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전속 미용사
자긍심(acquiescentia in se ipso)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 중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진정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신의 행동이 이타적이었을 때 자긍심을 느낀다.
나에게 어떤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자기만의 착각이 아닌 타인의 인정을 통해 증명된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또는 확신이 없었던 것에 대해 칭찬과 믿음, 인정을 받으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를 재정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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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머리숱이 많았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아기였을 때 나를 안고 나가면 동네 사람들한테 '아기 머리에 가발 씌웠냐'는 소리를 곧잘 듣곤 했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머리숱도 유전인지라 나의 아들도 우수한 모질과 엄청난 모발량을 갖고 세상에 나왔다. 문제는 생후 6개월에 여느 중학생만큼의 풍성한 짧은 단발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유아를 전문으로 다루는 미용실에 가도 되지만 그곳에 가면 스크린을 보여준다.
스크린을 최대한 늦게 보여주고 싶었던 나는 내가 아이의 헤어커트를 하기로 했다. 아기였던 아들을 범보의자에 앉혀놓고 싸구려 미용가위로 쓱싹쓱싹 머리카락을 잘라나갔다.
그것이 나의 미용실 놀이 시작이었다.
나는 중학생 때 미용사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께 영국에 있는 비달 사순에 유학을 가서 미용사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못 이룬 미용사의 꿈을 아들의 헤어커트를 통해 이루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위해 당신의 단골 미용실에서 전문가용 커트 가위와 숱가위를 저렴하게 구해 주셨다.
머리카락이 밀리지 않고 바르게 잘려나가는 전문가용 가위의 성능은 놀라웠다. 성능은 엘리트 급인 가위에 내 기술이 미천하다 보니 뜻밖에 머리를 숭덩 잘라내는 사고도 종종 발생했다. (귀는 한 번도 안 잘랐으니 다행)
어릴 때는 머리카락이 조금 비뚤 해도 마냥 귀엽다. 하지만 학령기가 되어 학교에 가면서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미용실 가는 걸 싫어했고, 머리 기르는 것을 좋아했고 내가 가위질을 한 덕에 지금까지 미용실을 간 게 12년 동안 10번 정도밖에 안 된다.
여름방학이 시작할 무렵 아들이 갑자기 헤어커트를 의뢰했다. 나는 다 큰 애 머리를 망칠까 봐 그냥 미용실에 가자고 했다. 아들이 말했다.
-똑같아.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겠나.
사실 제일 마지막으로 헤어커트를 해준 미용사의 솜씨가 영 별로였다.
그 후로 내가 몇 번 숱을 치고 살짝 다듬어 준 적이 있는데 아들은 내가 낫다고 생각했나 보다. 틀이 있는 머리카락을 다듬는 건 쉽지만 꽤 자란 머리카락을 자르는 건 별개의 문제다. 이것은 어렵다.
아들이 엄마가 해 달라고 우겨서 다시 가위를 꺼내 들었다.
-고객님 어떤 스타일로 해드릴까요?
아들은 여기는 길게, 여기는 짧게, 헬멧 같지 않게 등등 요구를 했고 나는 신중하게 머리카락을 잘라나갔다.
바리깡은 사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가위로만 커트를 한다. 자르는 동안 조니 뎁의 <가위손> 이 떠올랐다. 지난 10년간 아들의 머리를 잘라왔던 경력 덕분에 나는 아들의 두상의 특징, 모량이 오른쪽이 왼쪽보다 더 많다는 것, 가르마 때문에 앞머리 길이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원하는 대로 모양이 나온 커트에 아들이 만족한 눈치다.
지난번 커트가 만족스러워서였을까. 한 달이 지난 오늘, 아들이 조금 더 짧게 잘라달라고 커트를 의뢰했다. 분홍색 보자기를 목에 둘러주자 진짜 미용실에 온 것처럼 조용히 앉아서 눈을 감고 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오로지 타인에게 일임한 자의 태평한 모습이었다.
리히테르가 연주하는 바흐의 평균율을 틀어놓으니 분위기가 자못 경건하고 숭고해진다. 남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은 숭고하고 어려우며 막중한 책임을 지는 행위이다. (머리 한 번 망치면 몇 달이 괴롭다.)
이번에도 아주 흡족한 커트가 완성되었다. 나도 나의 가위질 재능에 자긍심을 느꼈다. 그리고 이 재능을 그냥 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미용사 자격증을 따서 헤어커트 봉사에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미래가 또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앞 집 언니가 한 말이 떠오른다. 무용을 전공한 언니는 "무용이 아니라 미용을 전공했어야 했어."라고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누군가 나를 믿고 자신을 맡긴다는 사실은 사람에게 큰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자긍심은 나의 정체성 형성에 더없이 큰 밑거름이 되어준다.
나는 내 어릴 적 꿈을 실현하고 아들은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 기쁜 날이 있을까.
표지그림: Sir Thomas Lawrence, <The red boy>,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