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려 하는게 부끄러운거지
이상하게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남녀 구분할 것 없이 아이가 된다.
언제는 남자가 아이가 되고, 또 언제는 여자가 아이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둘 다 어린애가 되어 버리고 만다.
남들 앞에서는 칼같고 테토녀인 그녀가
내 앞에서는 실수투성이에, 약간 사회에 내놓으면 안 될 것 같은 아이랄까?
나의 작은 실수나 작은 기후 변화에 입이 삐죽 나온 불만투성이 어린이가 되어 버린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삶이 가능할까?
이성적으로 다가가기만 한다면 사소한 것 하나에 기분이 상하고,
그때부터는 또 사소한 것 하나에 그 사람이 꼴 보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별을 택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른인 그 사람의 모습만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도 살아 숨 쉬는 어린아이의 모습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 아닐까?
그렇게 사랑한다 해서 만나고, 그렇게 사랑한다 해서 결혼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별과 이혼들.
그렇다면 그들의 사랑은 거짓이었을까?
그것까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궁금하지도 않고.
하지만 이런 내가 당당하게도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짓된 사랑도 참 많다는 것이다.
어떻게 한 사람의 좋은 점들만 보지 않고
그 사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의 재력과 외모, 성격 등을 안 보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을 이해하고 맞춰 보고자 하는 마음인 것 같다.
아무리 좋고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가끔은 실수도 하고 엉뚱한 모습도 있으며
우스꽝스러운 어린아이 같은 면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그보다 건강한 관계는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그만 바지에 오줌을 쌌을 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진짜 말은
“아가야, 어쩔 수 없던 부분이란다. 그러니 괜찮다, 얘야.”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우린 모두 실수하는 존재라는 것,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모두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럼 더 이상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기대를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
그 사람이 해내면 좋은 것이고,
무언가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은
자신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가끔 너무 화가 난다면
그녀에게 딱밤을 날리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나의 스트레스는 풀리고
그녀는 화를 낼 테니.
그녀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은 아니지만 큼…
이는 마치 밀림의 왕 사자를 사랑한다 해서
밀림에 들어가 사자를 포옹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자를 사랑하되,
그들은 우리가 다가가면 우리를 해칠 수 있기에
그저 멀리서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한계를 인정해 주고
거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가끔
아기 사자 같은 그녀에게 딱밤을 날린다.
물론 죽을 각오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