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바레, 조센징”

혼자가 된다는 것-봄

by 최수희

일본에 온 이후 처음으로 겪은 상처의 이야기다.

6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 찰나의 순간.


여느 나라의 대학과 같이, 일본의 대학교도 입학 시즌이 되면,

캠퍼스에는 각종 동아리, 부활동에서 부원을 모집하는 선배들의 권유 활동이 시작된다.

약 10미터 정도 걷다 보면 손 안에는 벌써 10장 이상의 부활동 전단지가 쥐어져 있다.

외모가 새내기처럼 보이지 않았던 탓일까, 나는 단 한 장도 받지 못했지만.


각 부활동 들은 새내기들의 정식 입부 전, '체험회', '식사회', '환영회; 등의 각종 교류회 자리를 마련한다.

매일 수십 장의 전단지를 받은 새내기들은 각 학부 라운지에 모여 어느 부활동의 교류회에 갈지, 옹기종기 모여서 얘기를 나눈다. 나름, 그런 자리에서 누구랑 어느 부의 교류회에 같이 가느냐로 앞으로의 대학교 친구들이 정해지기도 한다. 비록 전단지를 받지 못한 나이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같이 대화를 나누며 어디를 갈지 정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두의 일정이 맞았던 부활동, 미식축구부였다.

*물론 선수 말고도 트레이너, 매니저등의 스태프 포지션이 있기에 여학생들이 주로 스태프로 입부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수업을 마치고 미식축구부의 '체험회'에 참가했다.

새내기들을 부활동에 입부시키기 위해 최대한의 친절과 미소를 베푸는 스태프 선배들,

우리 부활동이 얼마나 분위기 좋고 재밌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유난히 활력 넘치는 선수 선배들.

흥이 오른 분위기 속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여기저기에서 스몰톡 하기에 정신없는 새내기들.


그렇게 미식축구 필드에 모인 새내기와 선배들은, 미리 준비된 스케줄대로 캐치볼, 킥(Kick) 대회, 플래그볼 시합, 줄다리기 등의 활동을 정신없이 즐겼다.


물론 아직 일본어가 많이 미숙한 나였기에, 설명을 한 번에 못 알아듣기도 하고 말을 걸어준 선배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나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아직 일본어는 못하지만 한 달 만에 학부에서 친구도 사귀고, 그 친구들이랑 이렇게 부활동 체험회도 오고, 나름 열심히 적응하고 있어!'라고 혼자 되뇌면서.


약 한 시간가량의 체험회의 마지막 메뉴, 줄다리기 시간이었다.

두 팀으로 나뉘어 다 같이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체육대회 생각이 나기도 하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옆에서 몇몇 선배들은 심판을 보기도 하고 줄다리기의 흥을 잔뜩 끓어 올리기 위해 응원의 목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그 수많은 함성과 응원 속에서 들려온 한마디, "간바레, 조센징"


뇌가 멈췄고, 몸이 멈췄으며, 내 귀는 마치 노이즈 캔슬링을 한 것 마냥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내가 지금 들은 게 맞나'. 그렇게 내 귀를 의심하던 순간,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내 귀에 꽂힌 한마디, "조센징, 간바레!".

확인사살이었다.

이번엔 누가 그 목소리를 냈는지 너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내 바로 옆에서, 나를 보며 외쳤다. 분명 나의 반응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그 순간 거기에서,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혹은 줄다리기가 끝나고 "방금 하신 말, 차별적 발언이며 저한테 사과하셔야 하는 거 아시죠?"라고 말할 용기도, 언어 능력도, 그 무엇도 없었다. 나는 그 상황에서 무력하고 무능했다.

'하하'. 나는 아무렇지 않게 줄다리기를 이어나가며 웃었다.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줄다리기를 내가 이겼는지 졌는지도 인지를 못한 채, 텅 빈 내가 서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간바레, 조센징"을 외치고 재밌다고 웃고 있던 그 선배보다,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심지어 웃어 넘겨준 나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싫었다.


6년이 지나 그 누구보다 논리적으로 그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할 정도의 일본어 능력을 갖춘 지금의 내가,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웃어넘기지 않을 수 있을까.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1년 전쯤 엄마가 일본에 나를 보러 왔다.

그래도 엄마가 일본까지 왔는데 좋은 거 먹으러 가야지 싶어, 집 근처 고급 샤부샤부집을 갔다.

가족 단위 손님이 많은 가게였다. 엄마와 나는 한 젊은 부부와 아들 딸이 있는 네 가족 테이블 옆에 앉게 됐다.

메뉴를 정하고 주문 한 뒤, 조용히 대화를 나누던 엄마와 나는, 옆 테이블에서 들려온 한마디에 대화를 멈췄다.


"... 그 사람들이 '조센징 조센징'말하면서..." ,

옆 테이블에서 들려온 대화 내용이었다. 나는 잠시 엄마와의 대화를 멈추고, 어떤 맥락에서 그 단어가 나온 건지 파악하고 있었다. 아마, 아는 사람이 특정 상황에서 조센징이라는 말을 썼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엄마에게 우리한테 직접적으로 한 발언은 아니라고, 설명하려 고개를 들었을 때, 엄마의 표정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앞 뒤 맥락 상관없이, 누가 봐도 한국인인 우리 옆에서 '조센징'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들리게끔 쓴 것 만으로 엄마는 이미 식사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나 또한, 일본까지 온 엄마와의 식사자리에서 엄마 귀에 '조센징'이라는 말을 들리게 했다는 사실만으로 온몸에 힘이 빠지고 또 뇌가 멈췄다.


더 이상 새내기 때의 나와 달리, 유창한 일본어 능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종차별이 그렇다, 적응되지 않는다.

어릴 적 잠시 미국에 살며 겪은 인종차별, 일본에서 6년간 살며 겪은 크고 작은 인종차별.

해외에서 거주한 경험이 많다고 해서 절대 무뎌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도 않는다.


6년이 지나도, '오징어 게임' 줄다리기 장면을 보다가도 그 때가 생각나고,

1년이 지나도록 집 앞의 그 샤부샤부집은 안 가게 된다.

언어능력을 갖추고, 환경에 완벽히 적응을 해도, '조센징' 한마디는 나를 텅 빈 껍데기로 만들어 놓는다.


아마, 목소리를 냈을 때 그들의 반응으로 인해 내가 2차적으로 상처를 받을까 싶어,

그게 두려워서 목소리 내기를 참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을 상대하기보다, 그저 불쌍히 여기기로 했다.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걱정하며 밤을 새울 때도 있는 나로서의 최선의 선택이다.

그들이 두 발 뻗고 잠들지 못하길 바라는 마음에.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안녕, 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