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에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2주째 진동이 안꺼진다. 아마 죽었나보다. 사실 그는 며칠전 우리집에 찾아왔다. 그는 내게 말해주었다, “요즘 저승사자는 흰옷을 입어요.” 꿈을 꾸면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난다. 그녀는 내 앞에서 밥을 먹다가 문득 말한다, ”근데 있잖아, 넌 내 눈을 너무 잘 쳐다봐. 내가 안 무서워?” 나는 대답한다. “응, 난 너가 너무 좋아.” 난 죽음이 무섭지 않다. 그렇다고 죽고 싶은건 아니다. 한국말을 똑바로 하자면 그냥 죽어도 별 상관없다. 인생이란 내게 있어서 골칫덩어리였다. 문제를 푸는게 지겨워질때마다 모든 문제를 한번에 풀 수 있는 마스터키가 눈에 아른거렸다. 나는 생명에게 미움받는다.
할머니의 눈의 초점이 없다. 당신께서도 슬슬 생명으로부터 미움받고 있나보다. 난 할머니께 해드린게 없다. 할머니는 내게 해준게 많다. 그렇기에 난 할머니의 죽음에 준비되어있지 않다. 할머니의 꿈에는 검정옷을 입은 사내가 자꾸만 나온다고 한다. 그는 손과 발이 없고 눈은 구멍이 파져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깔끔한 흰옷을 차려입고 할머니 옆에 누웠다고 한다. 난 아직 준비가 안 되어있다.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이번 주를 돌이켜본다. 시간을 허투루 썼다. 공부를 전혀 못했다. 이유는 할머니 때문이다. 할머니 병문안으로 이틀이나 시간을 뺐겼다. 짜증이 확 밀려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되나 화가난다. 글쎄, 할머니가 죽을때까지? 버스 창문에 고개를 몇번이고 쳐박는다. 난 이기적인 인간이다. 사실 할머니도 눈치를 챈것같다. 내가 앞뒤가 다른 모순적인 인간이라는걸. 서둘러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날 재촉했다. 시간 뺐어서,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내게 말했다. 사실 부모님도 눈치를 챘다. 아버지가 어머니께 내 뒷담하는걸 엿들었다. “이 새끼 이기적이니까 그렇지.” 딱히 변명할 말도 없다, 난 이기적이니까. 너무 이기적인 나머지 내 생명도 눈치를 채고 날 거부한다.
자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주변의 기대를 져버리지 말고 어서 삶의 끈을 끊어버릴까? 아니면 이런 추잡한 인간도 갱생의 기회를 한번 줄까? 삶이라는건 너무나 가벼워 그것의 선택권마저 날 떠난지 오래다. 죽으라면 바로 죽을테니 어서 결정을 내려주기를. 하지만 만약 나보고 죽지말고 살라고 얘기할꺼면, 신중하게 말해주기를. 도대체 이런 인간이 왜 살아가야하는지 난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