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세상에 던져놓고
나는 오랜 시간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릴 적, 중학교 시절 우연히 시작한 운동은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도 아니었고,
그만두고 싶을 땐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뒤였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멈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만두려는 내 마음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고3이 되던 해,
나는 더 이상 남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날개를 펴고 싶었던 어린 새처럼
있는 힘껏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려 발버둥쳤지만,
돌아온 건 선생님들과 아버지의 무시와 질책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문제아가 되었다.
그들의 실망과 미움은 졸업까지 이어졌고,
성인이 되자마자
나는 아는 형에게 30만 원을 빌려 집을 나왔다.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잠시,
나는 세상에 혼자 던져졌다.
공부도, 운동도, 사회에 나가 써먹기엔 애매했고
기술도 자격증도, 심지어 꿈도 없었다.
사람 던지는 업어치기 하나 말고는
내가 잘하는 게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사회부적응자라고 느꼈다.
중소기업에서 잡일을 하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인생’이라 부를 만큼
삶은 막막했고 무의미했다.
그러다 문득,
나의 학창 시절 6년이 떠올랐다.
운동이 아닌 다른 걸 해봤더라면,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걸 찾았더라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그 생각은 깊은 후회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그러면서 남몰래 남들과 나를 비교했다.
남들은 뭔가를 이루고 있었고
나는 그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시한부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자괴감만 커져갔다.
하지만 다행히도,
신은 나를 완전히 버리시지 않았다.
괴롭고 외롭던 시간 속에서도
삶에 필요한 지혜들을 내게 숨겨두셨다.
그 지혜 덕분에
나는 용기를 얻었고
마침내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런 감정들을 마주했을까?”
“내가 정말 이런 삶을 원했던 걸까?”
아니었다.
그건 자기방어였다.
누군가를 원망하기 위한 회피였다.
부끄럽지만,
누군가를 탓하려면
내 삶이 충분히 불행해야 했으니까.
그래야 내가 겪은 피해가 더 진짜 같았고,
그래야 나는 아버지를 원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원망의 중심에는,
잃어버린 6년이 있었다.
내 삶이 아닌,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대신 살아야 했던 시간.
부러진 손가락, 빠진 팔꿈치,
폭력과 억압으로 얼룩진 선수 생활.
그 모든 기억이
내 안의 분노를 키웠고,
나는 나도 모르게 아버지를 끔찍히 원망하고 있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배운 것이 없어도,
잘 살아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놓지 못한 건
그 원망이 있어야
내 지금의 괴로움이 정당화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너무 잘 살아버리면
아버지를 더 이상 탓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작고 부족하게 만드는 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원망은,
결국 나를 낳아준 부모까지 번지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감정은
낮은 에너지에 붙잡힌 내면의 소리였다는 걸.
하지만 동시에,
그 원망조차도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걸
호킨스 박사님을 통해 배웠다.
그러니 이제는 미워하지 않는다.
원망도, 아버지도, 그리고 나 자신도.
그 시절은 끝났다.
나는 더 이상 문제아도, 피해자도 아니다.
시간은 흘렀고,
이젠 내 곁에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내가 뭘 해야 할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풀리지 않던 실마리 하나가
오늘 이렇게 풀려나갔다.
시작이 반이라던데,
어쩌면 지금이 그 반인지도 모르겠다.
힘들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인내와 끈기를 배웠고
이제는 그 자리에
이해와 수용이라는 감정이 조용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태양을 가리던 먹구름이 지나가고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 감고 있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해와 수용을 양분 삼아
내 안에서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그 시절, 그 상처, 그 원망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모든 시간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