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된다는 것 - 봄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까지 기숙사조차 경험해 본 적 이 없었다. 수학여행을 제외하고는 19살이 될 때까지 친구들과 2박 이상 외박을 해 본 적도 없었다. 기숙사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교 때 자취를 한 언니 덕분에, 마치 외동딸처럼 공주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아침에는 망고를 좋아하는 내 침실까지 망고를 깎아와서 입에 넣어주는 엄마의 손결에 눈을 뜨고, 저녁에는 하루동안 있었던 소소한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며 먹는 저녁 식사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러한 평범하지만 따뜻한 나날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1년 후 2019년 3월 23일,
캐리어 세 개를 들고 집 밖을 나온 그날이, 내가 세상 밖에 내딘 첫걸음이었다.
한국의 수많은 수험생들이 경험하듯, 나의 한국 대학 수험의 첫 시도의 결과는 실패였다. 하지만 당시 인생 최대의 실패를 경험한 뒤, 우울감에 빠져 있을 새도 없었다. 앞으로 한국에서 재수를 할지, 어릴 적 잠시나마 살아본 적이 있는 미국 유학을 준비할지, 아니면 아예 다른 길을 걸을지 빠르게 선택해야 했다. 학창 시절 배운 거라곤 국영수밖에 없는 나에게 내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생각하는 힘은 없었다. "주변에 일본 유학 보내는 학부모들한테 얘기 들었는데 1년 준비해서 충분히 갈 수 있다더라". 당시 스스로 생각할 힘도 없던 나에게 건넨 엄마의 그 한마디가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은 건 절대 아니다. 당시의 나는 나를 대신해 내 미래를 그려주고 결정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인간으로서 무능한 존재였다. 내 미래를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힘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런 아무 감동도, 깊은 고민도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의 일본 유학생활의 시발점이었던 것이다. 약 1년 가까이 일본 유학을 준비하며 반년 이상은 한국 대학에 대한 미련 때문에 마음을 못 잡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일본 유학시험 (EJU) 일까지 3개월 남았을 시점이었을까, 그제야 위기의식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쉬운 길이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난생처음 공부하는 일본어, 일본어로 공부하는 수학과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지리, 세계사, 일본사는 큰 벽이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다른 일본 유학 준비생들은 1~2년 준비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난 히라가나도 모르는 주제에 왜 겁 없이 일본 유학에 도전한 걸까,라는 자책을 하며, 아무런 설렘 없이, 기대도 없이 공부만 했다. 수능공부 덕분에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힘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그렇게 엉덩이 힘으로, 다행히 지원한 대학교에 합격했다.
그렇게, 캐리어 세 개를 들고 집을 처음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일본 유학이라는 길을 처음 선택할 당시에는 학연, 지연, 그 무엇도 없는 나라에 가서 처음 배운 언어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기에, 아무런 각오도 안된 상태로 일본 유학이 시작되었다. 마치 겁 없이 스카이점프를 하러 올라가서 안전장치를 제대로 차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밀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