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강 같은 커피

by 심바

가을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찾아간 산 아래 두부집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슴슴한 육수에 부드러운 두부, 조금의 조미료도 가미되지 않은 정갈한 나물반찬 그리고 잣막걸리.

미간을 양껏 찌푸리고는 연신 '너무 맛있어', '이거 빨리 먹어봐'를 외치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등산 후 식사를 마쳤다.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 길목에 놓인 후식, 바로 믹스커피였다.






아메아메아메, 아메.

커피는 아메리카노만 마신 지 몇 년이 되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먼저 출근한 부장님께 건네드리며 내 것도 한 잔 하고 타먹던 믹스커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시지 않게 되었다. 담배와 커피의 냄새를 멋대로 믹스해 버린 그들의 입냄새를 스치듯 맡고 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칼로리도 높다잖아, 설탕까지 굳이 하며 믹스커피는 서랍 구석으로 점점 밀려들어갔다.




그런데 그날 그 두부집에서 노란 믹스커피가 원근법을 무시하고 눈에 쏙 들어와 버린 것.

등산 친구들 중 누구도 마시지 않았던 그 달달한 커피를 한 봉 야무지게 챙겨 들어 종이컵에 부었다.


쓰르르르륵.

커피가루와 설탕과 프림이 쏟아지는 경쾌한 소리에,

쪼르르르르.

옆에 있던 온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따라 부으니 특유의 달달한 향기가 퍼진다.


원래 콩 한조각도 나눠 먹어야 맛있으니까 친구들에게 한 모금만 하라고 먼저 건넨 순간,



물을 너무 많이 부었잖아!



응? 물이 많... 많아?

그리고 이내 내가 탄 그 믹스커피를 훔치듯 뺏어 들어 마셔본다. 그 맛이 어째 맹숭맹숭한 것도 같다.


그래도 단맛이 느껴지긴 해...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단맛이었다니까? 혼자 주저리주저리 하며 남은 커피를 털어 넣었다.






#믹스커피 타듯이 사는 것도 쉬웠으면

내가 믹스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맛도 있겠지만 일단 쉬워서다. 봉지 뜯고 쏟은 다음 물 부으면 끝. 쉬운데 내가 원하는 맛, 커피가 어려운 나로선 커피가 쉽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 문장수집생활 / 이유미 >


쉬운 커피라니. 내겐 무엇보다 어려운 믹스커피 너란 녀석.


그래, 물 양을 그만큼만 하라는 거지.

환상적으로 물의 양을 맞춰 꼭 다시 마셔보리라 하고 챙겨둔 믹스커피 한 봉은 아직 집에 그대로 있다.


언젠가 달달한 한 컵의 공기가 필요한 날 배운 대로 잘 만들어 마셔봐야지, 입에 쩍쩍 달라붙을 믹스커피를.


친구가 만들어준 어제의 믹스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