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인 듯 김장 아닌 김장 같은 너

by 심바
배추랑 양념 보낼 테니까 집에서 한번 해보렴



아.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네! 제가 해볼게요!"하고 대답했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못하겠다고 할걸, 요즘 너무 바쁘다고 할걸... 하지만 혼자 소심히 중얼거리는 의미 없는 외침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김장(정확하게는 버무리기)을 해야 한다.




이제까지 김장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멀리 사는 맞벌이 며느리라는 핑계로 연례행사에서 제외되었다. 어머니라고 왜 힘들지 않으시겠나. 그렇지만 시어머니께서는 싫은 내색을 하시거나 눈치를 주신 적도 없다. 어쩌면 내가 눈치가 없었던 건가 싶기도 하다. 알아서 때가 되면 가서 손을 덜어드려야 했나. 하지만 수신지 작가님의 <며느라기>를 본 이후로 할 수 없거나 하기 싫은 것을 며느리라는 이유로 억지로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배움은 100% 실천했다.


그럼 김치를 잘 먹지 않았냐. 그건 또 아니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아닌가. 아이들이 좀 자란 이후 매운 음식이 식탁에 올라와도 되는 시점부터는 가장 만만한 반찬이 김치였다. 김치볶음, 김칫국, 김치찌개, 김치전, 김치볶음밥에 이르기까지 활용법은 무궁무진했다. 가장 좋은 점은 늘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어머님은 김장을 하실 때마다 우리 집에 몇 번이고 택배를 보내주셔야 했다. 규격이 정해져 있는 스티로폼박스에 최대한 많은 양의 김치를 넣어 보내고자 하셨지만, 말 그대로 김치통도 배달박스도 다 정해진 크기가 있어서 테트리스를 하시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김장시즌이면 늘 두 박스 이상의 아주 무거운 택배가 집으로 꼬박꼬박 배송되었다. 나로선 그 택배를 받는 날이 가장 힘들었다. 틈하나 없이 꽉 들어찬 김치며 구석구석 담긴 반찬에 각종 해산물들까지 정리해서 넣는 일이 고됬다. 마늘까지 다 갈아서 보내주시는 시어머님의 노고는 생각도 않은 채 내 몸 힘든 것만 고달팠다. 아직도 철이 없는 며느리다.




집에는 커다란 빨간 양동이 비슷한 것조차도 없다. 아이들과 남편과 내가 먹고 소비하는 음식들이 그런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장은 어디서 어떻게 한단 말인가. 급히 '김장 준비물'같은 것들을 검색해 보았다. 어느 정도의 장비들을 마련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사실 내가 할 일은 양념을 절인 배추에 버무리는 것이다. 김장이 고된 이유는 배추를 절이는 것부터가 전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시어머니께서는 강원도의 고랭지배추가 맛있더라며 절임배추를 사길 원하셨고, 그 주문은 내가 담당해 여러 군데를 검색하고 리뷰를 훑어본 다음 보내드리고는 했다.

그렇다면 다음은 양념을 만드는 것. 집집마다 김장김치의 맛이 다른 이유는 양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맛있고 몸에 좋은 온갖 것들을 넣어서 만든 커다란 양념통과 절임배추가 드디어 도착했다.

이것도 김장이라고 수육고기까지 같이 보내주신 우리 어머니. 손이 많이 가는 며느리라서 죄송해요.




<대 양념 버무리기> 프로젝트는 남편과 둘째 아이와 내가 집도했다. 배추는 싱크대 선반 위에 쌓아 소금물을 마저 탈수시키고, 바닥에는 다이소에서 산 김장매트와 커다란 김장용 비닐을 깔았다. 제 손보다 한참 큰 장갑을 낀 둘째는 아까부터 신이 났다.

"여기 이렇게 잎 사이사이마다 양념을 발라주면 돼." 하며 시범을 보여주니 곧잘 따라 한다. 큰 일꾼이다. 남편은 배추를 부지런히 나르고, 여기저기 튀는 양념들의 흔적을 지우기 바빴다. 아침에 퇴근하자마자 온 택배상자들을 봤을 때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났었는데, 역시 일은 일단 시작하고 나면 생각이 없어진다. 작은 배추 이파리는 입에 날름 넣어가며 부지런히 했더니 '양념 묻히기' 작업이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박스를 개봉했을 때부터 모든 정리를 마칠 때까지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20kg의 김장김치가 우리 손끝에서 탄생했다.


영롱해라, 내 김치




이것도 김장이라고, 하고 나니 그 어떤 가사노동도 하기 싫어 점심은 배달음식으로 해치웠다. 빨갛게 잘 버무려진 김치들의 사진을 찍어 어머니께 보내드리고 전화를 드렸다. 사실상 90%의 일은 어머니께서 다 해주셨지만, 아주 약간의 노동은 덜어드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 뼘 더 어른이 된 느낌이다.

늘 농담처럼 '저는 어머니처럼 애들한테 이렇게 김치 못 보내줄 것 같은데 어떡하죠.'라고 했었는데, 아주 어쩌면 나도 나중엔 김장에 도전해 볼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어머님의 빅픽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