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나는 PC통신을 이용해 본 가장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내가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터넷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PC통신도 파란 화면에 흰 글자가 아닌, 천리안2000이라는 웹 서핑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유니텔이라는 4대 회사 중 나는 천리안을 사용했다. 이유는 단지 아빠의 회사 동료가 CD를 구해 깔아주신 프로그램이 그것이어서였다. 그전까진 컴퓨터가 있어도 타자연습이나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공부 정도만 했던 지라, 천리안이 깔리던 날 느낀 환희는 엄청났다.
천리안에 로그인하면 특유의 BGM과 함께 찌직 찌직 거리며 전화선을 통해 망에 접속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매일매일 그 친숙한 소리와 함께 통신을 즐기곤 했는데, 가장 많이 이용한 서비스는 역시 동호회였다.
당시 가장 큰 관심사였던 드래곤 볼과 관련된 동호회를 검색해보았더니, 천리안에는 드래곤 볼 동호회가 두 곳이 있었다. 나는 곧장 그중 한곳에 가입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동호회에서는 각자 닉네임으로 통했으며 회장의 닉네임은 찌찌였다. 그녀는 열렬한 오공 팬이었기 때문이다. 오호라. 그렇다면 나는 비델을 해야지. 그렇게 회장 언니와 나는 의도치 않은 고부 관계로 맺어지게 되었다.
나는 찌찌님을 비롯한 다른 회원들에게 큰 배려를 받으며 활동을 이어갔는데, 동호회에서 가장 어린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요즘 말로는 잼민이, 옛날 말로는 초딩이었던 것이다.
6학년에 불과했던 나에 비해 찌찌님은 스무 살의 성인이었고 그 밑의 회원들도 최소 고등학생이었다. 그러나 언니 오빠들은 어린 나의 철없는 언사와 행동을 너그러이 눈감아주었고, 단 한 번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지금 떠올리면 이불을 천장까지 날려버리고 싶을 만큼 유치한 행태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회원들의 넓은 마음씨에 힘입어 나는 드래곤 볼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여러 가지 영상과 자료들을 구할 수 있었다. 브런치 매거진으로 만든 ZARD의 노래를 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애니메이션의 엔딩으로 ZARD의 노래가 쓰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영상이나 음악 포맷은 확장자가 RM이나 RAM인 리얼 플레이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화질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화선의 끔찍한 속도로는 몇 시간이 걸려야 다운받을 수 있는 파일이 많았다. 나는 언제나 굴하지 않고 다운로드 창의 색깔 막대가 다 채워지기를 기다리곤 했다.
리얼 플레이어
동호회 게시판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은 매우 즐거웠다. 다들 드래곤 볼의 전문가였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능력자들도 계셔서 희귀한 극장판의 자막 제작이나 주제가 가사의 번역도 맡아주셨다. 만화 내용을 주제로 앙케이트를 벌이기도 했고, 퀴즈 대회도 열어 상품을 지급하기도 했다. 나는 퀴즈에서 1등을 해 만화책 한 질을 통째로 수여 받는 호사도 누렸다.
그런 활동이 너무 재미있어서 학교나 학원을 마친 후 매번 천리안에 접속했고 주말에는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곤 했는데, 그러다 결국 전화요금이 10만원 넘게 나오는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고지서를 손에 들고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두 눈에서는 이글이글 불꽃이 타올랐다. 순간 뽑힌 전화선으로 먼지가 휘날리도록 얻어맞을 줄 알았다. 이대로 열두 살의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 건가 했지만 웬일로 엄마는 상상한 것만큼 심하게 화를 내진 않으셨다. 너무 충격적인 금액에 혼낼 힘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역시 예전만큼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용기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천리안에서 노는 시간을 줄여야 했다.
그러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급격히 PC통신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 반 친구들이 너도나도 자기 집에 ADSL을 깔았다며 자랑했다. 그걸 깔면 신기하게도 인터넷을 하면서 동시에 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초고속 인터넷을 향한 전국민적인 열망은 커져만 갔고 10대를 대표하는 소녀 가수 보아는 Peace B is my network ID라고 외쳤다. 우리 집은 그리 늦지 않게 하나로통신에 가입했다. 그렇게 PC통신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천리안도 점차 이용자가 줄어들었고 활발히 활동하던 사람들도 점점 떠나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접속한 때가 언젠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그후 동호회와 비슷한 역할의 다음카페에는 드래곤 볼 팬카페가 우수수 생겨났지만 이상하게도 예전같은 친근함과 끈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훨씬 많은 사람들과 자료가 몰려들었으나 활동하는 재미도 옛날보다 덜했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인터넷이 자리 잡은 후에도 가끔 동호회 이름을 검색해보곤 했다. 같이 활동한 사람들이 그리워서였다. 혹시 그때의 회원들이 다음카페나 네이버카페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들의 발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완전히 뿔뿔이 흩어진 것이었다. 아쉬웠다.
언제부턴가 나도 웹 상에서 동호회나 회원들을 찾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마 천리안이 PC통신 서비스를 완전히 종료하던 때 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책장에 꽂혀있는 드래곤 볼을 볼 때면 그때의 추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천리안에서 사람들과 즐겁게 소통했던 기억은 내게 가상 공간에서의 교류가 기본적으로 재미있고 따뜻한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익명의 사람들이 한 어린이에게 보여준 친절함과 온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이따금 궁금해진다. 그때의 동호회 회원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이제 모두 40대가 되어 있을 그들은 아마 평범하게 일도 하고 자식도 키우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바쁜 생활 속에서 한 번쯤은 어릴 적 좋아하던 드래곤 볼을 추억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천리안과 동호회도 함께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때 천둥벌거숭이처럼 게시판을 휘젓고 다니던 한 초딩도 기억할까. 그럼 이왕이면 미숙했던 모습은 잊고 그저 아이답게 호기심이 많았었거니, 하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