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입만 열면 힘들다는 중2 큰 아이는 요즘 흡사 몸을 최대한 부풀려 가시가 삐죽삐죽 돋아난 한 마리 복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누구도 가까지 오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 알고 보면 작고 여린, 아직 세상에 태어난 지 15년밖에 안된 아이일 뿐인걸 알면서도 어른인 나는 같이 짜증을 내고 있다. 어떡하냐, 엄마도 사람이다.
공부가 힘들지 않은 대한민국 학생이 어디 있겠냐마는 큰 아이는 유독 자신을 옭아매가며 누구도 시키지 않은 힘듦을 자처했다. 컨디션이 최상일 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건하에서나 달성가능한 목표를 세우고는 지키지 못하면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했다. 누가 보면 고3인 줄. 이제까지 읽은 교육서와 육아서, 각종 유튜브를 통해 섭렵한 지식과 정보들을 열심히 읊어댔다. 잘하고 있다고, 결국 우리는 이걸 고3까지 해내야 하니 완급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보자고, 그리고 사실 대학을 가면 그때부터 시작인 거라고도 얘기해 주었다. 남들은 공부하라는 소리 하기도 바쁘다는데 나는 복 받았네 싶기도 했지만, 아이는 본인의 스트레스와 우울한 감정을 모두 나에게 쏟아내는 성향이었기에 나도 때론 그것들을 받아주기가 힘들곤 했다. 지금 이 아이가 짜증을 내는 시간들이 사춘기라서 이러는 건가 아리송했지만 부디 그러기를 바랐다. 남들 할 때 하고 지나가자, 사춘기는 엄마랑 말을 안 섞는 거부터 시작이라던데 아니건가 맞는 건가 매일 헷갈렸다.
"나 화장 배울 거야. 친구들은 다해. 겨울방학 때 배울 거야."
어제저녁 뾰로통한 얼굴로 요즘 공부도, 친구도, 피부결도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며 투덜대던 아이는 급기야 저런 말을 내뱉었다. 내뱉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딱히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아이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단어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드름이 나고 내 눈에도 안 좋아 보이길래 피부에 좋다는 온갖 화장품이며 팩을 사다 날랐지만 색조화장까지 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둘째 아이가 전에 없이 언니 편을 들며 거든다.
"엄마, 요즘 초등학생들도 다 화장해~!"
응. 물론 엄마도 알아. 내 눈에도 보이거든.
과외 수업을 받으러 들어가는 큰 아이에게 나는 굳이 "... 화장? 그걸 지금 왜 배운다는 거야?"라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아이의 말이 뻔하게 예상되었지만 나는 순간의 당황스러움을 숨기는데 실패했다.
'애들이 화장한다고 하면 싼 거 사쓰지 말고 피부에 좋은 걸로 사주라고 하더라.'
어느 날 친구와 나눈 얘기에 내가 한 말이 뇌리를 스쳐갔다.
나는 저 말을 내 아이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세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했던 것이라는 것을 순간 깨달았다.
고작 화장 따위로, 몰래 하는 것도 아닌 엄마에게 미리 알려주는 말 한마디 같은 걸로 무슨 호들갑이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그 말은 내가 얼마나 통제형의 부모였는지 스스로를 톺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 아이는 그럴 리가 없다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왠지 이것이 진짜 사춘기의 시작이 될 것 같아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딱 중2 때 사춘기를 호되게 치렀던 나는 그런 아이를 만나게 될까 봐 조금, 아니 제법 많이 두려워졌다.
김미경 강사님은 둘째 아이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왔을 때 집에 '축 자퇴' 플래카드를 걸어주셨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그릇이 너무 작아서, 1인분의 인생도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내게 육아는 언제나 가장 어려운 숙제다. 아이와 매일 조금씩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마음은 나도 아직 덜 성숙한 부모라는 게 드러나 버린 것 같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록 詩
이영미 편집자님의 <마녀엄마>를 읽다가 몇 번 눈물을 훔치고 그 책에 실린 박노해 님의 시를 옮겨 적어두었다. 나는 아직 좋은 부모가 되려면 멀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게 아닐까, 좋은 부모라는 것은. 가닿기나 할 수 있을까.
과외 중간에 화장실을 잠시 다니러 나온 아이에게 손짓을 했다.
'화장 배워!' 무음으로 입을 크게 벌려 외쳤다,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안된다더니 왜?' 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입꼬리가 아주 미묘하게 스윽 올라간 것 같은 건 나의 착각이려나.
내일 모레 큰 아이 손을 잡고 올리브영에 가서 장바구니를 가득 담아올 참이다. 사춘기 수발 이제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