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혼생활은 30년 된 주공아파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 어린 나이도 아니었지만 나도, 남편도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두운 5년 차 직장인이었다. 둘 다 지방에서 생활하다 직장 때문에 서울살이를 시작했다는 점도 같았고, 회사-집-회사를 반복하며 그 외에는 그렇다 할 다른 관심사가 없다는 것도 비슷했다.
신혼집을 어디에 구해야 하는가는 나와 남편이 아니라 시아버지가 그 결정을 대신하셨다. 그 주변지역에 호재가 있다는 것을 신문으로 보시고는 '너희 첫 집은 거기로 잡아라'하신 것이다. 결혼식이 코앞까지 왔음에도 일에 허덕이고 있던 우리는 아무런 의견도, 생각도 없었다. 그저 당시의 우리에게 부동산이란 너무나 크고 어렵고 버거운 문제였으므로 아버님의 말씀에 이의가 없었다. 그렇게 17평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문간방 하나, 주방, 침실 겸 거실. 17평의 오래된 아파트는 원룸형 오피스텔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짐을 수납할만한 공간도 거의 없는 빠듯한 공간이지만 어쨌든 첫 신혼집이기에 우리에겐 소중했다. 인테리어를 마치고 이사를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의 큰 행사를 치러야 했다.
바로 집들이.
시댁 식구들과 한 번, 친정 식구들과 한 번. 변변한 식탁이나 여럿이 둘러앉을 큰 교자상 같은 것도 없어 바닥에 이런저런 음식들을 깔아놓고, 눈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친정 식구들이 신혼집에 왔던 날, 여기저기 둘러보는(둘러본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몇 발자국 옮길 곳 없는 좁디좁은 집이었지만) 아빠의 시선 끝이 뭔가 애잔한 느낌이 묻어 나왔다. 숙제를 제대로 했는지 검사받는 학생의 기분에 젖어 잠시 생각에 빠졌던 그때, 아빠가 불쑥 한 마디를 내뱉으셨다.
출근하는 사람이 화장대도 하나 없고..
말했다시피 짐 넣기도 좁은 문간방 하나에 거실 겸 안방과 주방밖에 없는 좁은 집이었다. 없는 가구가 어디 화장대 하나뿐이었을까. 그 와중에 포기할 수 없었던 티브이와 티비장 말고는 필수 가전도 겨우 욱여넣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내게 화장대는 꼭 사라며 돌아가시는 길에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셨다. 아마 딸자식을 떠나보내는 것 같은 허전함과 아쉬움이 그 말에 담겨있었으리라. 매일 아침 바삐 나가느라 화장도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그 공간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던 화장대를 사야만 했다.
왜 하필 화장대였을까?
왜 엄마가 아닌 아빠가 안타까워하며 지적하셨던 걸까?
그때의 신혼집에는 당연히 책상도 없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화장대'라는, 남편은 손댈 수 없을 너만의 숨 쉴 공간을 얻어내라는 무언의 지지였을까. 화장대는 몇 년간 좁은 집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 역할을 하다가 다음 이사 때 과감히 이별을 고했다. 신기할 만큼 어느 공간에도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책상 자체가 없고, 필요할 때는 화장대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 가구배치는 한정된 공간 안에 거주자가 필요하거나 좋아하는 가구를 우선순위에 맞춰 자리하는 것이다. 모든 가구를 한곳에 둘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왜 책상이 없는지'보다, '왜 화장대가 책상보다 우위를 차지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 어제 그거 봤어? 이자연 >
이 책을 읽다가 잊고 살았던 내 인생 첫 화장대가 생각이 나 이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 그때 만약 화장대가 아니라 책상을 샀었더라면 나는 그것을 두고두고 소중히 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