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시죠?
오늘은 그녀가 사준 후드 집업과 추리닝 팬츠를 입고
운동을 간다.
또 자주 쓰는, 그녀가 사준 모자와 패딩을 걸치고 밖을 나간다.
벌써 어느샌가
그녀가 사준 물건들로 내 옷장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끼어들 틈이라고는 없었던 내 삶에 끼어든 그녀.
그럼에도 사주면 아주 열심히 입는 나이기에
옷이 닳도록 입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나 또한 그런 그녀를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
그녀는 왜 선물 같은 것도 잘 받지 못하는
내 손에 이렇게 많은 것을 쥐여주는 걸까.
마치 그 시절,
할머니가 내 손에 한없이 쥐여주던 눈깔사탕처럼
왜 이렇게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걸까.
집으로 지인을 불러
요리를 왕창 하면 돈이 조금 든다.
아주 가끔은 많이 들기도 한다.
그런 나의 모습에 그녀는 말한다.
“오빠, 돈 많아? 왜 이렇게 퍼주는 거야?”
사실 집에서 요리해 먹는 비용이나
밖에서 사 먹고 N분의 1 하는 비용이나
내가 내는 돈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이들의 지갑을
조금 지켜줄 수 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그런 나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만족감이 올라온다.
돈 낼 거면 내가 더 내면 되지.
손해 볼 거면 내가 더 손해 보면 되지.
이게 내 마인드인 것 같다.
물론 마음이 나쁜 사람에게까지
알짤없이 손해를 보려는 건 아니다.
나름 지혜롭고 위트 있는 나랄까.
물론 그녀가 나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니
오해는 없길 바란다. 하하.
예전에 이런 논쟁이 있었다.
술값이 6만 원이 나왔는데
A라는 친구가
“내가 만 원 더 낼게”라고 말했다.
그래서 4만 원을 낼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3만 5천 원을 냈다.
그 친구가 말한
‘만 원 더 낼게’라는 의미는
자신과 다른 친구의 결제 금액이
딱 만 원 차이 나도록 계산한다는 뜻이었다.
결과적으로 더 많이 낸 건 맞으니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렇게 계산적인 태도에는
정내미가 가지 않았다.
정이 안 가는 타입처럼 느껴졌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다 내고 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인 마음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먼저 마음을 내어주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돌려 말했지만
먼저 지갑을 꺼내라는 뜻이다.
“친구야, 내가 살게.”
“아니야, 내가 살게.”
“그래.”
나는 그녀를 통해
베풀 수 있을 때는 베풀고,
받을 수 있을 때는 받아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너무 베풀기만 해도 안 되고,
받기만 해서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마치 비어 있는 그릇처럼.
그래서 이렇게도 말해보기로 했다.
“친구야, 너의 카드를 내게 주렴.”
라고 당당하게.
짧은 인생,
후회를 남기거나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면
죽기 직전이 더 괴로울 것 같다.
별것 아닌
나의 작은 마음과 손길이더라도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친절한 행동 하나,
그리고 그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작은 선물을 건넬 수 있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런 나를 꿈꿀 수 있게
도와준 그녀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