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덫
어떻게 알았는지, 선희가 찾아왔다.
나는 재빨리 그녀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호텔로 데려갔다.
그녀는 나를 겁탈하듯 안고는,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오빠, 돈 좀 줘. 내가 눈을 보며 4억이나 주었잖아.
다 날렸어… 10억만 줘. 다시는 안 올게."
그녀는 나를 협박하고 있었다.
모든 정황을 알고 찾아온 것이다.
카지노며 도박이며, 전부 잃어버린 것이다.
10억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안 주면 다 말할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말은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대답했다.
"돈 마련하려면 이틀쯤 걸릴 거야. 호텔에서 지내. 그럼 매일 와야 돼."
"알았어."
호텔을 나와 혼자 걸으며,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내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 무슨 걱정 있어?"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그래."
나는 그녀를 안아주며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하지만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선희를 죽여버리자.’
미칠 일이었다.
이곳에서 차로 20분만 가면 외진 바닷가가 있다.
그날 저녁, 나는 선희를 불러내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녀의 차에 올라 음료수를 건넸다. 강한 수면제를 타둔 것이다.
선희는 아무 의심 없이 마셨고, 이내 깊이 잠들었다.
나는 한적한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그녀의 숨을 거두었다.
잠시 후, 그녀는 숨을 쉬지 않았다.
나는 블랙박스를 제거해 버리고, 그녀의 휴대폰도 부숴 바다에 던졌다.
차의 모든 창문을 열고, 바다 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 시각은 새벽 3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따라 걸어 집에 도착하니 4시였다.
아내는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안아주고, 뜨겁게 사랑했다.
그 후로도 알 수 없는 불안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차가 발견될 것이다.
아니, 발견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며칠 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제주도로 가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는 찬성했다.
아이 둘의 양육비는 충분히 보냈다.
우리는 제주도에서 6개월을 보내며 모든 것을 잊고, 행복하게 살았다.
이곳은 살아있는 천국이었다.
오로지 그녀만을 생각하며 보낸 나날.
요즘 나의 취미는 아내에게 예쁜 옷을 사주는 일이다.
그리 비싸지는 않지만, 아내도 무척 좋아한다.
가게 문을 열면 12시에 아르바이트 직원이 오고,
오후에는 마치 약속처럼 데이트를 나선다.
내 통장에는 70억 원이 넘는 돈이 있다.
팔리지 않은 땅까지 팔리면 더 많은 돈이 들어올 것이다.
몇 달 전엔 혼인신고도 마쳤다.
결혼식은 생략하고, 아내의 가족과 조촐한 식사만 했다.
아내를 볼 때마다, 풍만한 가슴과 늘씬한 다리를 보면 욕망이 꿈틀댄다.
그럴 때면 밤새도록 그녀와 사랑을 나눈다.
아내는 겉모습과는 달리 대단한 테크닉을 가졌다.
밤이면 요물처럼 나를 탐했다.
시간은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지방에서 교회 부지를 관리하던 경비원이었다.
헐값이라도 팔아치우려던 땅에, 구매 희망자가 생겼다고 한다.
3일 뒤, 그 사람들이 저녁을 사겠다며 호텔을 예약했다고 전했다.
아내에겐 말하지 않았다.
"일 좀 보고 하루만 자고 올게."
그러자 아내는 웃으며 나를 안고 키스를 해주었다.
나도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치마를 걷어 올렸다.
아내는 공항까지 태워다주었다.
국내선이라 티켓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항 앞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오후 3시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4시 30분.
5시에 호텔 1층 커피숍에서 그들을 만나기로 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안으로 들어가니, 4시 55분.
곧 땅 관리인과 40대로 보이는 남녀가 걸어왔다.
둘 다 정장을 입고 깔끔하며, 여자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관리인에게는 따로 봉투를 주며 보내고, 셋이 차를 시켰다.
남자가 명함을 건넸다. 그는 골프 프로라고 소개했고,
여자는 여자 친구라고 했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자, 낯이 익었다.
TV에서 가끔 보던 미스코리아 출신이었다. 아름다웠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나는 특별히 더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곧 땅 이야기가 시작됐다.
남자는 골프장을 짓고 싶다고 했다.
내 땅은 중심부에 있었고, 다른 땅도 매입 중이라고 했다.
입장 차는 금세 좁혀졌고, 시간은 어느새 7시가 되었다.
남자는 식사를 주문하고, 와인을 곁들이며 말했다.
"사업 이야기는 내일 하시고요, 오늘은 즐거운 이야기하며 놀아요."
와인 두 병이 비워졌고, 셋은 근처 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자는 도우미를 부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여자가 내 옆에 앉고, 남자는 맞은편에 앉아 양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의 긴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 미니스커트 아래 드러난 하얀 다리였다.
술이 취하자, 나도 모르게 그녀를 껴안고 부르스를 췄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알몸으로 내 옆에 누워 있었고, 나 역시 알몸이었다.
그녀는 나를 안으며 말했다.
"사장님, 힘 진짜 세시더라. 나 죽는 줄 알았어요."
들려온 이야기로는,
내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자 골프 사장이 자리를 비켜주고 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남자와 애인 사이는 아니었고, 자신도 골프 프로라고 했다.
담배를 피우며 그녀는 말했다.
"사장님, 오늘은 둘이서 놀아요. 저녁에 그분은 다시 오신대요."
그 남자는 내 땅 옆의 기초자치단체장의 아들이며, 외아들이라고 했다.
허가 문제는 전혀 없고, 남자의 아버지는 구의원 출신이라고도 했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결국 그는 땅을 사기 위해 이 여자를 미끼로 내게 보낸 것이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주판알이 튕기기 시작했다.
얼마에 팔 것인가. 130억? 120억? 아니, 100억?
아직 구체적인 가격 이야기는 없었지만, 강한 의지는 느껴졌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샤워실로 향했다.
그리고, 서로 알몸인 채로 거칠고도 뜨겁게 서로를 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