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무대 밝아진다.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잘 차려입은 수철이 휘파람을 불며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수철을 발견한 봉숙.
옷에 잔뜩 힘주고 나타난 수철을 신기한 듯 둘러본다.
봉숙 오빠야…… 어데 가는데…… 이래 쫘악 빼입었노?
수철 모른 척해라이.
봉숙 그 언니야 만나러 가는 거가? 사귀기로 했나?
수철 구식이가 아랑드롱 영화 보러 가자 카든데.
봉숙 구식이고 신식이고 일없다 캐라.
수철 구식이 금마 보기보다 괜찮은 놈이데이.
봉숙 보기에도 괜찮더라.
수철 (얼굴을 쳐다보며) 오~~~ 금마 공부도
잘하고 저거 아부지가 무신 국회의원이라 캤는데
엄마는 미국대사관 근무하시고……
니 금마 금수저다. 꽉 붙들어라 이 말이다.
봉숙 오빠야 니가 하도 카니까 그냥 해 본 소리다. 괜찮기는 개뿔.
수철 몰라. 니 생각해서 하는 소린데 평양감사도 지가 싫으모 그만이라 캤다. 알아서 해라.
이때 아줌마 등장한다.
아줌마 봉숙이 아이가.
봉숙 아…… 안녕하세요.
아줌마 여는 버스에서 봤던 그 남학생이네.
수철 안녕하세요.
아줌마 남자는 너거 아부지 빼고 다 도둑놈이라 캤제.
봉숙 이 오빠야는 남자 아닌데예.
아줌마 뭐라꼬? 카모 야가 남자가 아이고 여자라 이 말이가.
봉숙 그냥 아는 오빠야라꼬예.
아줌마 다 그냥 아는 오빠야에서 출발하는 기라.
오빠야 오빠야 쫓아다니다가 일도 나고 그라는 기라.
봉숙 일은 무슨 일요. 그런 일 없으예.
아줌마 그래 장담하는 거 아이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기라. 막말로 야가 니
덥치뿌만 니가 힘이 있나 뭐가 있노. 그날로 인생
종치는 기라.
내가 그래가꼬 영자 아부지를 안 만났나.
오빠야 오빠야 하고 졸졸 따라댕기니까네
월매나 안 귀여븠겠나. 그냥 쎄리때리 덥치뿌가 영자가 떡하니 나와뿌쩨.
봉숙 아줌마!
아줌마 아이고~ 내가 별소릴 다한다. 학생 내가 학생이 꼭 그렇다는 거는 아이고.
수철 아…… 예.
봉숙이 수철에게 아줌마가 없는 쪽으로 가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인을 준다.
봉숙과 수철, 아줌마를 피해 떨어져 가서 선다.
봉숙 오빠야 내가 물어볼 끼 있는데…… 니는 그 언니야가 와 좋은데?
수철 니 누구 좋아해 본 적 없제? 연애를 안 해 봤으면 말을 마라.
봉숙 나도 있거든.
수철 (손을 들어 겁을 주는 시늉) 콱~ 거짓말하지 마라. 니는 요~ 내 손바닥 안이다.
봉숙 치~ 말해 봐라. 그 언니야가 어데가 그래 좋은데?
수철 니 아랑드롱 좋아하제
봉숙 무신 아랑드롱하고 비교하노.
그 언니야를 지금 하늘 같은 아랑드롱 님하고 비교한단 말이가.
수철 말을 하면 그렇다 이 말이다. 니 아랑드롱은 와 좋아하는데?
봉숙 아랑드롱 님의 조각 같은 얼굴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아무튼
전 세계 여인들의 동경의 대상이고,
꿈의 파라다이스 같은 존재……
그기 0.001도 연관성 없는 그 언니야랑 뭔 상관이란 말이고.
수철 카모 그 잘생긴 거 말고, 니 김치볶음밥 좋아하제.
봉숙 안 먹으면 섭섭제.
수철 그건 와 좋아하는데.
봉숙 맛있다.
수철 니 만화책 좋아하제. 그거는 와 좋아하는데.
봉숙 재밌다.
수철 와~ 가스나. 니는 다 이유가 있네…….
봉숙 오빠야 니는 이유가 없다 이 말이가.
수철 빙고!
봉숙 놀고 자빠졌네.
수철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딨노?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봉숙 참 단순해가 좋네
.
수철 복잡한 건 딱 질색이다.
떨어져서 듣고 있던 아줌마가 다시 끼어든다.
아줌마 나도 복잡한 건 딱 질색인데…… 남학생이 그거는 내하고 닮았네.
봉숙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요.
아줌마 봉숙이 니도 남자 보는 눈이 이래 없어가꼬……
들어봐라. 남자는 자고로 단순해야 한다.
복잡하면 여자관계도 복잡하고 주변 정리도 안 되고
만사가 다 복잡한 기라. 이달에는 전기세가 얼마가 더 나왔네.
수도 요금은 물을 얼마나 틀어제끼가 20원이 더 붙었노,
형광등은 저녁 8시 넘어서 키고 밤 10시에는 꺼라.
한번 세수한 물은 모아가꼬 걸레 빨 때 다시 써라.
봉숙이 수철한테 도망가자고 사인을 준다.
아줌마가 수다를 떠는 사이 둘은 몰래 도망을 간다.
(퇴장)
아줌마 여편네가 돈을 벌어다 주면 그걸 쪼개고
쪼개고 아끼가 알뜰살뜰 살림 살 생각을 해야지.
하늘 같은 서방 알기를 지 발톱에 때만도 못하게 생각한다.
그기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꼬?
어? 어? 다 어데가뿟노?
암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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