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바디프로필 촬영기
왠지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회식에 약속들도 하나둘 생기고, 곧 아이들의 방학도 다가온다. 말인즉슨, 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기회들이 많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몸을 제대로 만들어 바디프로필을 찍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다.
홈트에서 시작해 헬스장에서 혼자 갈고닦은 복근이 한 살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바디프로필이라는 것을 한번 찍어볼까 하고 생각했다. 관장님께 "바프를 찍어볼까 하는데..." 하며 여쭈니 대뜸 하시는 말.
스튜디오 예약하셨어요?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약을 하는 것이었다. 디데이가 정해져 있어야 무엇이 되건 한다는 말. 덧붙여 운동도 물론 중요하지만 바디프로필 준비의 9할은 '식단'이라고 하셨다.
아... 내가 가장 주저했던 것이 바로 식단 때문이다. 불규칙한 근무 스케줄로 인해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유연하게 식사를 해야 하고, 그래서 더더욱 내가 맛있게 먹고 싶은 것들로 그 메뉴를 채우고는 했다. 특별히 음식의 칼로리에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해서 출근한 날의 식사는 매번 화려했다.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먹는 즐거움이 꽤나 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바디프로필을 찍으려면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제한해야 할 터. 연말 약속들이 몰린 전 주, 나는 충동적으로 스튜디오를 검색하고 바디프로필을 예약했다. 촬영은 5일 뒤. 낙장불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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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생성형 AI에게 식단과 운동스케줄을 짜달라고 썼다. 3초도 지나지 않아 내 근무스케줄에 맞춰 촘촘히 제안해 준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이대로 잘 따라 하는 것뿐이다. 바프 촬영을 위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동안 다이어트와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며칠만 오이와 당근과 방울토마토와 닭가슴살을 먹고 늘 하던 대로 운동을 하면 됐기에 부담이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다. 다만 만약 이걸 오래 해야 했다면 나는 절대로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난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절대 아니던걸. 근력운동과 달리기를 번갈아 하며 좀 더 선명한 근육을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복근아, 더 힘을 내줘!
스튜디오에서 어떤 콘셉트와 배경으로 촬영을 할지 참고자료들을 보내주었다. 애초에 안(?) 야한 콘셉트로 복근을 강조해서 찍어야지 정도만 생각해 두었을 뿐 자세나 분위기 같은 건 미리 염두에 둔 것들이 없었다. 스튜디오에서 준비를 하라는 대로 의상을 급히 준비했다. 음, 내 생각과는 좀 다른데. 어떤 느낌으로 사진이 나올지 전혀 예상도 되지 않았다. 전날 저녁 러닝클래스 수업을 힘겹게 듣고 난 후 물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수분커팅까지 하니 이젠 조금씩 괴로워진다. 에너지젤을 하나 먹고 다음날 12시에 예약해 둔 메이크업샵에 도착했다.
둘째 아이의 돌촬영 이후로 전문가에게 메이크업을 받는 건 처음이다. 원하시는 게 있냐고 물으셔서 촬영배경색과 의상을 보여드리고 저에게 어울리는 걸로 알아서 해주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전문가시니 어설픈 저보다 훨씬 나으실 거라고. 역시나 이렇게 저렇게 하면 잘 어울리실 거라며 1시간 동안 공들인 헤어와 메이크업은 나를 완벽하게 변신시켜 주었다. 게다가 샵의 화려한 조명이 나를 비추니 모르는 사람이 맞은편에 앉아있다. 아티스트님께 틈새 달리기 영업을 하고 샵을 나와 2층의 스튜디오로 향했다.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얘기해 주신 조언을 되새겼다.
"작가님이 근육이 잘 나오게 포즈를 다 잡아주시니까 스트레칭 꼼꼼히 하세요."
"옷을 보정하는 것보다는 몸을 보정하는 게 훨씬 쉬워요, 준비하신 옷만 입고 찍어보세요."
과연 촬영이 어떻게 진행될까 더욱 궁금해졌다.
하얀 패딩을 입은 여자작가님과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태어나 처음 입어보는 (속)옷을 입고 눈부신 조명 아래 모르는 사람 앞에 서서 멋있는 척을 하려고 하니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 아니나 다를까 처음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보여주시는데 웬 각목이 서있다. 하지만 의외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럴듯한 근육이 찍혀있는 게 아닌가. 작가님과 상의 후에 처음에 입기로 했던 청바지는 추가컷으로만 진행하기로 했다.
내가 할 일은 작가님이 허리를 틀라고 하면 틀고, 팔에 힘을 주라고 하면 힘을 주고, 발끝을 힘주어서 세우라고 하면 세우고, 숨을 더 이상 내뱉을 수 없을 때까지 내뱉는 것들이었다. 물론 갈비뼈가 욱신거릴 만큼 힘든 순간들이었지만 포즈가 바뀔 때마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시고 나면 더욱더 힘을 쥐어짜 근육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자세를 잡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주시는 작가님이 위대해 보이기에 이르렀다.
나의 버킷리스트. 바디프로필 촬영을 드디어 마쳤다. 자세를 잘 잡아주고 근육도 잘 만들어오셨다며 칭찬을 듬뿍 받은 나의 첫 촬영. 집에 돌아와 메이크업을 지우기 전에 만난 둘째 아이는 엄마가 너무 무섭다고 했다.
낯설지? 나도 그래! 3시간 동안 즐겁게 탔던 호박마차에서 내릴 시간이다. 두꺼운 메이크업을 지우고 나니 시원섭섭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콘셉트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어떻게 저렇게 찍어요' 하는 사진을 200장 찍고 왔다. 참 신기하다. 남의 사진은 두 눈을 가리고 보게 되는데, 내 사진은 꼼꼼히 들여다보게 되더라. 몇 년 동안 내가 해왔던 운동이 내 몸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밖에서 공들여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신기한 경험이다. 결국 맘먹고 해낸 내가 대견하다. 장해.
내가 고른 3장의 사진은 100일 후에 멋지게 보정되어 만날 수 있다. 쑥과 마늘만 먹고 굴속에 있는 게 아니라, 치킨과 라면과 과자와 맥주를 맛있게 먹으면서 재미있게 운동하며 기다리면 된다.
저기 혹시 바디프로필 찍고 싶으시면, 일단 예약부터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