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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정원사 Oct 29. 2024

나는 느린 시계를 갖고 태어났어요

발달장애, 엄마가 상상해 본 너의 편지

안녕하세요. 오늘은 내 이야기를 직접 해볼게요. 나는 작년에 초등학생이 됐어요.

얼마 전 내 생일이 지났거든요. 이제 진짜 꽉 찬 여덟 살이랍니다. 히히. 난 하늘이 아주 파란 가을에 태어났어요. 아빠가 그날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다고 예쁜 가을에 태어난 아이라고 했어요!  

엄마가 나 그려준거에요! 멋지죠? 맘에 들어요.


나는 말하는 법을 두 살 때부터 배우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너무 어려워요. 사실, 이 편지는 우리 엄마가 상상해서 써본 거래요. 우리 엄마는 내 마음을 아주 잘 아니까요. 엄마는 내가 아주 천천히 흐르는 시계를 갖고 태어났대요. 그래서 친구들과 키는 비슷하고 걷는 것도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대요. 그래서 난 젓가락 쥐는 법에서 ‘아’하고 소리 내는 것까지 여러 가지 수업을 두 살 때부터 다녔어요. 친구들은 학교를 마치면 학원을 가고, 난 센터를 가요. 센터 다니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기뻐요. 조금씩 할 줄 아는 게 생기거든요. 때로는 다음에 잊어버리고 가기도 하지만요. 헤헤.      


최근 제법 잘하는 게 생겼어요. 자랑하고 싶어요. 배고플 때 ‘파압’하고 소리 낼 수 있는 거랑 싫을 때 울지 않고 손짓으로 저어서 ‘아니’라고 할 수 있게 됐거든요. 어디 가자고 엄마가 물으면 고개로 끄덕이며 대답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엄마랑 아빠랑 나들이하는 건 좋아하니까 내 대답은 언제나 응!이에요.    


그래서 엄마 손을 잡고 백화점을 가는 날은 무척 신이 나요. 난 너무 좋아서 소리 지르면서 콩콩 뛰고 싶어요. 실제로 종종 그래요. 반짝거리는 모든 걸 내 눈에 담고 싶어요. 엄마가 가끔 이야기해 줘요. “소곤소곤 이야기하자, 살금살금 걷자!” “안돼”라고 말하지 않고 “하자고” 알려주는 엄마가 좋아요. 하지만 때때로 내 멋대로 ‘아아아’ 소리가 커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난 입을 막고 조용히 웃어요. ‘엄마, 나 잘했지? 나 칭찬해 줘!’ 엄마랑 함께 하는 시간은 정말 특별하고 편안해요.      


학교가는 건 즐겁지만, 하교하는 건 더 신나요. 히힛


학교는 참 좋아요. 매일 가는 건 힘들긴 해요.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들이 많아요. 그래도 친구들을 바라보는 건 참 좋아요. 나도 소리 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냥 “외계어” 같은 소리가 되기도 해요. 갑자기 소리 내는 것에 성공하기도 해요. 하지만 친구들이 깜짝 놀라요. 친구들을 부르고 싶지만 이름을 부를 수 없어요. 그래서 톡톡 만질 때도 있어요. 난 서툴러요. 난 노력하고 있어요. 세상에서 살아가는 거 자체가 나에겐 매 순간 도전이랍니다.


요즘 고민은 잠이 정말 안 와서 2시에 깨서 꼬박 밤을 새우기도 하는 거예요. 잠은 정말 숙제 같아요. 그때 신난 거처럼 보이지만 사실 힘들어요. 졸린데 잠이 못 들거든요. 엄마도 고민이 있대요.  내가 자꾸 [쉬-실수]를 하는 거래요. 작년에 처음으로 연습할 때는 그냥 꾹 참기만 하면 금방 잘 됐었는데, 요새는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해요. 속상해요. 내가 가고 싶을 때 화장실 가고 싶어서 '쉬하러 가자'하면 그냥 도망 가느라, 실수했거든요. 요즘은 그냥 앉을 때도 실수하고 그래서 선생님에게 미안해요. 세탁기랑 건조기한테도 너무 많이 일을 시키는 거 같아 미안해요. 하지만 왜 그런지 정말 잘 모르겠어요. 나에 대해 척척박사인 엄마도 잘 모르겠대요.


난 느리게 크는 시계를 갖고 태어났어요.


그럴 때 하는 말이 있는데 아시나요?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라고  말하면 돼요!

아, 맞다. 내 시계는 천천히 가는데 어떡하지?

“어쩌겠니, 그냥 해봐야 하지 않을까.”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에요. 우리는 생활의 모든 것을 처음 겪는 것처럼 배워야 할 때가 많거든요. 무심히 살아온 모든 것을 다 일일이 다시 “세팅”해야 하는 거 같대요. 매 순간의 일상이 나에겐 엄청난 “허들”이래요. 그래도 이제 스스로 빨대를 꽂아 주스를 먹고, 냉장고 문을 닫고, 신발을 오른쪽-왼쪽 구분해서 신을 줄 알아요! 나, 참 대단하죠?  

나는 매일매일 고3 형아들만큼 빼곡한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난 노력하고 있어요.  때때로 이 모든 것이 넘기 힘든 커다란 언덕 같아요. 느린 시계를 들고 다니려면 제법 무겁거든요. 언덕이 가파르니 나도 지쳐요. 나에겐 넘을 수 없는 언덕도 있을거래요.  그래서 난, 가끔은 너무 어려운 “말”들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너무 힘들 때는 그냥 이것저것 만지고 놀면서 나만의 세계에 있고 싶어요. (아, 이건 비밀인데, 엄마는 나보다 더 울보예요. 난 다 알아요. 내가 어릴 때는 맨날 울었어요. 엄마도 힘든가봐요.)


난 내 곁의 모든 따듯함을 사랑해요


그래도 난 엄마가 좋고, 아빠가 좋고, 선생님이 좋고, 친구들이 좋아요. 버스를 타면 두근거려요. 엄마차 타고 듣는 라디오 소리는 내가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에요. 아빠가 태워주는 킥보드도 좋아요. 친구들이 불러주는 내 이름이 좋아요. 나도 말을 할 수 있다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 마음은 늘 좋아한다 말하고 있는데, 그게 표현하기 참 어려워요.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돌보는 게 힘들 때는 가끔 날 제대로 마주 보지 않을 때도 있어요. 괜찮아요. 난 내곁의 모든 따듯함이 좋아요.      

엄마는 이 모든 이야기가 본인의 상상이라며 내가 ‘정말’ 괜찮을지 걱정할 때가 있어요.  난 그런 엄마를 꼭 안아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괜찮아. 엄마. 엄마를 만나서 난 행복해.

느린 시계를 가진 나를 사랑으로, 마음으로,

가끔은 눈물로 안아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                         






우리의 시간이
이 글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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