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by 인생정원사 선우

명랑 1

조수석의 쇼핑백에는 책 몇 권이 담겨있다. 나만의 작은 도서관, 이동이 많은 나에게 소소한 행복이다. 30분 달려 정원이를 잘 등교시키고, 다시 30분 달려 엄마 집 주차장. 이제 5주 차 외래. 이제 모시고 병원 가야지. 11월 말 엄마가 수술하신 뒤로 조금 더 바빠졌다. 매주 월요일은 운전만 3시간이다. 틈틈이 읽는 책은 머릿속에 바깥공기를 쐬게 해 준다.


명랑 2

스타벅스에 가서 모닝세트를 시켜 할인받고, 원모어쿠폰으로 또 할인받는 게 그렇게 좋다. 깨알같이 만원 안쪽에 커피 두 잔을 득템하고 과일도 얻어가는 기쁨이 날 즐겁게 한다. 어차피 마실 커피니까. 한 잔 했으니, 두 번째 커피는 따듯하게 텀블러에 싸갖고 갈 예정이다. 정원이의 등교가 조금 수월해져서 가능해진 커피타임. 요즘에는 살짝 도서관으로 우회하는 것을 허락해 주면 아이는 세상에 순응한다. 지시수행은 일방이 아니다.


명랑 3

어제부터 8시에 저녁약 먹고 차로 5분 거리 마트에 가서 과자 하나 과일 하나 반찬 하나 사서 오는 걸 정원이랑 시도 중이다. 한꺼번에 장 안 보고 아이 콧바람 쐬어주러. 그래서 그런가 얼굴이 몹시 의기양양하다. 계산할 때 내 가방을 죄다 쏟아서 진땀 났지만 어쨌든 아이가 곤히 잠든다. 육퇴야말로 엄마들의 명랑이다.


명랑 4

명랑함과 우울함은 한 사이클 안에 있다. 명랑함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매 순간 선순환의 사이클에 진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밝지 않은 나 자신, 슬픔을 인정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진짜 명랑의 시작이었다. 지난주부터 정원이와 견과류 믹스를 나눠먹는다. 아이는 건블루베리랑 크랜베리를 요리조리 골라 먹고 난 견과류를 간식 삼아 먹는다. 빵이 먹고 싶을 때 바나나를 먹는다. 몸무게가 1.5kg 줄었다. 기쁘다.


명랑 5

정원의 꽃에 내려앉은 노랑나비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내 안의 맑음을 바라볼 수 있다. 소소한 기쁜 순간을 사진에 담아 그 순간을 기억한다면 한겨울에도 봄을 기억해 낼 수 있다. 다들 정원이는 커갈수록 힘들거라 한다. 부모의 마음에는 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 같은 순간들이 자리한다. 그 순간들은 하나하나 모여 지금을 견디는 봄이 된다. 기억은 현실을 지지하는 힘이 된다.


명랑 6

난 렉사프로 2.5mg을 먹는다. 세로토닌은 선순환의 사이클에 들기 위한 엔진 오일과도 같다. 삐그덩거리는 무감한 일상에서도 신나는 일은 생긴다. 그것은 정말 특별하다. 그 둘은 연결되어 있다. 기쁨과 슬픔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둘 다 그 의미가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긍정이란 타인에게 나의 긍정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확신이란 때로는 덧없는 것이다.


명랑 7

‘넌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고, 앞으로 더 잘 살 것 같아.’ 작년 여름에 만났던 25년 지기 친구 B는 자주는 못봐도 1년에 한 번 본다. 사는 게 바쁘니 평소에 시시콜콜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꼭 내 책을 주고 싶은 사람 중 하나. 출간 소식을 전하니 마침 친구가 지방 학회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릴 수 있단다. 환승하는 동안 1시간 가량 만나기로 했다. 결혼 전 친구들은 수도권에 사는 탓에 정원이 키우면서 옛 친구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와주는 마음이 진짜 감사하다.

친구란 참 좋다. 만나는 순간 20살 그 시절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으니. 그때는 순도 100% 명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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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수만큼 자폐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각기 다른 빛의 스펙트럼만큼 다채로운

우리의 이야기가 더 멀리 더 깊이 닿길 소망하며,

2026년 2월 정원사 선우 璇雨 올림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