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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nnievo Jan 12. 2024

저희 엄마 전화기를 뺏어주세요.

버리면 안 되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진데.

제가 부탁드렸잖아요.
전화기를 뺏든, 뭐 어떻게 해서라도 전화 좀 안 오게 해 달라고요.


 
 
수화기를 들자마자 들려오는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한 번, 그 내용에 한 번 언짢아졌다.
요양병원이 현대판 고려장과 같다는 말이 정말 싫은데, 저 대화 덕에 실감이 나버렸다.
 
 
개인적으로는 할머니의 잦은 소통이 달가웠다.
우울증이 도져서 잔뜩 죽상으로 입원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러했다.
할머니는 구석에 처박힌 채 아무런 의사표현도 하지 않고, 끼니를 거르던 사람이었으나 같은 방 할머니들을 만나 단시간에 좋아졌다.
아무래도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가끔 옆 침대 사람들과 싸우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밥도 잘 먹고 종종 웃기도 하였다.
그러니 나는 역정을 내는 지금이 훨씬 보기 좋았다.
 
 
 

약 있는 거 다 주세요.
하라는 대로 다 해주세요, 그냥.


 
 
마지막 그 목소리는 짜증이었을까, 비탄이었을까.
울부짖듯 소리치는 음성이 귓속을 가득 매웠다.
 
 
 



 
 
 
 

돈 드는 것은 하지 말아 주세요.
병원 연락은 안 받고 싶어요.
죽기 직전에만 연락 주세요.


 
 
쿵- 하고 내려앉는 말들을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곤 한다.
내가 모든 사정을 알 수는 없으니 저 결정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으나, 쓸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저 꼬장꼬장한 노인의 말로이려나.
 
 




 
 
 

미국에 있는 아들과 통화를 하고 싶은데
자꾸 웬 이상한 여자가 받아서 통화를 못하게 해
근데 영어로 뭐라 뭐라 해서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이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라는 대사에게 대화의 시도는 한국어든 영어든 무용했을 테다.
 그러나 한글도 읽지 못하는 이가 영어를 할 리가 만무했다.
미지의 여인과의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던 수없이 많은 흔적을 보니 어딘가 시큰해졌다.
 
 

아들아, 너무 보고 싶어.
한국에는 언제 오니?
연락 좀 다오.


 
 
코빼기도 뵈지 않는 자식내외가 뭐 그리 예쁘다고 목소리마저 가다듬고 저리도 소녀 같은 표정을 짓는지.
할머니는 홀로 앉기도 힘든 그 몸으로 자꾸만 고개 숙여 고마워하였다.
 
 
그러나 슬프게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우리 애들이 바빠서 그래


 
 
그대들의 잘난 아들, 딸이 바쁘다는 핑계로 끝끝내 저를 찾아오지 않아도 노인들은 해맑게 웃으며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다.
대기업에 다니든 인물이 좋든 인품이 좋든 할 것 없이 떠들어대다가도 때때로 시선은 방문객들 속에 머무르곤 한다.
오늘도 오지 않는 이들을 애처롭게 그리어도, 찾아오는 이들이 부럽기는 해도, 결국은 제 자식이 최고란다.
 
아마 사진첩에 고이 머무른 어린 날의 손주들은 벌써 잔뜩 커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몇몇은 나만큼이나 커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감히 무어라 첨언할 수 없어 더 격하게 그들의 자랑에 동참하곤 한다.
언젠가, 나 역시도 '멀리 사는 바쁜 손녀딸'이었던 지난날을 못내 아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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