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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Oct 29. 2023

그의 찬란한 황금빛은 어디서 왔을까

클래식 클라우드 첫 번째 책, 클림트

 클림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다. 누구나 책에서든 잡지에서든 또 인터넷에서든 그의 대표작 한 점 정도는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평면을 가득 덮은 금빛과 기하학적인 무늬는 감상자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긴다.

     

 클림트 작품의 이런 뚜렷한 개성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클래식 클라우드의 세 번째 책 <클림트 × 전원경>은 이 질문의 해답을 제공한다. 클림트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림과 예술의 세계를 탐방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안성맞춤의 안내서이다.

      

 저자 전원경은 예술비평을 전공하고 유명 교양지의 문화 담당 기자로 활동한 전문가로서, 클림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광범위한 설명과 평론을 제공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화가의 모든 활동과 족적을 다루고 있어, 이 책 한 권으로도 클림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거의 다 갖출 수 있겠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러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클림트의 황금빛 색채와 화려한 무늬, 관능적인 나신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그것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더 옛날의 모자이크

     

 이탈리아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클림트가 예외적으로 여러 번 방문한 나라였다. 그중에서도 동로마제국, 즉 비잔티움의 유산을 간직한 라벤나는 클림트에게 감동과 영감의 원천이었다.

     

 파리와 런던을 지루해할 만큼 자기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던 클림트는 라벤나의 모자이크에 대해서는 완전히 딴판인 태도를 보였다.

     

“... 놀라울 정도로 경이로운 모자이크들을 볼 수 있었지. 내가 느낀 감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정말 압도적으로 대단한 모자이크였소.”(126p)

    

 경건한 예술품을 이루는 황금의 찬란한 빛, 그 광휘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평면, 그리고 천 오백 년의 세월을 넘어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모자이크 장식. 저자는 클림트가 이 ‘경건한 단순함’에 완전히 압도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137p)

     

 클림트가 그전에는 황금의 가치를 몰랐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금세공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금을 얇게 펴서 바르는 기법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라벤나에서 본 황금 모자이크는 금의 무한한 가능성, 신을 연상시키는 위엄을 확신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계기였을 것이다.

     

 클림트가 비잔티움 모자이크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과거 회귀적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 혁신적인 화풍으로 알려진 클림트가 과거를 추구했다니, 고개를 갸웃거릴 독자도 있겠다.

     

 분명히 그는 당대 빈 예술계가 선호하던 르네상스적 화풍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새롭고 독창적인 그림을 그린 것은 맞다. 그런데 그 혁신은 미래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르네상스보다도 더 옛날, 고대와 중세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과거적이다. 황금빛 평면과 함께 클림트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로 여겨지는 여러 도형 역시 고대 이집트나 아시리아의 문양을 닮았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모순의 도시, 빈

     

 누구보다 현대적이었지만 누구보다 고전적이었던 클림트의 모순은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죽음을 맞은 도시인 빈과 관련이 깊다. 클림트는 ‘뼛속까지 빈 사람’ 이라고 할 만큼 빈과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화가다.

     

 빈은 클림트가 활동했던 20세기 초반까지도 황제의 통치를 받았을 만큼 보수적인 도시였다. 시민들은 이런 정치적 후진성을 타파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사치스러운 예술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시대착오적이면서 동시에 부유하고 향락적이었던 당대 빈의 사회 분위기 클림트의 예술 속에 녹아들었다.

     

 클림트의 초상화 주인공으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귀부인들, 그리고 인물을 잠식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장식들은 세기말 빈의 풍조와 관련이 있다. 이와 반대로 클림트가 과거의 과거에서 예술의 지향점을 찾았던 것은 보수적이었던 빈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클림트의 모순은 빈의 모순과 분리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클림트는 빈이 자랑하는 최고의 예술가 중 하나다. 그곳에는 국제공항부터 시내 곳곳에까지, 대표작 <키스>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과 장식물이 도처에 넘쳐난다고 한다. 아름답고 우아한 빈의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화가는 이제 그 도시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



에밀리를 불러와!

    

 클림트의 대표작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여성의 관능이다. 그의 그림 속에서 여성들은 성적 욕구와 매력을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클림트는 여성 편력이 화려했던 예술가였다. 클림트의 사생아라고 주장한 인물만 해도 14명이나 되었다는 데서 그의 여자관계가 얼마나 복잡했는지 알 수 있다. 이 또한 빈의 성에 개방적인 풍조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해석 가능하다.

    

 그러나 그가 평생을 걸쳐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는 단 한 명이었다. 그녀는 의상 디자이너였던 에밀리 플뢰게로, 클림트는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에밀리를 불러와!’부터 외쳤을 정도로 그녀를 신뢰하고 사랑했다.

      

 대표작 <키스>에 등장하는 남녀는 클림트와 에밀리를 상징한다는 설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클림트가 연인 에밀리를 그린 유일한 작품이다. 그러나 에밀리는 무슨 이유에선지 이 작품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책을 통해 클림트의 여러 작품을 접한 이후의 내 감상은, 거장의 예술격이 맞지는 않는다. 미술에 조예가 부족한 나로서는 황금빛의 아름다움과 기하학적인 무늬의 미감은 느낄 수 있었지만, 클림트의 그림을 무척 좋아한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오히려 나는 그가 혁신의 길로 들어서기 전의 고전적이며 라파엘로적인 화풍이 더 좋았다. 그리고 클림트의 그림에 숨김없이 드러나는 강렬한 관능미에는 아직 적응할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클림트가 훌륭한 예술가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고전에 박식한 지성인이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또 평소에는 말수가 적었지만 일단 말을 시작하면 좌중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으며, 친구들이 ‘대통령’이나 ‘장군’으로 부를 정도의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예술을 흘러간 옛것, 고루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여, 자신만의 새로운 미술 세계를 창조한 태도를 본받을 만하다. ‘온고지신’의 정신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 하겠다. 나는 클림트의 작품 뿐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이런 가치관과 자세에 존경심을 느꼈다.

      

 이 글을 쓰면서 책에 실린 클림트의 개별 작품을 어디까지 소개해야 할지 고민했다. 초창기부터 말기까지 모든 시기의 작품을 망라하는 데다가, 각각의 해설도 풍부해서 이 글에 모든 내용을 요약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 대부분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질에 한정하여 써보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책에서 다룬 클림트의 다양한 측면과 또 다른 중요한 장소인 아터 호수는 언급하지 못했다. 클림트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던 에밀리와의 사랑 이야기도 다 전달하지 못했다.

     

 책을 통하여 <키스>보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면서 훌륭한 작품을 여럿 감상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언젠가 빈을 여행할 때 도시 곳곳에 서려 있는 클림트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도록 든든한 배경지식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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