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잖은 프라이드(Pride)

혼자가 된다는 것- 여름

by 최수희

이곳에서 내가 나를 지키는 유일한 수단은, 나의 같잖은 프라이드였다.

조금이라도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만든 프라이드.

견고하지 못해 언제든 무너질 것 같지만 끝내 지켜낸 프라이드.


일본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하며 스스로 결심한 바가 있다.

'절대, 한국인 커뮤니티에 섞이지 않고 일본인 친구들만 사귈 거야'.

다소 극단적인 선택이지만, '넌 유학생이니까..'라며 선긋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정한, 나만의 원칙이자 프라이드였다.


내가 외국에서 한국인 커뮤니티에 들어가 한국인들과 자주 어울려 지내는 것에 대해, 다소 반감과 편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릴 적 미국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 내에서도 'White Bucket'이라고 불릴 정도로 백인 뿐인 지역에서 가족들과 2년 정도 산 적이 있다. 당시의 한국은, 다들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몰라 "it's near Japan"이라는 부연 설명이 필요한 정도의 인지도였다. 그랬기에, 극소수의 한국인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있었고, 주류를 이루는 백인들은 그런 한국인 학생들과 절대 어울리지 않았으며, 보이지 않는 큰 벽이 세워져 있었다. 초등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나는 한국인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아등바등 주류의 친구들과 조금씩 친해졌고, 덕분에 2년 만에 꽤나 영어실력이 늘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언어가 늘고 그 나라에 잘 적응하려면 그 나라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나만의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입학한 이후로 한 계절이 지나 보니, 내 주변에는 일본인뿐이었다.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며 사귄 학부 친구들,

뭐라고 하는지 8할은 못 알아듣지만 이 또한 어떻게든 적응하며 연을 이은 부카츠(부활동) 부원들...

그렇게 사귀게 된 일본인들 사이에서, 나는 꽤 오랜 기간 그저, '한국인 유학생'으로 존재했다.


2019년 8월, 여름방학이었다.

재학 중이던 학부에서 1학년 여름방학 시기에 해외(미국, 호주 등)로 한 달간 유학을 가는 수업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유학 중 유학을 하게 된 셈이다. 일본인 동기들과 일본에서 미국으로 가는.


나에겐 나름의 기회였다.

몇 달간 일본어가 모국어인 사람들 사이에서 짧은 일본어로 더듬더듬 겨우 걸음을 떼다가, 같은 외국어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 만으로, 왜인지 동등해진 기분이었다. 한 달간 같이 홈스테이를 하고, 미국 대학의 수업을 듣고, 영어로 생활을 하며, 다행히도 나의 어릴 적 초등학교 수준의 영어가 도움이 될 때가 많았다.

영어 과제를 도와주기도 하고, 홈스테이 가족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주고, 주말에는 여행을 하며 호텔 예약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미국에서만큼은 '한국인 유학생'이 아닌, '영어를 잘하는 동기'로서 존재할 수 있었고,

나의 그 같잖은 프라이드를 잠시나마 지킬 수 있었다.


오래가진 않았다.

미국 내에서도 수업 이외에 어울리는 건 오로지 같이 간 일본인 동기들 뿐이었고, 하루의 7할 이상의 의사소통은 일본어로 이루어졌다. 새내기였기에, 그 찰나의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싸움, 소문, 사랑, 우정, 많은 것들이 불타오를 수 있었다. 갖은 일들이 일어나며 여기저기에서 소문과 싸움들이 일어나는 와중에, 우연히 내 이름이 언급된 것을 들었다. 누군가의 말을, 악의 없이 전달한 나의 말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그런 나를 향한 한마디였다, "쟤가 일본어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그런 거야,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흔히, 언어가 늘려면 연애를 하라고들 하지만, 아니다.

'분노'보다 빠르게 언어를 성장시키는 트리거(Trigger)는 없다.


"쟤가 일본어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그런 거야,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이 한마디가 내가 꾸역꾸역 지켜온 그 같잖은 프라이드를 건드린 거다. 난 정확히 알아 들었었다. 단지 두 사람의 관계성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말을 옮긴 실수를 했을 뿐. 난 나를 대변하고 상황을 설명하고 함부로 거짓말을 하며 나의 일본어를 폄하한 거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해, 급속도의 언어 성장을 했다. 내가 이렇게 빨리 정확하게 일본어를 내뱉을 수 있었던가.


내 프라이드를 지키겠다는 본능이 내 입에 모터 기를 달아줬다.

그렇게, 나는 나를 지켰다.


흐르는 것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같은 한국인들과 정보 교류를 하며, 조금은 쉽게 나의 첫여름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그 같잖은 프라이드 때문인지 덕분인지,
그 해 여름의 끝엔, '한국인 유학생'이 아닌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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