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도쿄

혼자가 된다는 것- 봄

by 최수희

일본에 살러 온 지 어느덧 6년이 넘었다.

어떻게 벌써 6년이 지났나 싶으면서도, 처음 왔을 때의 19살 내 모습을 떠올리면 그제야 '아, 6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 싶다. 혼자 비행기 타는 것조차 처음이었던 내가, 누군가의 힘을 빌리는 게 어색하고 모든 걸 혼자 하는 게 오히려 익숙한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2019년 3월 23일 안녕, 도쿄

온갖 서류들을 클리어 파일에 한가득 가지고, 하네다 공항에 상륙했다.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 하는 서류, 일본에서 살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한 각종 서류, 이미 학교에 제출했지만 혹시 몰라 가지고 가는 고등학교 졸업 증명서, 학비를 지불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아버지의 수입 증명서..

살면서 나를 증명하기 위한 서류가 이렇게나 많을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굳이 내가 한국인임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너무 당연하게 나의 보호자가 곁에 있었기에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님을 깨달았다.


사전에 준비한 대로, 재류카드를 발급받고, 2주 전쯤 미리 와서 계약해 둔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나의 홀로서기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세탁을 할 때 세제를 얼마나 넣는지도, 섬유유연제는 뭘 사야 하는지도 모르는 생활력 '0'의 상태였다. 물론 본가에 계속 살았다고 해서 모두가 나와 같은 건 아니겠지만, 혼자가 되니 뭘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잡혔다.

그럴 때마다, 나만의 지식인, 나만의 Chat-GPT,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 세제 넣었는데 섬유유연제도 그 위에 부어도 되는 거야?"

"엄마, 순두부찌개 먹고 싶은데 재료 뭐 사야 돼?"

"엄마, 블라우스는 손빨래해야 하는 거야?"

그때마다 엄마는 당장이라도 가서 해주고 싶은 목소리로, 세세하게 설명해 줬다. 아무것도 못하는 딸임을 알기에, 얼마나 불안했을까 싶다. 여태 엄마는 내가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나를 대신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해주고 있었던 건지를, 부끄럽게도 만 나이 19살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처음'이었으며, 그런 처음을 일본이라는 타국에서 해내고 있는 나 자신이 괜스레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6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경제적 지원을 받았던 당시의 내가 마냥 애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나름 매일 수많은 '처음'들을 경험하며,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아기와 같은 성장 속도를 느꼈다.

그래봤자, 떨리는 다리로 직립보행을 하다가 결국 넘어지는 정도였다.


조금씩 직립보행이 가능해졌을 무렵, 벚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3월 말에 일본에 상륙해, 정신없이 1주일이 흐르고, 4월이 되었다.

4월, 일본의 입학 시즌이자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이다.

한국에서 맞춰온 검은색 정장을 입고, 걸음걸이가 어색해지는 정장 구두를 신고, 머리를 단정히 묶고 입학식을 위해 집을 나섰다. 도착한 학교는 입구에서부터 왼쪽엔 엄마, 오른쪽엔 아빠가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신입생들로 가득했다. '나도 엄마 아빠 있는데.. 아니 무슨 입학식에 온 가족이 출동하는 거야...'. 괜히 아침부터 삐뚤어진 마음으로 학교에 들어섰다. 강당에서 치러진 입학식에서는 어째서인지 다들 서로서로 아는 사이들이 많은 것 같았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 혹은 친구의 친구, 혹은 대학 합격 후 아름아름 모여진 합격자들 커뮤니티... 외로웠지만 그러려니 했다.


며칠간 이뤄진 오리엔테이션에서 다행히 말을 걸어준 일본인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에 대해 '예의가 바르고 친절하다'라는 인상을 갖고 있는 것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다들 친절했다. 물론 나를 완벽히 '외국인 유학생'으로 대하고 있음을 느꼈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을 걸어준 친구들과 어울리며 나누며 시간표를 어떻게 짜야하는지 등의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일본어가 전혀 유창하지 않고,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간신히 외운 내가 첫날부터 인싸가 될 건 기대도 안 했지만, 시작이 나쁘지 않다고 느끼며, 나의 첫 봄이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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