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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Nov 19. 2023

페소아는 누구인가

클래식 클라우드 네 번째 책, 페소아

앞의 세 편과 달리 클래식 클라우드의 네 번째 책인 페소아 편은 거장의 이름부터 생소했다. 시리즈 목록을 보고 페소아가 어떤 분야의 예술가인지 또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했었는데, 알고 보니 포르투갈에서 손꼽히는 시인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전혀 몰랐던 이유는 얕은 지식 때문이기도 하고, 평소 시를 잘 읽지 않는 취향 탓이기도 하다. 특유의 함축성 때문에 시는 언제나 소설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장르였다. 페소아의 시 역시 결코 쉽지 않았다.

      

내 개인적인 취향은 차치하고라도 페소아는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시인이 아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운 외국 시도 주로 영미권 작품이었다. 그래서 아마 나만큼이나 페소아를 생경하게 느끼실 독자분이 많으실 듯해, 이번 글에서는 책에 인용된 그의 시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이때 각 작품에 대한 해설을 함께 옮기기보다는, 시 자체만 소개하기로 정했다. 나와 달리 시에 밝으신 독자분이라면 본인만의 고유한 감상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고, 책의 저자조차도 페소아는 몇 가지 해석으로 단정할 수 있는 시인이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소아의 작품은 그가 살아생전에는 소수의 문인에게 받은 호평을 제외하고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솔직히 나조차도 이 책만 읽어서는 페소아가 왜 그리 뛰어난 시인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보기 드물게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예술가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페소아의 시를 소개한 후엔 책에 기술된 그의 성격적, 정신적 측면을 정리함으로써, 내가 알게 된 이 시인의 특징을 독자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시는 모두 클래식 클라우드 책에 실린 것으로, 페소아 마니아인 지은이 김한민이 번역한 작품이다.


이 여름 아침,

나 홀로 텅 빈 부두에서 항구 입구를 바라보고,

무한을 본다. 작고 검고 선명한,

배가 들어오는 걸 바라보며 기뻐한다.

저 멀리 온다, 뚜렷이, 자기 식대로 고전적으로,

하늘에 연기를 남기면서 들어온다,

아침과 강과 함께,

여기저기서, 바다의 삶이 깨어난다,

돛이 오르고, 예인선이 앞서가고,

작은 배들이 정박한 배들 뒤로 나타난다.

은은한 미풍이 분다. 하지만

내 영혼은 덜 보이는 것과 함께한다.

- 알바루 드 캄푸스, <해상 송시> 중에서


          

다시 한 번 널 돌아본다 – 리스본 그리고 테주 그리고 모두 -,

너와 나에게 무가치한 행인,

다른 모든 곳처럼 여기서도 이방인,

영혼에서처럼 삶에서도 우연적인,

회고의 방들을 방랑하는 유령,

삐걱거리는 마룻바닥들과 쥐 소리

그 안에 살도록 저주가 내려진 성안…….

다시 한 번 너를 돌아본다,

그림자들 사이를 지나는 그림자, 그리고 한순간 빛난다

알 수 없는 애처로운 불빛에,

그렇게 밤으로 접어든다, 잦아드는 물결 속으로

사라지는 배의 자취처럼…….


다시 한 번 너를 돌아본다,

그렇지만, 아, 나는 돌아볼 수 없구나!

나를 한결같이 보던 그 마법의 거울은 부서지고,

모든 운명의 불길한 파편들 속에 오로지 내 조각들만 본다 - 

너 조금 그리고 나 조금 ……!

- 알바루 드 캄푸스, <리스본 재방문> 중에서


                       

내 마을의 종소리,

평온한 오후에 애처로이,

네가 내는 종소리마다

내 영혼 안에 울린다.

    

네 소리는 어찌나 느린지,

인생의 슬픔처럼,

처음 칠 때부터 이미

반복되는 소리를 내지.

     

아무리 가까이서 날 울려도,

내가 항상 방황하며, 지나칠 때마다

너는 내게 하나의 꿈처럼,

먼 영혼에서 들린다.

    

네가 치는 소리마다,

열린 하늘에서 떨리고,

과거는 더 멀리 물러나고,

그리움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

- <내 마음의 종소리>


병보다 지독한 병이 있지.

아프지 않은 아픔도 있어, 영혼조차 안 아파,

그런데 다른 아픔들보다 더 심하게 아픈.

꿈꾸긴 했지만 현실인 삶이 가져오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고통이 있지, 그리고 그런 감각도 있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것들

우리 삶보다도 더 우리 것인 것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는지,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고, 느지막이 존재한다,

그리고 느지막이 우리의 것이다, 바로 우리이다…….

(…)

포도주나 한 잔 더 주게,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니.

- 『나의 시』 중에서


   

네가 꿈꾸는 사람을 커다란 벽들로 둘러싸라.

그러고 나서, 대문의 쇠창살을 통해

정원이 보이는 곳에다, 가장 유쾌한 꽃들을 심어라,

너란 사람도 그렇게 여기도록.

아무도 안 보는 곳에는 아무것도 심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처럼 화단을 꾸며라,

남들에게 보여줄 너의 정원

눈길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그곳에.

하지만 네가 너인 곳, 아무도 안 볼 곳에는,

땅에서 나는 꽃들이 자라게 놔두어라.

그리고 잡초들이 무성하게 놔두어라.

     

너를 보호된 이중의 존재로 만들어라,

그래서 보거나 응시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도록, 너라는 정원 이상은 -

속마음 모를 겉치레 정원,

그 뒤에 토박이꽃에 스치는

너무 초라해서 너조차 못 본 풀……

- <조언>     

   


페소아의 이명

   

페소아는 여러 가지 기행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중 ‘이명’의 존재가 가장 유명하다. 그는 본명이 아닌 복수의 다른 이름으로 시를 발표하곤 했는데, 그 이름들을 이명異名이라고 한다.


나는 이런 경우에 그 다른 이름을 보통 ‘가명’이라는 용어로 부른다고 알고 있었기에 ‘이명’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책을 읽어보니 이명은 가명과는 좀 달랐는데, 내 생각에 가장 큰 차이는 페소아가 단순히 가짜 이름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가짜 ‘인격체’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페소아는 자기의 이명이 되는 인물들에게 실제 살아있는 인물처럼 생년월일, 고향, 성격, 사상까지 부여했다. 이명들마다 이런 신상정보가 다 달랐음은 물론이다. 대표 이명만 3개를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숫자도 많았다. (70개가 넘는다고 한다. 위의 시 중 처음 두 작품의 창작자로 등장하는 캄푸스도 대표적인 이명이다.)

   

그뿐이 아니다. 페소아는 자기 작품에서 이명과 이명끼리 논쟁을 벌이게도 만들고,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게 하는 등 상호 간 관계까지도 설정했다. 페소아의 이름으로 자기의 이명을 평가하기도 했다.

    

나는 이 대목을 읽고 페소아라는 시인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웠다. 이건 소위 말하는 다중인격이나, 정신 분열의 증상 아닌가. 페소아 관련 강연에서도 이런 질문이 단골로 등장한다는 걸 보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너무나 이상한 행위임이 틀림없다.


우리에게 페소아를 소개하는 저자 김한민은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페소아가 왜 이명을 발명했는지, 이명의 존재가 그의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효과를 내었는지 설명한다.     

이명들은 정체성이라는 개념에 끊임없이 저항한다. (...) 정체성을 추구하다 보면 자신을 고정된 틀 속에 가두고 다른 가능성과 욕구들은 부정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 반면 이명의 사용은 우리 안의 무한한 복수성을 적극 긍정하면서 ‘단 한 명의 나’에 갇힐 뻔한 ‘다양한 나들’을 해방시킨다.

  

위 설명에서 보듯 페소아는 단일한 자아에 갇히기에는 너무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의견이나 주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꿀 만큼 변덕스럽기도 했다. 한 가지 관점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기 위한 방안으로 이명을 활용하기도 했다.

  

당대 사람들뿐 아니라 내로라하는 페소아 전문가들도 그의 이명에 속았다. 어떤 신문에 이명으로 실린 시를 현존하는 최고의 페소아 연구자 중 한 명인 리처드 제니스가 발견하고는, 동물적인 직감으로 페소아의 시일 거라고 짐작한 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촉을 증명하기 위한 원고를 찾아 헤매다가 어떤 메모를 발견한다. 거기엔 신문에 실린 시에 대한 페소아의 아이디어가 짧게 적혀 있었다. 이명으로 발표된 그 시가 사실은 페소아의 작품이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페소아, 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옥타비오 파스라는 시인은 페소아의 전기를 쓰면서 마지막 문장을 이 구절로 맺었다고 한다. ‘페소아, 그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김한민의 책 전체가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는 페소아를 연구하기 위해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3년간 리스본에 체류하기까지 했다.

      

페소아라는 인물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자. 

    

여행과 행동을 싫어했다. 그보다는 상상과 사고를 더 중시했다. 


‘비전’이라고 부르는 각종 종교, 오컬트, 음모론, 점성학 등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독실한 신자가 되기에는 너무 까다롭고 반항적이었다.


리스본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친부가 사망한 후 재혼한 어머니와 양부를 따라 남아메리카 공화국으로 갔다. 고등학교 졸업까지 그곳에서 수학하여, 영어에 능통했다. 그러나 리스본에 돌아온 이후엔 평생을 그곳에서만 살았다.


그의 사후 발견된 유명한 ‘트렁크’에는 3만여 장에 달하는 미완성 ‧ 미공개 원고 및 글귀, 메모 등이 들어 있었다. 지금 우리가 페소아에 대해 아는 거의 모든 사실은 이 문서들에 의존하고 있다.


트렁크엔 생각의 파편, 즉 단상이 가득했다. 리처드 제니스는 최소 몇 백 편에 달하는 이 단상들을 모아 분류하고 편집하고 내러티브를 부여하여, <불안의 책> 판본을 만들었다. <불안의 책>은 현재 우리나라에도 가장 많이 소개된 페소아의 저서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책의 ‘파편을 즐기는 법’이라는 파트에서 저자 김한민이 마치 페소아처럼 파편화된 문단으로 페이지를 구성한 점이 흥미롭다. 


유일한 연인은 오펠리아 한 명이었고, 페소아의 시 중에는 여성에 대한 에로틱한 시도 있으나 동성애적 성향을 띤 시도 있다.


개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혐오하는 개인주의자였다.      

    



이번 페소아 × 김한민 편의 부제는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複數의 화신’이다. 이 제목처럼 페소아는 사람마다 백이면 백 다른 느낌을 창출시키는 시인인 것 같다. 그가 복수의 이명을 만들었듯 독자는 그에게서 복수의 인상을 받게 되지 않을까.

    

서두에도 언급했듯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데다, 시에 익숙하지 않아 나만의 특유한 감상을 덧붙이지 못한 채로 글을 끝맺게 되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랐던 거장을 새로이 알게 되었으니,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글이지만 독자분들이 언젠가 페소아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왔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우리 가족은 지금 집이 있는 울산을 떠나 서울에 와 있다. 숙소 창을 통해 동대문과 청계천이 보인다. 생소한 시인에 대한 글을 생소한 장소에서 쓰니, 이 또한 작은 우연인 듯하다. 어느새 밤이 깊은 시각, 페소아의 시를 다시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독자분들에게도 행복한 주말이 되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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