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의 눈치를 덜 보게 된다는 점이다. 한창 사춘기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듯한 큰 아이는 늘 앞머리빗을 보물처럼 챙겨 다니며 주위를 살핀다. 누가 볼세라 매무새를 단장하고, 제 또래 아이들이 멀리 지나가기만 해도 후다닥 마주침을 피한다.(대인기피증은 아니란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인 시절이 있다. 그만큼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반짝이는 시절이 지나면 그 또한 다 한때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으며, 나 또한 그러해진다는 것도 알게 된다.
혼자 먹는 밥, 혼자 보는 영화, 혼자 하는 쇼핑. 이런 것들은 이제 내게 너무 쉬운 일들이다. 학창 시절엔 쉬는 시간에 화장실도 친구랑 같이 가야 했던 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교대근무를 하면서 보통의 직장인들과는 조금은 다른 시계를 가지게 되었다. 대부분 출근을 하는 아침 시간에 강을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연어처럼 그들과 반대로 걸어 퇴근을 하거나, 반대로 출근을 하곤 하니까. 여집합의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점차 자연스러워졌고, 이제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아내로,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직장인으로. 인생의 이벤트들을 지나고 나면 하나씩, 둘씩 내 역할의 개수가 많아지고 그에 비례해서 할 일 또한 많아진다. 그 말인즉슨 내가 오롯이 누릴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동안 남 눈치 보느라, 해야 할 것만 같아서 해왔던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 들에 대한 의무감이 옅어졌다. 동시에 새로이 숨구멍이 하나 트인 것만 같았다. 시간의 나이테가 주는 선물이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삶이 단순해졌다는 것이다. '운동할 시간'을 만드는 게 운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면서, 운동할 시간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가급적 배제하려고 애쓴 것 같다. 별로 내키지 않는 강의, 별로 반갑지 않은 만남, 별로 즐겁지 않은 스몰토크의 자리들을 거절했다.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싶었다.
< 오늘부터 나를 돌보기로 했습니다 > - 박현희 -
내가 내 삶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 '운동'.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과감하게 내 인생의 잔 가지들을 칠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운동이었으므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물리적인 걷어냄도, 마음근력을 위한 심리적인 걷어냄도 모두 운동이 있어 가능했다. 주위 사람들의 결이 비슷해지고, 담백해진 것은 고마운 덤.
나이든다는 것은 이렇게 담백해지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