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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Jun 27. 2023

나의 마음 산책

헤이리마을에 둥지를 틀다


 우리 가족이 헤이리로 거주지를 옮긴 건 2017년이다. 늦은 봄이 여름옷을 갈아입는 6월, 우리는 헤이리로 왔다. 

 헤이리마을에 정착하기까지 많은 아픔이 있었기에 좀 더 느리게 천천히 여유를 가지며 살아가고 싶었다. 근사하게까지는 아니어도 기분만은 내고 싶어서 건물 앞에서 커팅식도 열었다. 남편은 헤이리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사용했었다.

 남편은 2009년 폐암진단으로 수술을 받고, 2013년 다시 폐에 암세포들이 좁쌀처럼 재발 되어 몇 번의 항암치료와 대체의학 치료 먹는 항암제를 투약하며 지냈고, 2019년 뇌전이로 방사능 치료를 마치고 항암제를 변경하여 투약하며 지내는 중이다. 

 마을은 동그란 부지를 에둘러 1번부터 10번까지 들어오는 입구가 모두 다르다. 마을은 다섯 개의 나지막한 야산을 끼고 있다. 이 동네에 처음 와보고 반한 것은 길과 하늘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마을은 언제고 길을 내어 주었다. 날이 맑으면 멋진 일출과 노을도 매일 볼 수 있었다. 

 노을숲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해를 품고 퍼지는 저녁노을은 하루종일 애쓴 나에게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헤이리에서 제일 높은 야산에는 무장애 노을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보통 걸음이면 20분, 느리게 걸어도 30분 남짓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목재 데크로 이어져 있어 어린아이도 노인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까지 함께 오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누구라도 이곳을 함께 누릴 수 있다 하여 이름도 무장애 노을숲길이다.

 집을 나서면 길게 뻗은 붉은 조형물이 보이는데, 이곳이 모아 갤러리이다. 2005년 한국 건축가 협회상을 수상하고 꽤 유명해졌다. 영국 유니버스사에서 출판한 <1001개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할 건축물>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모아갤러리의 선생님은 산책길에서 늘 마주치는 아침 동무다. 매일 아침 바지런하게 비질하고 주변의 정리 정돈으로 하루를 시작하시는 것 같다.

 갈대광장과 코카콜라 박물관 사잇길을 오르면 키가 정말 큰 높은 나무 두 그루가 나를 반긴다. 큰 키도 멋지지만 파란 하늘, 몽글몽글 구름과 썩 잘 어울려서 나의 SNS 사진에 자주 출현한다. 웨딩 마을을 지나 정면을 보게 되면 마을에서 제일 오래된, 그 자리에서 500년을 지킨 사람들의 길동무, 느티나무가 보인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나무 위로 주름진 얼굴의 꼬부랑 할머니가 겹치는 것만 같아 앞을 지날 때마다 조심스럽다. 긴 겨울이 지나면 나무에 물이 차고 초록 잎들이 돋는다. 풍성한 가지마다 초록 잎들이 가득 피어나면 지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돼줄 것이다.

 그 길 사이로는 양쪽으로 겹벚꽃 나무가 나를 반긴다. 벚꽃은 꽃이 먼저 피고 떨어지면 잎이 나지만 겹벚꽃들은 잎과 꽃이 어우러져 근사한 풍경을 선물해준다. 벚꽃보다 더 진한 분홍빛을 띠며 봉긋봉긋 탐스럽게 피어오른다.

 담 없는 헤이리마을에는 오르락내리락 정원이 길게 펼쳐진다. 길의 끝에서 만나는 정원은 이정규 장신구 박물관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정원이기도 하다. 

 이정규 선생은 파리와 독일에서 유학하고 유럽 현대 장신구 개념과 경향을 국내에 소개한 1세대 장신구 작가다. 이른 아침 손 세수한 얼굴로 마주해도 어색하지 않은, 내게는 편안한 마을의 어른이시다.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에 동참하다 보니 많은 선생님이 조금은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남편과 동행하여 인사를 드릴 때면 남편의 안부를 잊지 않는, 따뜻한 분들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혼자 운동하려고 나왔어요? 난 혼자 운동하러 나오는 사람들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네. 노을숲 올라 가려구요. 올해도 봄꽃들이 이쁘게 피었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정원이 선생님 댁이에요”

“하하하 이쁘게 봐주니 고마워요. 시간이 흐르니 자리를 잡고 이젠 크게 손이 많이 가지 않아요.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요?”

“오히려 코로나가 끝난 지금이 더 힘든거 같아요. 헤이리는 청정지역이다 보니 코로나 때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요.”

“다행이네요. 남편도 잘 있지요?”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도 산책 가시는 길이세요?”

“아니 전 기체조하러 가요. 일주일에 2번씩 벌써 10년 넘게 마을분들과 같이 하고 있어요.그럼 난 이쪽으로 올라가요. 즐거운 하루 보내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선생님과 잠깐의 만남을 뒤로하고 이정규 장신구, 카메라타, 소소갤러리를 지나 7번 게이트 입구에서 연결된 나무 데크가 보인다. 노을숲길의 시작이다. 

조용한 산책길에 재잘재잘 새소리가 나를 반긴다. 겨울엔 없던 새들이 날라와 친구하자고 노래를 불러댄다. 들려오는 새소리는 또랑또랑 선명하고 명랑하다. 노랫소리에 이젠 따뜻한 계절이 다가오는구나 실감하게 된다. 겨우내 배가 고팠던 탓일까? 이젠 먹잇감이 많아져 즐겁다는 것일까? 들려오는 새소리를 벗 삼아 걸어본다.

찬찬히 걸으며 좌우를 살핀다. 긴 겨울 앙상했던 가지에 물이 차고 조금씩 나뭇잎 색을 자랑하며 좋은 공기들을 뿜어낸다. 

이른 시간 마주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롯이 혼자서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본다. 나무들과 눈을 맞추고 땅에서 피어난 꽃들과 눈을 맞추다 보니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생각들과 걱정들은 잠시 잊는다. 나 혼자 누리는 이 시간이 행복이라고 입가에 미소를 지어본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내 마음을 쉬게 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힘이 될테니까...

날씨가 좋아서 마을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저 멀리 임진강과 북한 땅이 보이고 한강과 김포 그리고 유럽풍의 경기미래캠퍼스와 CJ ENM 이 한눈에 펼쳐진다. 

팔을 뻗어 스트레칭하고, 가슴을 뻗어 좋은 공기를 한껏 마시고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엔 남편이 좋아하는 건물 블루메 미술관을 지나온다. 이곳은 살아있는 나무를 감싸 안고 설계하고 지어진 곳이다. 건물 외관을 뚫고 나온 나무의 줄기가 주는 생명력에 그리고 이 건물에 계신 선생님의 나무 사랑이 얼마나 대단 한지를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갈대광장을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오늘의 산책은 끝이 난다.

파주 하늘은 언제 올려다보아도 편안하고 좋지만, 마을 안에서 보는 하늘이 좀 더 평화로운 이유는 뭘까?

그렇다 이곳은 건물의 높이 제한이 있어 고층 건물이 없기도 하지만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리는 설계를 지향함으로써 산과 구름 늪 개천의 많은 부분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건물이 지어졌다. 그러다 보니 시야에 가리는 것 없이 건물과 어우러진 나무들도 꽃들도 하늘도 자연 그대로 나의 눈 안에 고스란히 들어온다.

자연과 함께하며 누군가에겐 예술을 창작하는 곳으로 누군가에겐 전시하는 곳으로 누군가에겐 공연하는 곳으로 누군가에겐 교육하는 곳으로 함께하는 이곳 헤이리마을

우리 가족에겐 자연과 함께하는 마을인 이곳에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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