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아이의 사춘기. 정원이는 이제 4학년이 된다. 몸은 자라고 있고 사춘기는 호르몬 때문이니까. 이제 싫은 것은 온몸으로 저항한다. 있는 힘껏.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춘기는 자폐아이에게도 어려운 터널이다.
정원이는 매 순간 100%의 힘을 내서 살고 있다. 이 세상은 배워야 할 것이 참 많은데 하나하나 터득하기 어렵다. 다른 또래들이 숨 쉬듯 쉬이 넘기는 과제도 아이에게는 많은 도전이 필요하다. 어떤 과제는 도전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을지 모른다. 저절로 크는 아이들 틈에서 정원이가 삶의 과제를 하나하나 달성하기는 수없이 자신과 타인의 다름을 깨닫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100%의 힘을 내서 겨우 도달한 목표 다음에는 더 어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이 세상은 해내야만 하는 일 투성이니까. 정원이는 150%의 힘을 내다가 방전이 된다. 결국 아무리 애써도 끝없는 좌절을 겪는다. 아이는 포기하고야 만다. 성취해야 한다는 기쁨이 있어야 다음을 이어 나갈 텐데.
새벽 3시. 아이가 깨버린다. 오늘은 여느 날과 다른 밤이었으니 받아들인다. 오래 다니던 언어재활 수업을 가지 않으려 온몸으로 저항했다. 아이의 팔을 확인하니 희미한 멍이 들었다. 이제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남자아이. 나는 허리가 아팠다. 시큰거리는 허리에 파스를 붙인 채 잠든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깨다니. 어쩔 수 없지. 새벽에 두 시간 정도 시중을 드니 아이가 잠든다. 아이를 쫓아다니고 먹이고 재운다.
사춘기 워밍업 중인 정원이의 몸은 사춘기, 아마 마음은 미운 네 살쯤 되는 듯하다, 폭풍처럼 밀려왔다가 나가는 그 시간들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사실 그간 공부했던 것은 잊어버리고야 만다. 하루가 아닌 한 시간도 견디는 것이 되니까. 무심히 버려둘 수 없는 아이. 그렇다고 이끄는 대로 데려갈 수 없는 아이. 그 아이가 내 아이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에게 가장 큰 고비는 탈출(돌발)과 자/타해다. 정원이가 최근 키도 크고 힘도 세지면서 고집도 함께 세졌다. 온몸으로 배우는 아이의 사춘기, 어떻게 해야 할까. 마냥 아기처럼 생각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여전히, 지금도 발달이 정말 느리다. 어쩌지?
엄마는 아이를 바라보며 욕심을 내본다. 조금만 더. 이것만, 또 저것만 해낼 수 있다면. 아이가 좀 더 자라서 세상을 조금 수월하게 살 것이란 희망을 품는다. 시간이 흐르면 또래와 똑같이 몸은 커지고 할 수 있는 것이 그대로일까 무섭다. 그렇게 되면 아이가 살아갈 세계는 점점 좁아지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욕심을 낸다. 너무나도 고단한 삶에 지쳐 사랑마저 닳아 없어질까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더 배워야지, 더 가르쳐야지. 더 계획해야만 해.
세상은 엄마에게 욕심을 내려두고 자신만의 삶을 꾸리라고 한다. 그러나 매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손잡고 걸어 다니는 모든 일상이 엄마와 아이에겐 도전이고 과제다. 하루하루가 숨 가쁘다. 자신만의 삶을 꾸리는 것이 자신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래 욕심이지, 암만.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바란다. 엄마는 자신만의 삶을 꾸려내기로 엄마는 결심한다. 그렇다 해서 혼자 사는 것은 아니다. 먹고, 자고, 학교를 보내는 정원이와의 일상은 빼곡히 흘러간다. 그 틈에서 자신의 삶을 꾸리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든다.
엄마는 스스로에게 욕심을 내본다. 뭔가를 성취하는 기쁨은 아이에게만 있지 않다. 애써 꾸리고 나서 간신히 즐거움을 맛본다. 엄마이기 전의 나를 상기해 본다. 비로소 살아있는 기쁨을 오랜만에 느낀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이는 종일 기분이 좋았다. 잘 먹고 나자 가고 떼쓰지도 않는 물 흐른듯한 날이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아이는 노상 나가자고 해서 하루에 두어 시간씩 운전을 해야만 했다. 나가는 아이를 붙잡느라 기진맥진 녹초가 되었다.
평화가 온 날은 가르치기보다 그 평화안에서 몸을 누이고 기대기 바쁘다. 뭔가 공부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냥 놀았다. 기분이 좋을 때 뭐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으로 이해하면서도 몇 번 없을 평안한 시간이 좋아서 그만 게으름을 피우고 만다. 머릿속은 실패한 일, 해야 할 일들이 남아 마음만 복잡할 뿐. 주변의 가족을 보면 다들 열심히 가르치고 있구나, 싶고. 이렇게 글 쓰는 엄마는 이기적이 아닌가란 의문이 든다. 더, 더, 더 헌신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조용히 비난한다. 아, 넌 엄마자격이 있는 거니.
가르치다가 상처받거나 좌절하는 게 무서운 것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좌절이 무서워 나약한 평화를 택한 것은 아닐까. 욕심이라며 자상한 엄마라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정원이가 스트레스에 약하단 걸 핑계 삼는 건 아닐까. 아이의 선택의 폭을 넓히려면 꼭 가르쳐야 할 텐데.
"어머니, 아이를 살피셔요. 미래를 생각해서 가정에서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야 해요." 엄마의 에너지는 자신의 삶, 그리고 아이의 일상을 유지하는데 모조리 쓰이고 있다. 그 상태에서 포기할 것은 엄마의 욕심뿐이다. 억지로 끌고 갈 순 있으나 물을 마시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가 배우고 싶게끔 만드는 것은 엄마다.
사춘기는 호르몬 문제니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리라. 어떻게 올진 아무도 모른다.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분기점 같다. 어쩌면 7살 골든타임보다, 더 중요한 시기가 지금인 것 같다.
세상은 말한다. 엄마가 잘해야 한다고. 엄마가 아이 좀 지켜보고 더 키워야 한다. 나중에 성인이 돼서 이대로면 어쩔 것이냐며. 성인이 되어도 가족과 함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염두에 두고 지금의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규칙에 대한 순응과 자조기술, 스스로 시간을 보내는 법을 가르치는 게 중요하단 걸 엄마도 이미 알고 있다. 어떤 기대를 버리고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 그런 순간이 온다.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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