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도 고단함도 그저 하얀 눈 속으로
정원의 기억엔 많은 것들이 있다.
지나간 일 년 반의 열정과 슬픔, 그리고 기쁨.
초록의 새싹과 희고 말간 꽃들의 얼굴.
떠난 인연과 남은 인연, 그리고 붙잡고 싶은 기억의 시간들.
그 모든 것이 하얗게 덮고 결국 무로 돌아간다.
손수 놓았던 자그마한 정육면체 돌로 된 소박한 경계석도 보이지 않는다.
꼬마가드너가 두고 온 여름 신발도, 고사리 손으로 쥐던 호미도 보이지 않는다.
나뭇가지를 잘라내던 정원사의 가위와 장갑도 마찬가지.
눈은 그저 한해의 마지막을 그리고 새로운 새해의 시작을 기념하며 내리고 또 내린다.
시간에 눈에 보이는 마디를 새기듯 음력설 전후로 많이도 온다.
모처럼 드문 정원의 설경을 즐기려 하지만, 이제 익숙하면서도 낯선 정원으로 떠나야 할 시간.
새해의 시작은 정원이 고요히 집을 지키며 맞이할 테지.
어두운 밤을 하얀 눈으로 밝히며 정원은 홀로 정원사 없는 새해를 맞이했다.
지나간 봄의 기억은 정원사에겐 그리움이다.
서로에게 충실하고 아름답게 피워낸 정원의 꽃과 새싹을 정원사는 기억한다.
겨울은 후회 섞인 아쉬움이다. 지나간 시간을 모조리 눈에 담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던 정원사가 놓친 기억들은 차가운 눈 아래의 따듯함이다.
직면하지 못한 순간의 아름다움은 오늘도 계속된다.
마치 이틀이면 태양에 녹아 없어질 눈처럼,
아름다움의 순간은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정원사는 알 수 있을까.
그 기억들은 온전히 땅속의 작은 구근이 되어
다음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정원사는 바라보며 그저 때를 기다린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인연도 계절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기억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
*본문 원문은 공모전 확정으로 일부만 남기고 삭제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