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시간 되시나요? 월요일 오후 1시도 괜찮아요. 조퇴하고 가면 되죠. 자리만 넣어주면 됩니다. 아 그 자리는 벌써 다른 친구가 들어갔다고요? 그럼 저녁 6시라도 제가 가겠습니다. 저녁 먹이고 가면 되죠. 네, 그럼요. 일단 택시라도 타고 가면 되죠. 괜찮습니다. 휴강이 있는 주는 일요일이라도 와서 보강해야 한다고요? 당일 환불 어려운 것은 잘 알고 있어요. 네 그럼요. 알아요. 괜찮습니다. 네? 두 달 분을 선입금이라고요? 네 입금하겠습니다. 두 달 치를 뽑아서 오라고요? 모 센터에서 경험했던 것의 일부다. 결국 두어 달 만에 그만두었다. 그 아이의 발달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던 시간들. 일단 주변에서 좋다고 한 수업은 어떻게든 대기를 해서 비집고 들어갔다. 수많은 시간이 센터 안, 혹은 센터를 가는 길 위에서 지나갔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아이와 함께 갔던 공강의 공원, 손을 잡고 열을 세며 마스크를 씌었던 버스였다.
아, 놀러 온다고? 거기서 만나면 내가 센터 갔다가 상담하고 다시 나올 수 있어. 10분만 혼자 기다려줄래? 수업이 연이어 있는데 상담은 해야 하니까. 고마워. 배려해 줘서. 이렇게라도 봐서 참 다행이야. 고마워. 아이의 치료시간은 40분이었다. 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쉬는 시간이었다. 이렇게까지 센터 근처에 와서 한 약속은 딱 두 번이었다. 밥을 먹고 오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커피 한 잔이라도 하려면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센터를 다닌 시간이 오래돼서 밖으로 다나가도 괜찮을 것 같은 순간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40분은 길기도 했지만 또 짧았다. 웹소설을 보거나, 인터넷으로 장을 보거나 카톡으로 수다를 떨기라도 하면 시간은 금방 지났다. 아, 나왔구나. 아주 비싼 휴식시간인 것만 같다. 아이와 노는 법이 어려우니 이렇게라도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면 되지 않을까.
발달은 정해진 순서와 시간이 있다. 조금 느리거나 빠르게, 그 순간은 기다리면 대부분 찾아온다. 기어가고 걷고 달리기를 한다. 엄마라 부르고 책을 읽고 자신의 이름을 쓴다. 발달에 지연이 있다는 것은 그 기다림이 아주 길다는 것이다. 발달에 장애가 있다는 것은 기다려도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란 당연한 것의 결핍이었다. 결핍이 부재, 부재가 하나의 존재가 되는 시간은 길었다. 그 시간은 '장애수용'이란 말로 압축되었다. 수용이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혹은 사랑이란 힘으로. 때로는 멈춘 듯 보이는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기다리다 보면 부모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있는 것이 익숙해진다. 하지만 아이는 자란다. 아주 미세하게.
오늘도 하교를 기다린다. 등교는 기쁘게 하교는 더 기쁘게. 등교하고 난 뒤의 세 시간은 40분 보다 훨씬 길다. 그 시간을 전에는 커피약속으로 채웠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외로움은 때로는 너무 짙어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 시간을 나를 알아차리고 채우는 시간으로 채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한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달라진다. 성취한다는 기쁨이 기다리는 시간을 채워갔다. 그렇게 나도 달라졌다. 달라진 기쁨의 틀은 조금 튼튼해졌다. 너의 발달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너보다 빠른 발달의 아이들 엄마의 하소연에도 슬퍼지지 않았다. 마음은 휘어질지언정 다시는 부러지지 않았다. 아무도 그 안에 담지 않았으니.
나는 달리기를 하면 늘 꼴찌였다. 자신의 아이를 안고 달리는 달리기 대회가 있다면 늘 꼴찌일 것이다. 정원이를 안고 달리는 나는 늘 다른 이의 뒷모습만을 보았다. 달리기 친구들은 같은 아기를 안고
섰다. 엄마들의 우정은 깊고도 좁았다. 경험은 자신에 아이의 경계에 머물러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베이비 수업에서 다 같이 유모차를 밀던 엄마들은 이제 각자의 길 위에 있었다. 이제 같이 달리는 사람이 센터에서 만난 엄마들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느린 아이의 스펙트럼만큼 엄마들도 다 달랐다. 여전히 난 뒤통수만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아기가 아닌 큰 아이들을 안고 달리는 그녀들을 서로를 볼 겨를이 없었다.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그런 시절이었다.
나는 정원이를 내려놓았다.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달리기 레인 위를 벗어나기로 했다. 아이는 달리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했고, 나는 뱅글뱅글 춤추는 아이의 손끝을 지켜보았다. 그 모습을 기록하고 그렸다. 난 성장했다. 더 이상 다른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않는다. 아이가 춤을 멈출 때까지 기다린다. 아이는 내가 글을 다 쓸 때까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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