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많이 먹는다고 살이 찌는건 아니야

먹은 만큼 걸으면 돼

by 정우다움

그녀와 장장 6시간을 걸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그녀가 좋아하는 카페를 가고자 우린 걸었다.

거기에서는 맛있는 빵이 판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4시간을 걸으면 분명 더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품은 채

우린 편한 복장을 한 채 열심히 걸었다.


하지만 어찌 삶이 뜻대로만 흘러가겠는가?

나온 지 1시간쯤 됐을까, 맛있어 보이는 빵집이 우리를 유혹했다.


“잠깐 들어가서 구경이라도 해볼까?”

“음… 그러자.”


그렇게 우리는 빵집에 있던 빵들에게 사로 잡히긴 전 빵집을 빠르게 벗어났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미 우리의 두손에는 빵이 들어간 갈색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그래도 가는 길 출출하지 않게 됐으니 좋은게 아니겠는가?


빵을 먹기 위해 빵을 먹으며 간다는 새로운 공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날은 그리 춥진 않았지만 밖을 오래 걷기 시작하니

손과 발이 마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양화대교를 지나던 중,

대교 근처에 있는 공원에 들어갔다가 작고 아담한 식물원을 발견했다.


다행히 그곳은 식물들이 살아 숨 쉴 수 있게

365일 내내 일정 기온을 맞춰 놓는 곳이라 따뜻했다.

그렇게 우린 추웠던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다시 카페를 향했다.


그러다 어쩌다 보니 망원시장에 가게 되었다.

망원시장 근처에 도착하고 나니 에너지가 고갈되어 안색이 안 좋아지는 그녀.

목동에서부터 쉬지 않고 걸었으니 배고플 만도 했다.

물론 간식도 먹었지만 에너지가 고갈될 만했다.


그래서 우리는 입가심할 수 있는 마시멜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그걸 들고 망원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음식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렇게 우리의 최종 목적지였던 카페는 잠시 미룬 채

분식집에 들어가 떡볶이와 튀김을 먹었다.


카페는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아주 맛있게 먹고 나니

그래도 커피는 한 잔 해야 되지 않냐며

우리는 빵은 포기하고 커피를 한 잔하기 위해

원래 가려던 카페를 향했다.


그러던 중 블루리본이 가득 달려 있는 빵가게를 마주했다.

이번에는 진짜 구경만 하자고 굳게 다짐했다.

그래서 다행히 그냥 나올 수 있었는데,

그 빵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우유빵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이것의 범인은 바로 그녀일 것이다.

분명 그녀가 계산하고 내 손에 몰래 끼워 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빵 하나를 나눠 먹었다.


우리가 먹은 우유빵은 한 입만 달라고 하면 싸움이 난다는 유명한 빵인데도

우린 싸우지 않고 나눠 먹었다.

아님 일방적으로 누군가 많이 먹었을 수도 있지만, 하하하.


그렇게 우린 4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6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다.

물론 또 커피만 먹지도 않았지만.


그녀가 궁금하다는 흑임자 크루아상과 커피,

그리고 천연 콜라 한 잔을 시킨 채

원래 일정에 있던 책 한 권을 각자 꺼내 들며

노곤한 얼굴로 페이지를 하나씩 넘겼다.

그렇게 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집 근처에 도착해

우리끼리 한 잔하기 위해 편의점에 들렸다가

초코 롤케이크를 사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고 나서

예능을 보며 편의점에서 산 초코 롤케이크를 먹었는데

너무 훌륭한 맛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먹었던 모든 빵들이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 순간에는 그 초코 롤케이크와 우리들뿐이었다.

입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르르 녹는 그 맛은

블루리본이 가득 달린 빵집의 시그니처 빵보다 맛있었다.

초코크림이 부드럽게 우리들의 혀를 감쌌고 휘감았다.


이는 마치

‘흑백요리사2 무한 천국 요리 대전’에서

3시간 동안 오직 한 요리를 준비한 최강록의 요리가

안성재 심사위원에게

“이번 미션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맛있었다”라는

최고의 평을 듣게 된 느낌과 같았다.


일본의 편의점은 정말 수준이 높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한국의 편의점 또한 이렇게까지

순간 나를 놀라게 할 수준으로 올라왔을 줄은 몰랐다.


그녀의 말로부터 시작된 하루.

향하고 있는 방향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하루.


속도보다 방향을,

한 곳보다 여러 곳을 바라보며 느끼고 즐기는 삶이

즐겁지 아니한가.


함께할 수 있는 사람과

이른 추위에도 두 손 꼭 맞잡고 걸었고

또 때로는 뛰었다.


혼자라면 해낼 수 없던 하루가

둘이기에 해낼 수 있었던, 그리고 재밌었던 하루.


어딜 가든 혼자 아닌 둘이라면

서로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이 되어

저 넓은 바다를 항해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은 폭풍우를 만나

비바람이 불고 몹시 흔들리는 날도 있겠지만

마주 잡은 두 손의 온기가 여전히 따뜻하듯

폭풍 속에서도 춤을 추고 웃을 수 있는 것은

함께한다는 기쁨이 있어서일까.


홀로 있을 때는

흔들려서는 안 될 것 같았던 삶이

흔들려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받을 수 있는 삶이라면,


특정 목표를 향해 가다가

다른 목표가 생겨도 되는 삶이라면,


빵집을 가기 위해

온종일 다른 빵집에서 빵을 먹다가

마지막 편의점에서 산 빵이

제일 맛있어 버리는 삶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보니 삶의 행복은 선택 사항인 것 같다.

그러니 삶의 불행도 선택 사항인 것을 느꼈다.


지난 내 삶을 돌이켜 보니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에도 불행을 선택한 것은

나의 몫이었다는 것을,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있던 것 또한

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의 감정과 기분은 결코 우연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낸 미련한 생각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오늘을 함께한 그녀와

지금의 삶과 모든 만남에 감사하며.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