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받아온 바질이 민머리가 되어갔다.
얼마 전 집들이 겸 놀러 간 친구네 집에서 선물로 받아온 아이.
한 잎, 두 잎...
잘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멋들어지게 꾸며주느라 애썼다.
평생 써본 적 없는 허브였는데,
막상 없어지려고 하니 그 존재의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이란.
당근앱을 둘러보다 이 예쁜 아이가 눈에 들어온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알고리즘 네 이놈, 고맙다!
한시라도 빨리 귀여운 바질을 데려오고 싶었다.
판매자에게 연락을 했더니 이내 답장이 왔고,
우리는 제법 이른 아침 시간인 9시 40분에 방배역 4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당일, 당직을 서고 난 아침이었지만
혹시나 약속 시간에 늦을까 걱정을 해서인지 알람을 맞춘 시각보다 더 빠르게 일어났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보고 잠이 들었는데,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나를 하늘이 보우하사 비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약속시간보다 꽤나 더 빨리 방배역에 도착했다.
9시 10분, 전 역 즈음 판매자에게 채팅을 보냈다.
"곧 뵐게요, 좀 더 일찍 도착할 것 같아요:)"
가끔 약속시간을 잊는 판매자도 있었기 때문에, 거래 알림 차 겸사겸사 채팅을 보냈는데, 또 이내 답장이 온다.
"네 도착해있어여:)"
음?
이른 아침에, 내가 도착하는 출구까지 물어 나와주신다는 판매자는 약속시간 20분도 전에 이미 약속장소에 나와있다고 하시는 거였다. 몇 년째 당근으로 거래를 해왔지만 이런 적은 또 처음이다.
그런데 출구를 둘러봐도 판매자가 보이지 않았다.
바질 비스무리하게 생긴 이파리 하나도 볼 수 없는 게 아닌가.
잠도 아직 덜 깬 나는 당황스러운 맘으로 채팅을 보냈다.
"앗, 저도 앞인데.."
"모자 쓰고 있어요!"
이 채팅을 보고 다시 4번 출구를 둘러보는데
출구 앞 은행 입구에 서있는, 아니 서계신 하얀 챙모자를 쓴 귀여운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당근이세요?"
당황함을 감춘 내가, 마치 당신인 줄 알고 있었다는 양 자연스러운 모양새를 가장하며 건넨 멘트.
난 왜 작고 귀엽고 부지런해 보일 어느 젊은 여성일 거라고 짐작했을까.
흰 챙모자가 정말 잘 어울리시던 어르신의 말투때문이었을지,
당근의 귀여운 고양이 프로필 사진 때문이었을지,
아니면 나의 좁디좁은 편향적 사고 때문이었을지.
하지만 설익은 가을바람에 실려오는 바질향을 맡고는
아무렴 어때, 이렇게 예쁜 바질이 생겼으니 너무 좋잖아, 하고 이내 단순해진다.
그러고는 그 아침 약속을 되짚어보며,
20분도 더 일찍 약속 장소에서 기다려주는 여유와 내 동선을 물어 출구로 약속장소를 정해준 배려는
멋진 어른에게서 나왔던 거군 싶은 거였다.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하정 작가님의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에 나오는 '아네뜨'를 잠시 만난 것도 같다.
감사해요,
다음에 또 예쁜 식물로 당근 하며 만나 뵐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