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불명 자폐스펙트럼의 슬픔

정원이와 매일 같지만 또 달리 적응합니다.

by 인생정원사 선우

1. 자폐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알 수 없어요.


20대 시절 블라인드 체험이란 걸 신촌에서 했었습니다. 시각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제작에 참여했지요. 틱장애 아동이 주인공인 시나리오의 개발에도 참여했어요. 어떤 영화는 제작에 성공했고, 어떤 시나리오는 개발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제가 자폐아이를 키울 줄은 그때의 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선택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닙니다. 저는 마치 캄캄한 어둠속 길을 걷듯 더듬더듬 아이 손을 잡고 그렇게 자폐를, 자폐아이 정원이를, 그 삶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폐아이의 대부분이 수면장애를 겪지만 잠을 잘못 이루는게 결정적인 시그널은 아닙니다. 정원이의 24개월 대학병원 진료때는 다들 긴가민가 했고 나만 예민한 사람 같았어요. 정원이는 배밀이 네발기기 앉기 걷기는 그냥 그 개월 수대로 했거든요. 어느 부모가 아이의 지연신호를 보고 자폐를 바로 알 수 있을까요? 정원이는 수용언어가 어려웠습니다. 발달지연, 지적장애, 자폐진단, 장애등록, 뇌전증까지 2살부터 9살까지 순차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자폐의 원인, 스펙트럼만큼 원인도 아이마다 다른 거 같습니다. 그리고 발달장애라고 해서 자라지 않는건 아닙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원인을 찾는다 한들 치료방법이 획기적이지 않으면 희망고문일 뿐입니다. 밝혀진 원인은 대부분 증후군의 범주에 속하기에 예후와 신체적 취약점을 아는 정도라 미리 조심하는 게 최선이겠지요. 정원이의 경우, 발달지연, 언어지연과 더불어 전신경련, 서혜부탈장 등 신체 이슈가 이미 있었기에 대학병원에서 유전자 검사 권유를 받았습니다. 아, 그럼 자폐가 유전이 원인인가요? 네, 밝혀진 원인은 유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의미하지요.

여기서 유전자 돌연변이라 함은 (1) 아이의 특정한 미세 중복 또는 결실이 (2) 부모와 다르게 돌연변이로 나타는 건데 저희집은 (1)은 있고 (2)는 없었어요. 이는 자폐가 유전자 단위로 결정되지만 부모로 유전된다는 뜻은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 결정되다’는 뜻입니다. 또한 유전자 단위에서 결정된다는 것은 아이의 후천적 환경이 자폐의 절대적인 원인변수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정원이의 경우, 부모와 아이가 같은 위치에서 미세 중복을 발견되더라도 부모는 자폐가 발현되지 않았기에 돌연변이가 아니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미세중복의 위치가 자폐의 원인이란 논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자폐의 원인은 상세 불명에 가깝습니다.

자폐에 대한 치료도 완치가 아닌 재활, 교육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죠. 평생 교육을 이어가야 할 과제이이기도 합니다. 평생 일정 수준의 재활이 이어진다면 조금이라도 사회 안에서 자폐를 가진 사람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 정원이는 여러가지 스펙트럼을 갖고 있습니다.


정원이는 여러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첫번째 기분좋은 정원이가 있지요.

정원이는 집에서 샤부작 노는 걸 좋아합니다. 아침마다 이불을 돌돌 말구 안나간다고 도망다니죠. 저는 이미 지각일 것 같은 시간이지만 천천히 시동을 켭니다. 밤새 노상에 주차된 차의 시트가 차갑습니다. 출근하는 차들사이로 30분 운전하면서 클래식 라디오를 들으며 등교합니다. 정원이 옹알이가 멜로디를 흥얼거리듯 겹칩니다. 산밑에 자리한 특수학교의 아침바람이 싸늘합니다. 오늘은 하교때 마중갈게! 약속을 남깁니다. 아이는 차에 내려 도도도 1층 현관으로 뛰어갑니다.

정원이를 따라 걷고 먼저 도착한 아이는 날 바라보고 기다립니다. 거꾸로 쓴 아이의 마스크를 고쳐 씌어주고나면 정원이는 열림버튼을 누르고 제 손을 꼭 쥡니다. 엘리베이터를 타서 “뽀뽀”하고 말하면 볼을 쓱 내밀고 웃습니다. 내려서 우측으로 돌면 복도 끝이 정원이네 반. 아이는 손을 잡고 총총히 뛰어갑니다. 머리칼이 삐죽 튀어나온 뒤통수에 편안함이 묻어있습니다. 힘들게 오가는 등교길이지만 이 순간이 우리 둘에게 소중하답니다.


두번째, 웅크린 정원이가 있지요.

학교에 8시 55분에 도착했으나 오랜만에 차에서 안내린다고 해서 이제 등교한 정원이. 귀를 막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웅크리고 있기만 합니다. 이럴땐 나가기만을 원할 때가 있습니다. 차에 타서 흔들리는 곳에서 스쳐지나가는 창밖을 보며 안정을 찾습니다.

어떤 날은 예측할 수 없는 일과가 생기면 그 다음날까지 영향을 받아 '일종의 부팅 오류'처럼 멈추기도 합니다. 그런날은 조금 더 천천히 하루를 준비합니다. 어떤 날은 과부하가 심해져 먹지도 않고 그저 버티는 것으로 저항합니다 그런날은 과제와 할일을 줄이고 조용히 이 격렬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립니다. 힘들지만 버티면서요. 그러나 어떤 날은 불가피하게 하교를 제가 못간 날은 다음날 활동에 약간의 부팅? 리스크가 생깁니다. 그래도 도서관에서 조금 편안히 한숨 돌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교실 입실 완료하지요.


세번째, 과각성이 터진 정원이도 있습니다.

얼마전 아울렛에서 웃음각성이 터져서 이 날씨에 줄줄 땀흘리면서 진정시켰습니다. 만지만 더 웃음이 터지지요. 웃고있지만 조절이 어렵습니다. 기분이 좋아 보이지만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마치 간지럽힌다고 상상해보세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최소 편안한 기분은 아닐거예요. 때로는 아무데도 가지 않는게 낫다 싶지만, 웅크리고 있는 것보단 상처입어도 뭐라도 하나 배우고 겪는게 소중합니다.

무력한 순간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죠. 그러나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또 강한 것이 엄마이지 싶어요. 아울렛에서 바라보면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쓰이지 않았습니다. 정원이가 왜 웃는지,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그것만 생각했으니까. 불행중 다행으로 무심하게 스치는 사람들이 오히려 고마웠답니다.

그밖에도 밥을 어마어마하게 잘 먹는 정원이, 배가 아프면 열흘 간 굶는 정원이, 나가자고 귀를 막고 버티며 현관앞에 앉아 있는 정원이, 아프지만 차분하고 조금 짜증 내는 정원이 등이 있습니다. 정원이의 스펙트럼은 매일 같지만 또 다르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원이가 가진 여러가지 모습에서 그 정도의 차이가 덜 나타나고 아이가 덜 힘들게 해주는 환경을 고민합니다.





3. 적응이란 참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는 것


어쩌면 이 세심한 관리가 아이를 약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적응이란 강하게 키워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적응이란 때로는 참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정원이는 사람을 좋아하고 적절한 도움 1:1이 있었으면 잘 적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조인력을 부모 부담으로 붙여도 유연하지 못한 일과에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정원이는 12교시 특수반, 34교시+점심시간+5교시를 붙여서 생활을 했어요. 장애정도와 통합의 정도는 유의미한 관계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중증장애라해서 무조건 특수학교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심하면 통합교육에 대한 리스크는 분명 있습니다. 왜나하면 현실적으로 개별화란 원사이즈의 옷이었거든요. 그 옷을 잘 입혀주는건 어른의 몫인데 사람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제도는 결국 운이나 인복에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노력으로 메꾸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1학년 5월 전학하고 두달만에 소변을 가렸습니다.
2학년 초 다리를 6주 절었습니다. 원인은 불명이었습니다.
2학년 버티기가 시작됐을 때 학교에서는 소변을 아예 보지 못했습니다.
3학년 초 배가 아프다고 곡기를 10일간 끊었습니다.
3학년 1학기 결석은 1학기에 토탈 30일이 되었습니다.


정원이는 소변을 가린 것이 아니라 그저 참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1-2학년때는 특수학급 인원이 셋이고, 3학년때는 혼자였지만, 늘 적절한 인력은 부족했습니다. 주소지를 옮기고 자리가 있는 특수학교로 올 여름 전학했습니다. 8월부터 지금까지 2학기를 마칠 동안 정원이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교했습니다. 물론 특수학교가 낙원이라든가 이상적인 교육환경이 아닐 수 있습니다. 특수학교에서도 간헐적으로 굶기나 버티기가 나타났지만 그 강도는 1/10로 내려갔습니다. 반면에 아이의 성장은 때로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제 '적응'의 측면에서 물리적인 통합환경이 아이에게는 그저 버티는 것일수 있단 걸 알게 되었죠. 물론, 아이는 성장했습니다. 그저 고통을 수반했을 뿐입니다.

여전히 고통을 수반한 '성장'에 대한 미련은 정원이와 정원이 주변의 어른에게 남아 있습니다. 결국 현실은 아프지 않은 적응을 선택했을 뿐이지만요. 아, 보아야 할 것은 밝히지 못할 과거의 원인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일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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