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좋은 아빠인가, 오공 vs 베지터

by 세온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 오공이 인격파탄자에 최악의 아버지라는 의견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가 베지터보다도 더 나쁜 놈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견해는 놀랍게도 많은 지지를 받으며 급속도로 세를 불렸고, 이젠 거의 지배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나는 오공의 오랜 팬으로서 이런 현실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비교할 사람이 따로 있지, 아무리 그래도 베지터보다도 못하다니.


그래서 정리해보았다. 아버지로서 오공과 베지터의 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장면을.



오공


몹쓸 놈 라데츠에게 어린 아들 오반이 납치당하자 구하러 온 오공이다.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라데츠에게 형편없이 당하는 아빠를 보고 특유의 분노 파워를 발휘한 오반. 그러나 아직 너무 어려 분노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오반은 곧바로 라데츠의 먹잇감이 될 위기에 처한다. 오공은 그런 아들을 보고 간절히 도망치라고 외친다.







저승에서 계왕에게 수련을 받고 돌아온 오공. 베지터와의 결투를 앞두고 오반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려 한다. 이겨서 돌아가면 같이 낚시하러 가자며 오반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이 영락없는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셀과의 결전을 앞둔 얼마 안 되는 휴식 시간, 오공 가족은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오공은 오반을 옆에 두고 호수에 물고기에 많을 것 같다고 다정히 말을 건다. 그리고 뒷 장면은 생략되었지만, 큰 싸움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오반을 자상하게 위로해주기도 한다.




오반이 장성한 후, 같이 보낸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곧 저승과 이승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로 헤어지게 되었다. 오공은 멋지게 자란 자식을 보고 흐뭇해하며, 오반은 그런 아버지의 애틋한 부성애에 감동받는다.







베지터


인조인간과의 싸움을 구경(?)하러 온 부르마와 아기 트랭크스. 인조인간이 일으킨 폭발에 모자는 위험에 처하고, 미래에서 온 청년 트랭크스는 정체를 밝히면 안 된다는 것도 잊은 채 '어머니!' 를 외친다.


그러나 이때 애 아빠인 베지터는?..


왜 피붙이를 구하지 않았냐고 따지는 미래 트랭크스에게 베지터는 일갈한다. 시끄러. 난 그런 거에 흥미 없다구.



서로 부자 관계라는 걸 알고 나서도 베지터는 트랭크스에게 1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귀찮게 여기며 사사건건 타박한다.





근데 그러다가 셀한테 트랭크스가 죽으니까 급발진해서, 힘 차이도 생각 안 하고 덤벼든다. 결국 셀한테 죽기 직전인 베지터를 오반이 구하려다가 한쪽 팔을 못쓰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한다.


이 장면은 베지터에게 전혀 없는 줄 알았던 일말의 인간미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장면이긴 하나, 그렇다고 평소의 못된 행실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꼬마 트랭크스와 대련하는 베지터. 트랭크스를 가르치려고 무려 놀이공원 데려다주기를 보상으로 내건다. 평상시에 아이와 놀이공원 한 번 안 가본 것을 알 수 있다.


문제의 그 장면이다. 많은 독자들이 눈물 흘리게 만든 베지터의 자살 직전 독백이다. 자기밖에 모르고 살았던 베지터가 난생 처음 가족을 위해 희생하려 한다는 점에서 감동적인 씬은 맞지만, 역시 평소 행태를 덮을 정도는 아니다.








정리하자면, 오공은 시종일관 틈틈이 시간을 내 아이와 놀아주려 했고, 그 아이가 위험에 처하면 지체없이 구하려 했으며, 언제나 다정하고 자상한 태도를 보였다. 반면 베지터는 갓난아기였던 자식도 구하지 않은 전적이 있고, 아들을 내내 무시하다가 죽고 나서야 뒤늦게 분노하고, 놀이공원 한 번 함께 간 적 없다.


이 중 누가 더 좋은 아빠인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요즘 베지터가 고평가되고 오공의 평판이 좋지 않아진 이유는 소위 츤데레라고 하는 성격이 부각되고 인기가 많아졌기 때문인 것 같다.


평소엔 차갑다가 아주 가끔 따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츤데레인데, 베지터의 경우 그 찰나의 다정함이 너무 과대포장되는 듯하다. 츤데레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10번 못하고 1번 잘해주는 사람보다 10번 잘하고 1번 못하는 사람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지터는 워낙 주위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어서 좋은 일 한 번;;이 더 부각되는 데다가, 그 한 번의 임팩트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독자의 뇌리에 깊이 각인될 수밖에 없다. 계속 착하기만 했던 오공보다 악과 선이 공존하는 베지터가 더 입체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런 여러 요소가 겹쳐져 오공이 더 나쁜 아빠라는 선입견이 만들어진 것 아닐까.


약간은 억울한 마음으로 써 본 이 글이 그런 선입견을 타파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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