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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Jul 04. 2023

느린 산책

넌 지금 행복하니?

두 아이 고등학교 졸업만 시키면 여유가 있겠지, 했었는데 남편 건강이 내 발목을 잡는다.

2009년 9월 폐암 진단을 받고 좌측 폐절제술과 림프를 절단하고도 남편은 복직할 만큼 회복하여 일상생활도 무리 없이 지냈다. 4년 후 좁쌀처럼 폐에 암세포들이 전이되었을 때도 잘 이겨냈었다. 물론 여러 가지 항암 부작용이 찾아왔고 호흡이 힘들어 산소호흡기를 달기도 했다. 먹는 항암제가 다행히도 잘 맞아서 안심했던 것 같다. 

2020년 봄날이었다. 투약하던 약에 내성이 생겨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었다. 방사능 치료 외 다른 대안이 없었다. 12회의 방사능 치료로 암세포는 사라졌지만 정상 세포도 망가뜨렸다. 신체 움직임을 관장하는 소뇌가 손상되니 운동장애가 나타났다. 평행장애라고 했다. 혼자서는 외출이 어려웠고 말도 조금씩 어눌해졌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떨림 현상도 나타났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도했지만, 남편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더 불편해졌다.

남편은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문밖을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남편을 재촉할 수 없어 길고 길었던 겨울을 집에서만 보냈다. 결국 몸에 근육을 더 빠지게 하는 상황으로 내몬 격이 되었다. 암 환자로 살아온 지 14년, 남편도 지쳤을 것이다. 그게 느껴질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야 해. 걸어야 해.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잖아. 

남편을 부축하여 느린 산책을 시작한다. 

물고기자리 뒷문을 열고 나오면 살구나무, 앵두나무, 미니사과나무, 모과나무, 보리수나무, 남편이 심은 과실수들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제자리의 주인이었던 벚꽃 나무까지 수줍은 얼굴을 하며 꽃망울을 틔우고 있다. 우리의 봄은 시작되었다. 

물고기자리가 문을 여는 오전 10시, 남편은 가게로 출근한다. 
 “나, 커피 한 잔만….”
 “산책 안 가면 커피도 없어!”
 자리에 앉았던 남편이 나를 못 이기는 척 의자에서 일어선다. 그럼 나는 그 옆에 가서 나를 잡을 수 있도록 왼쪽 팔을 내어준다. 호흡이 편하지 않은 남편은 숨 고르기를 하며 느리게 느리게 발자국을 뗀다. 돌쟁이 아가들이 걸음마를 배우듯 천천히, 조심스럽게.

 “고개 좀 들어요. 저어기 하늘 좀 한번 올려 봐봐! 날씨 너무 좋은데, 어때?.” 
 남편은 나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걷기가 시작되면 근육이 바싹 긴장되는지 날이 선다. 아마도 걷는 데 집중하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 난 왼팔을 더 꼭 부여잡고 잠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라며 재촉한다. 

볕이 따스한 아침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이렇게 나란히 서서 같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자기야, 좀 더 노력하면 잘 걸을 수 있으니까 매일 매일 걸어야 해. 알겠지?” 
  “말 시키지마, 힘들어.” 
남편은 나의 왼팔을 잡아끈다. 나는 남편의 말을 못 들은 척, 왼팔에 힘을 잔뜩 주며 앞집 일상 선생님 댁을 지나친다. 일상 선생님 댁은 수공예 자연염색 제품 판매와 염색 체험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천연비누와 플랜테리어 식물과 토분 구매가 가능하며 친환경 패브릭 제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모퉁이를 돌면 헤이리 합창단 지휘자 서교수님 댁이다. 맞은편에는 신축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그렇게 다시 모퉁이를 돌아 수빈 뜰을 지나면 우리의 1km 남짓, 20여분 정도의 느린 산책이 마무리된다.

물고기자리로 돌아온 나는 그제서야 남편이 기다리던 커피를 내린다. 우리는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늘 같은 일상의 반복이지만 더 아프지 않고 이만하니 다행이라고, 늘 되뇐다. 
다행이야. 고마워.

우리 지금처럼만 행복 하자.

노란 달맞이꽃이 여물통에 한가득 피기 시작하면 이제 여름이 오고 있구나...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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