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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nnievo Jan 10. 2024

가난한 자들의 가난한 병원

원래 나는 원래 어디서든 돈을 안 내는 사람이야.
 나는 가만히 있어도 나라에서 돈도 주고 쌀도 줘.
나라가 보살피는 사람한테
너희가 뭔데 돈, 돈 거려?



 
 
가난에도 특권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당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러나 우선 나는 국가 소속이 아니며, 내가 속한 사립 병원은 철저히 자본주의적 논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수많은 사람들 중 홀로 가난하다면 또 모르겠지만, 절반 이상이 의료급여수급권자인 병원에서는 그대가 항상 원하는 '그 이상의 것'을 해줄 여력이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다지도 사랑하는 당신의 국가는 나의 병원에 딱 '죽지 않을 정도'의 보장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만 되면 나는 전층에 전화를 한다. 물품을 빌리기 위해서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것들이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N/S 100*이나 수액세트 같은 늘 필요한 것들이 항상 없다는 것이 환장 포인트다.
한 번은 라식스*와 스피로*가 동시에 없었던 적이 있다. 우리 병원 기준으로, 그 두 개가 없다는 것은 원내의 모든 이뇨제가 바닥났다는 뜻이었다. foley(소변줄)를 끼우고도 배뇨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이 천지였으니 참으로 황당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으며 불나게 모니터를 탐색하던 과장님의 모습을 기억한다. 각 병동은 가난이 몸에 배어서 모든 약을 훔쳐와서(?) 병동에 보관하던 습관이 있었는데, 그런 습관이 없었다면 아마 수많은 환자들이 빵빵해진 배를 붙잡으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N/S 100 : 생리식염수 100ml. 항생제를 보통 여기에 섞어서 쓴다. 우리 병동 기준 매일 최소한 10-15개는 필요했다.
*라식스, 스피로 : 라식스(lasix)와 스피로노락톤(spironolacton)은 모두 이뇨제다.
 
병동에도, 창고에도, 약국에도 물품이 없는 까닭은 애초에 넉넉하게 들어오지 않는 탓이다. 물품을 신청하면 무엇하나 제대로 오는 꼴을 못 보았다. 10개 시키면 7개쯤 온다.
알코올 솜이 부족한 것은 그럴 수 있다. 탈지면에 알코올 솜을 부어서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탈지면마저 부족해져 코튼볼(cotton ball)마저 소진하던 날에는 '정말 싫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병원이 낭비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문제가 대두되는 이 시점에서도 병원에서만큼은 일회용품을 지향하고 그것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나는 '병원'과 '아끼다'가 공존하는 이질적인 상황에 빈번하게 노출되었다.
 
 
 

선생님, 이렇게 쓰다가는 정말 큰일 나요.
한 사람 당 하루에 하나씩만 사용해요.


 
 
 
이미 사용한 수액세트를 버리고 있는 나를 향해 누군가 말했다. 눈앞에  떡하니 붙어있던 '물품을 아껴 쓰자'는 말이 낭비를 지양하는 말이 아니라 일회용품의 재사용*을 권장하는 말이었나 보다.
한 사람에게 썼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쓰지 말라거나, 바늘만큼은 늘 새것으로 쓰자는 말이 뒤따라왔으나 나는 영 찝찝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물품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겪고 나니, 어쩌면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회용품의 재사용 : 의료법 제4조 6항에 따라 의료인은 일회용 의료기기를 한 번 사용한 후 다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의료법 제65조, 제66조에 의거하여 자격정지 혹은 면허취소도 가능하다.
 
 




 
 
우리 병원은 가난하다.
그래서 연차가 쌓인 선생님들은 하나둘씩 본인의 살림살이를 채워 병원 재정에 보태었다.
달달한 것이 먹고프다는 누군가의 말에 사비를 털어 제 몸만 한 케이크를 사 오는 이도 있었다.
 
 
 
간호학도들의 면접에서 '봉사정신'은 정말 흔한 소재지만, 사실 나에게는 일말의 봉사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봉사.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쓴다는 뜻의 이 단어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나는 철저히 나의 안위와 생존만을 위해 일을 할 뿐이지,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면서까지 남들을 보살피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가난한 병원에서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면서도 항상 무언가를 내어주 않으면 가슴 깊숙한 곳이 콕콕 찔리곤 하니, 퍽 난감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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