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도시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과학관, 온천수가 나오는 물놀이장, 바닷가 모래사장 같은 곳으로 나들이를 갔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꽉 막히는 도로 위 자동차에 몸을 싣고 다니기 바빴다. 장소의 선택권은 100% 나에게 있었다.
이제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약속이 가장 먼저일 뿐만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이 아니면 나가려 하질 않는다.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 힙한 맛집이나 커다란 통창이 있는 브런치카페 같은 곳을 좋아하는 아이들. 콧바람 한번 쐬러 나가기 쉽지 않다. 그런 아이들과 지난겨울방학 기차를 타고 빵지순례를 다녀왔다.
"내일모레 대전 어때?"
방학이지만 학원에 공부에 맘 편히 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제안을 했다. 평일 아침 일찍 기차로 다녀오는 건 어떻겠냐고. 오후 늦게 집에서 받아야 하는 수업이 있어 그 시간 전까지 돌아와야 하긴 했지만 일찍 출발한다면 꽤 오랜 시간이어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웬일로 아이들이 단번에 그러자고 한다. 대전 방문의 유일한 목적이 바로 '성심당'이었기 때문이다. 빵 하나만으로도 대전을 가야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KTX로 바삐 기차표 예매를 했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다행히 기차표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대전에 가서 하고 싶거나 보고 싶은 것을 찾아보라고 일러두었다. 갑자기 코끝으로 고소한 빵내음이 스쳐가는 것만 같았다.
대전행 기차는 아침 7시 30분. 아침에 남편이 우리들을 서울역에 데려다주고 출근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부산을 떨었는데도 기차에서 잠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이긴 했지만 남편 없이 아이들과 기차여행은 처음이었다. 새삼 아이들이 부쩍 자란 것이 실감되었다. 달뜬 마음으로 대전역에 도착했다. 우리의 목적지인 성심당은 대전역에서 도보로 이동가능했고 찾아가는 방법도 매우 쉬웠다. 20분쯤 부지런히 걸어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곳에 도착했다.
나는 빵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하루에 꼭 한 끼 이상은 빵을 먹는 빵러버. 튀김소보루와 명란바게트 정도가 유명하다는 정도만 알고 있던 나는 문화적 충격에 빠졌다. 성심당 케이크부띠끄는 평일 이른 아침에도 줄을 선 사람들이 있었고, 나도 홀린 듯이 줄을 서게 되었다. 무려 2.3kg에 달한다는 딸기시루케이크를 어느 기사에서 본 듯도 하다. 우리 가족끼리는 그 케이크를 도저히 다 먹지 못할 것 같아 조금 작다는 막내시루케이크를 사서 들고 나왔다. 나는 케이크를 살 계획이 없었는데. 그렇게 홀린 듯 바로 옆 성심당 본점으로 갔더니 사람이 더 많다. '평일 아침이니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라며 여유롭게 생각했는데 웬걸. 아침 갓 나온 빵의 향기에 취한듯한 사람들이 성심당을 가득 메웠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내 손은 눈에 보이는 빵들을 차곡차곡 트레이에 담고 있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람들은 계속 흘러들어왔고 지금 이 빵을 지나가면 나는 이 빵을 담으러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실로 '성심당 매직'이었다.
빵보관소에 빵을 맡긴 후(물품보관함처럼 냉장이나 실온고에 빵을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더라.) 근처를 둘러보았다. 성심당에서 산 빵을 먹을 수 있는 성심당문화원에 가서 바삐 움직인 다리를 잠시 쉬게 해 주었다. 맛있는 음료와 같이 먹은 빵은 아이들이 가장 맛있게 먹은 빵이 되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기자기한 편집샵, 문구점 구경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가보고 싶었던 독립서점도 모두 도보로 이동가능한 곳에 위치해 있어 천천히 구경하고, 작가님의 사인이 담긴 책도 구매해 지인에게 선물했다. 게다가 둘째 아이와 종종 보았던 3D펜 전문 유튜버의 카페도 인근에 있었다. 누가 대전을 노잼도시라고 했던가. 셋이서 입을 모아 대꿀잼을 외쳤다.
두 손 가득 빵을 들고 서울행 기차를 탄 시각은 오후 2시 30분. 더 있었어도 힘들었을 것 같다는 아이들은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탄수화물 가득 먹고 내내 걸어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집으로 돌아와 의기양양하게 아빠에게 두 손 가득 빵을 건네며 여행기를 쏟아내는 아이들. 꽤나 맘에 들었나 보다. 다음에 꼭 한 번 더 같이 가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고 하는 걸 보니.
앞으로도 계속 대전을 지켜주세요, 성심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