까네 형님도 웃어요.


큰며느리      웃으면 복이 온다. 나도 기쁘다.



시어머니 밥을 차려 내온다.



시어머니      와 그카고 섰노? 


작은며느리    어머니, 힘드시지예? 


시어머니      며칠 쉬었다가 바로 올라가라. 

큰아는 내 혼자 봐도 된다. 

 니 일자리까지 뺏아가민서 그 칼 필요 없다. 


작은며느리    저… 그만뒀어요.

벌써 몇 달 됐어요.


시어머니      그만두다이? 안 될 소리 하지 마라. 

그 좋은 직장을 와? 함부래 여는 신경 쓰지도마라. 


작은며느리    어머니하고 형님 때문이 아이라 

제가 일이 있어가 고만 뒀으이까네 

암 말 하지마이소. 

 

시어머니      야가 참말로……



작은며느리    그거 이리로 주이소… 

점심도 거르고 왔다 아입니꺼…

형님, 어머니, 

얼른 들어가이소.



다들 방으로 들어가고 그림자. 무대는 점점 어두워지다 대사에 맞춰 페이드아웃




시어머니      고기가 다 어데 갔노?


큰며느리      고기, 고기 


고모          기다리다 몇 점 먹은 거 가꼬 너무 하네. 


시어머니     누가 고모 뱃속에 고기 들어가는 기 아까워가 캐요? 


고모         아까운 기 아이모. 아까부터


시어머니     아까부터 얼라맹크로 고기만 무대는 고모 입이 미워서 그라요.


고모         그기 그 소리네


시어머니     됐고, 야들아 얼른 무라. 



(동시에큰며느리     고기, 고기 / 작은며느리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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