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아웃

by 인생정원사 선우

젠가

자유는 한정적이다. 엄마는 애써 다른 이의 손을 빌려 자유시간을 만든다. 릴레이를 만들어 겨우 글쓰고 그림그리는 짬을 만든다. 빼곡이 짜여진 시간표는 사실 위태롭다. 정원이 아빠, 활동지원사, 치료사 그리고 학교. 아이는 바톤터치하든 옮겨진다. 아이의 컨디션을 세밀히 관찰하고 공들여 조절한다. 개인의 연대는 한없이 유약하다. 연대의 릴레이를 유지하는 것은 많은 것을 소모하게 한다. 어느 하나 삐긋하면 그 빈 자리는 엄마가 채워야 한다. 애써 만든 릴레이가 끊어지는 게 싫어 무리를 한다. 괜찮아요, 내가 있으니까. 내가 하면 돼. 토막토막 잘라진 시간 위에서 글을 쓰고 아이를 가르친다. 빈 자리를 메꾸다 보면 쉴 시간을 줄어든다. 제거 1순위는 엄마의 자유. 그림을 그릴 공간, 글을 쓸 시간, 병원에 갈 체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 삼켜버린다. 몸과 마음이 잠긴다. 애써 쌓아왔던 탑은 무너져내린다. 다시 세계는 좁아진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나았을텐데. 그랬다면 아프진 않겠지.


테트리스

정원이의 시간표는 테트리스다. 아침에 약을 먹고 학교를 가거나 오전일과를 보내고 점심밥을 먹고 센터를 간다. 한때는 하루에 수업을 다섯개를 들은 날도 있다. 오전에 병원에서 치료를 세가지 마치고 친정집에 가서 점심을 얻어먹고 다시 오후 수업을 두개 한다. 엄마는 아이와 어떻게 놀아줄지 몰라 좋은 선생님들로 연결된 테트리스를 만든다. 그러면 아이가 뭔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경험은 성장으로 이뤄질 거야. 시간표의 빈 공간이 '성의 없음'으로 느껴진다. 그럴 순 없지. 빼곡한 경험치를 위해 앞만 보고 운전을 하고 시간에 맞추기 위해 초조히 움직인다. 대기했던 수업이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오면 다시 이리저리 시간표를 맞춰본다. 월요일 인지 수업을 화요일 이 자리로 옮기면 지금 플로어타임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일단 하자. 조금 무리하다가 편한 자리로 맞춰가면 되지. 난 지금 너의 눈을 보고 있는 것일까. 너는 엄마의 뒷모습만 보는 것은 아닐까.



도미노

아이가 아프다. 젠가처럼 맞춰진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테트리스는 뒤로 미뤄지고 보강으로 더 빼곡해진다. 아프다는 것은 시간차를 두고 도미노처럼 영향을 끼친다. 아이는 아파서 센터에 빠질 수 있지만 보강을 해야 한다. 아프면 빠질 수 없다. 대신 가야 할 사람을 구하거나 그냥 아파도 간다. 어른이니까. 아이의 기회를 엄마의 개인사정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게 쌓인 필사의 균열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쓰러트린다. 몸이 먼저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진다. 애써 지켜왔던 일상도 도미노처럼 함께 무너져 버린다. 그래서 아프면 안돼, 빠지면 안돼, 넌 엄마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 나약함은 허락되지 않는 경주에서는 이탈은 허락되지 않는다. 엄마니까.



돌탑

때로는 불가해한 믿음을 가져본다. 언젠가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늘 끝까지 이 불가능한 탑을 쌓으면 그 정성에 감동해서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내 소명이 아닐까. 마치 헬렌켈러의 '물'처럼 계기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돌은 언제까지고 쌓을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느 순간 쓰러진다. 하지만 하늘에 닿지 않더라도 돌을 하나, 둘 그리고 셋. 작은 돌탑을 여러 개 지으면 어떨까. 작은 꿈을 꾼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작은 성공이겠지, 그럴꺼야.



재활

정원이는 26개월부터 언어재활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쉬어본 적이 없다. 만 7년이 지나서야 지난달 처음으로 센터가는 것을 거부했다. 자신은 수업을 듣고 싶지만 말하는 것이 어려워 하고 싶지 않단다. 이 표현은 보완대체의사사소통기기인 마이토키앱을 통해 한 구절씩 나눠서 묻고 답했다. 한없이 맑아 보이는 아이의 미소 안에는 매순간 부딪히는 좌절이 숨어있었다. 지금은 언어 선생님과의 상의하에 스스로 원할때까지 휴지기를 갖고 있다. 언어 센터에 갈꺼야? 네/아니오. 가면 공부해야 하는데 괜찮니? 네/아니오. 말하는 것이 재활의 전부는 아니다. 거부할 기회를 주는 것. 그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중요하다. 순응이 꼭 아이의 정답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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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수만큼 자폐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각기 다른 빛의 스펙트럼만큼 다채로운

우리의 이야기가 더 멀리 더 깊이 닿길 소망하며,

2026년 2월 정원사 선우 璇雨 올림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