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의 가드닝은 스테디가드닝입니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내일을 믿는 것이다
(오드리 햅번)
지금은 어느 집에 입양가서 잘 살고 있을까. 정원사의 첫 반려식물은 "해피트리"였다. 초창기의 가드닝은 화원에 가서 권해준 대로 나무를 골랐다. 위아래 가지가 잘린 뭉툭한 채로 심긴 나무였다. 대량생산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나무>. 그 뭉뚝한 인위적임이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서 입양을 보냈다.
소박하게 시작한 가드닝은 정원사는 방앗간을 들리는 것처럼 화원이나 꽃집을 지날 때마다 한 두 개씩 들였다. 아, 이거도 키워보고 싶고, 저거도 키워보고 싶은데! 희망을 담아, 때로는 충동구매로 조금씩 오며 가며 고르다 보니 가짓수는 점점 늘어갔다. 마치 식물로 이루어진 만물상 같았다. 그때는 내가 뭘 잘 키울 수 있을지 몰랐기에 조금씩 도전하는 시기였다. 한쪽 구석엔 다육이, 한쪽에는 율마와 무명제라늄까지 올망졸망 나란히 있었다. 해가 잘 드는 곳에는 애니시다, 쿠페아, 아메리칸블루, 삼색목백일홍 등의 꽃이 자리 잡았다. 한편에 시작한 조그마한 가드닝은 작은 아파트의 남쪽 베란다는 오롯이 화분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창고살림은 다른 북향의 베란다에 모셔두었을 정도였으니까.
한창 가드닝에 빠질 무렵, 식물도 유행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스타, 블로그에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식물들로 가득했다. 알면 알수록 예쁘고 또 비싸디 비싼 식물의 세계. 그때부터 괜히 일반 화원해서 추천해 주는 흔한 식물들이 촌스러워 보였다. 제라늄도 비싼 유럽제라늄이 이뻐 보였고.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감의 휴케라부터 다양한 초록의 베리에이션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고사리들까지 식물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화면 속의 예쁜 식물을 우리 집 베란다에 데려오면 참 좋을 거 같았다. 예쁘기도 참 예쁘고 선망의 시선이란 게 좋았으니까. 처음에는 침엽수를 모으고 그래서 슈가바인도 데려오고, 휴케라도 제법 데려왔다. 실리오쿠사랑 쿠퍼블로우란 노을빛 빛의 사랑초도 데려왔다. 고사리 종류도 블루스타펀부터 아디안텀까지 제법 모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화원식물을 하나둘 들일 때처럼 다시 정원은 비싼 식물로 가득찬 백화점처럼 되어버린 게 아닌가. 아, 이게 아닌데. 순간 멈칫했다. 휘황한 무늬가 가득한 20만원짜리 "필로덴드론"이 사고 싶어진 순간, 아차 싶었다. 정원사는 식물 구매를 잠시 멈추었다.
결국 정원사의 선호를 파악하지 못한 가드닝은 한때 유행으로 그치게 된다. 그래서 붐이 아닌 스테디가드닝이 되길, 또 유행이 아닌 식물에 대한 책임 있는 가드닝이 되길 다짐하곤 한다.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으면 인연이 되는 식물이 있다. 우선 이미 데려온 식물이 조금 못나지더라도 버리지 않고 다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정원사의 물 주기 습관, 우리 집의 상황에 대해서 사전에 파악하고 키울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이미 들여온 식물들을 잘 길러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재작년 정원사는 아이의 입학과 전학을 거치는 동안 애정했던 식물들을 주변에 나눔 하거나 아님 관리하지 못해 반절 정도는 물마름 또는 과습으로 보내게 되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키울 수 있는 식물의 한계가 있다. 사진 속으로만 남겨둔 추억의 식물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제 함부로 유행 따라 들이지 않겠노라고. 반려식물이란 생명에 대한 책임이다.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키울 수 있을 만큼만 들여보겠다는게 새해 정원사의 목표다.
그래도 아직까지 정원사에겐 위시리스트는 있다. 다가오는 봄에는 새로운 식물을 데려와 심는 게 정원사의 고유한 즐거움이니까. 하지만 이사 온 뒤 빈토분이 많아졌지만 전처럼 서둘러 빈 곳을 채우려 하지 않는다. 하나하나, 조금씩 새로운 야외정원에서 정원사는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본다. 이번에는조금 계획을 갖고 나만의 "아이덴티티"가 살아 있는 정원을 꿈꾼다. 잡다하게 채워진 만물상이나 백화점이 아닌 오롯이 정원사 스스로의 매력이 드러나는 식물이 무엇일지 고민해 본다. 내가 잘 키울 수 있으며 우리 집의 햇빛과 온도 물에 잘 맞는 식물. 매일 보아도 휴식과 평안을 느끼게 해 줄 쉼과 같은 반려식물은 무엇일까. 식물도 유행이 있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식물과 함께 나누는 여정>일 것이다. 정원도 식물도 그리고 사람도.
모든 유행은 지나가지만,
스테디셀러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에게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전달한다.
작가님, 저의 첫 반려식물은 스투키였어요!ㅎㅎ 그 당시 유행이라 데려왔었죠. 지금은 이사를 하면서 나눔으로 보내게 되었지만요. 역시 식물도 주인과 인연이 있어야 하나 봐요. 작가님 글을 읽으며 저에게 변하지 않는 스테디한 가치는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되었어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평안한 밤 되세요!
댓글 감사해요~
첫반려식물의 사진도 이제사 찾아두었네요. 화원에서 권하는 식물들은 그 시절 유행인게 많지요. 키우다 보면 맞는 식물들 알게 되는거 같아요^^ 평안하세요^^
작가님의 베란다 정원도 너무 멋지지 뭡니까^^ 지금의 집앞 정원도 너무 탐 납니다. 글 중에 나오는 식물 중 모르는 식물이 대부분이네요 ㅎㅎ. 나에게 맞는 식물을 고른다는 생각이 새롭게 느껴져요. 저도 그냥 이쁜거, 유행하는 거 사려고 했던 것 같은데, 식물과도 궁합이 있을 수 있겠다 생각해보게 됩니다.
베란다가 진짜 햇빛부자여서 열심히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큰거 같아여. ㅎㅎㅎ 자신이 잘 키우고 또 좋아하는 종류의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행복한거 같아요
선인장도 죽이는 저는 작가님보고 참 반성하게 됩니다~
식물 하나하나에 사랑과 정성을 주실 작가님이 그려집니다♡ 저는 식물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식물이야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결국 또 한그루의 율마를 보냈어요. 그래도 또 도전해보려고 해요^^
여기가 식물 맛집인가요?^^
소문듣고 왔습니다~
헤헤. 저는 연쇄 살식마로서, ㅠㅠ 특히 과습보다는 방치에 그 죄목이 깊은 사람입니다.
이제 봄이 되면 또다른 희생식물을 물색..;;
농담입니다.
봄되면 저도 몇가지 들여보고, 조언도 구해볼게요! ^^ 푸르름이 가득한 정원사님의 정원.
정원사님의 정성스러운 돌봄에 식물들이 모두 해맑아보입니다~
봄되면 꼭 키워보세요. 돌보는 만큼 고요한 보답을 주는게 식물키우기의 즐거움 같아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