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았던 것처럼

도서관 책 수난기

by 심바

책을 읽다 보면 책이 읽고 싶어 진다. 좋아하는 작가님이 쓰신 책에 인용한 책을 보면 궁금해진다. 내가 고른 책이 아니기 때문에 책의 마지막장까지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읽어봐야 안다. 그래서 도서관을 애용한다. 책을 위한 아이쇼핑이랄까. 읽어본 후에 소장하고 싶은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둔다. 그래서 책장을 보면 행복해진다. 좋아하는 것 옆에 좋아하는 것 옆에 좋아하는 것이 있다.




최근 한 연예인이 대출도서를 훼손한 일로 입방아에 오르내린 일이 있었다. 개인의 독서습관이 저도 모르게 나온 것이라며 도서관에 책을 변상하고 사과한 일이 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말 그대로 그것은 습관이라 이번이 처음이 아닐 것 같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었다.



나는 내 소유의 책을 읽을 때도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지 못한다. 심지어 책을 180도로 쫙 벌려 펴지도 못한다. 그것도 일종의 강박일까. 나이를 바꿔서 다시 읽는 경우도 있고, 상황이 바뀌어서 다시 읽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다가오는 문장이나 구절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읽을 때마다 새롭다. 책의 외모도, 내용도.



그런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 보면 정말 다양한 흔적을 만나게 된다. 물에 젖어 구불구불해진 페이지, 연필로 동그라미 친 단어, 좋아하는 문장 아래 길게 그어진 볼펜줄, 접어진 귀퉁이, 말라붙은 무언가의 부스러기, 구독서비스를 홍보하는 명함이 끼워져 있기도 했다.(에세이류에 같은 명함이 대부분 끼워져 있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훼손의 정도가 꽤나 심했다. 연필로 그어진 줄이 있으면 읽으면서 내가 지우곤 하는데, 볼펜으로 너무 야무지게 여기저기 줄을 그어놓아서 그저 한숨을 쉬며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3분의 1은 낙서가 된 책.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흔적



예전에 나도 레드와인을 먹으며 책을 보다 엎어버린 바람에 도서관 책을 빨갛게 물들여 버린 적이 있다. 책이 훼손되거나 잃어버리면 같은 책으로 구입해서 변상해야 한다. '조금만 조심할걸.' 아깝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해서, 후다닥 그동안 대출한 책의 수를 떠올려보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새책을 데스크에 드렸다. 도서관 입장에서는 새책을 받아도 청구기호 스티커를 다시 붙인다던가 전산작업을 해야 한다던가 이래저래 번거로울 것이다. 최대한 깨끗하게 읽고, 혹시나 훼손이 되었다면 얼른 구매해서 반납하기.






다음 사람을 위해서 내가 이 책을 읽은 흔적은 최대한 남기지 않기로 한다. 나의 눈을 번쩍 띄게 해주는 한 줄이 타인에게도 똑같이 느껴지리라는 법은 없다. 타인에게 감동을 강제할 권한 또한 없다.

나에게 잠시 머무르는 동안 그 책을 오롯이 즐기고 안 온듯하게 잘 보내주기. 다시 새겨본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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