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속 손이 가장 쉬이 닿는 위치에 항상 구비되어 있는 캔맥주.
남편도 나도 하루를 마무리한 후 집에서 마시는 맥주 한 캔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저녁 반찬에 맘에 드는 메뉴가 올라오면 서로 눈짓을 한다.
'한 잔 콜?' 음주인이라면 모두 아는 그 손짓과 함께.
사실 반찬이라는 핑계는 거들뿐. 안주로 먹을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날에도 캔맥주 하나 정도는 싱크대 앞에 서서도 꾸울꺽 꾸울꺽 마실 수 있지. 그렇게 우리는 경쟁하듯 냉장고 속 그것들을 비워내기에 바빴다.
그러던 어떤 날 '이것만 하고 나서 새우깡이랑 같이 마셔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하나 남아 있던 캔맥주가 제자리에 없는 것을 확인하면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다. 이름표를 붙여놓은 것도 아니지만, 마치 내 주머니에 들어있던 것을 뺏긴 느낌이다. 집에서 3분이면 닿는 편의점에 나가는 일이 구억만리같이 멀게 느껴진다. 내건데 분하다.
근데 최근 들어 맥주 한 캔이 이주도 넘게 외로이 냉장고를 지키고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알레르기로 수난시대를 겪고 있는 남편이 맥주 가로채기를 더 이상 하지 않자 나도 왠지 그 경쟁이 시들해진 것... 은 아니고. 내일 아침 운동을 해야지 하고 생각해 버리면 오늘 저녁의 이 맥주가 굳이 당기지 않게 된 것이다.
맥주 한 캔이 뭐 대수라고. 그러나 그마저도 마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게 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알코올이 1%도 없는 몸으로 운동할 때의 가벼움을 알아버렸기 때문. 둘째, 시간이 갈수록 알코올을 분해하기 버거워하는 나의 간 때문. 두 번째 이유로 인해 첫 번째 이유가 성립되는 인과관계적 요인들 때문에 나는 저녁의 맥주 한 캔도 주저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내면소통으로 유명하신 김주환 선생님은 술이 정 먹고 싶으면 간장종지에 담아 안주로 살짝 찍어먹으라고 하셨거늘. 그게 대체 무슨 맛이에요 선생님 하고 속으로 외치던 내가 음, 다음에 진짜 간장종지에 부어볼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계속 이렇게 살면 참건강인이 될 것 같다.
예전에 본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난 맥주 같은 건 잘 안 마셔."
"맥주를 안 마신다니, 그건 여름의 삼분의 이를 즐기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 오늘의 단어 / 임진아 >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유리잔에 담긴 시원한 맥주를 바닥이 보일 때까지 단숨에 마시고 나면 한여름이 잠시 발끝으로 물러나는 기분이다. 술맛을 모르는 사람보다는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좋다며 친구들과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오늘 아니면 언제 마셔'를 시전 하던 때도 있었다.(물론 지금도 가끔 그러기도 한다. 사람이 완벽하면 매력이 없지 않나요.)
맥주 한 잔보다 단백질셰이크 한 잔이 조금 더 반가워진 내가 가끔 낯설다.
하지만 이건 분명 기분 좋은 낯섦.
오늘 아침엔 달리기를 10km 뛰었고, 저녁엔 새로 시작한 운동수업을 한 시간 반동안 열심히 하고 왔다.
오랜만에 외로이 냉장고를 지키고 있는 캔맥주 하나를 싱크대 앞에 서서 꾸울꺽 꾸울꺽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