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눈 내리는 겨울
일주일을 집에서만 보내고 있다.
아침에 차량 전복 사고로 입원했던 경호원 4명이 퇴원해 다시 합류했다.
이제 경호원은 30명이 넘는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외출이 금지되어 있다.
핸드폰은 경호실장이 모두 수거했고, 가사도우미의 것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침 식사는 8시에 경호동에서 함께한다.
특이한 점은, 석궁이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전쟁 영화에서나 보던 물건이다.
무술영화 속에서만 보던 칼도 있고, 모든 경호원이 가스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9시가 되면 체력 단련, 10시에는 족구를 한다.
필요한 운동기구는 전부 갖추어져 있었다.
젊은 남자들이라 욕구 해소를 위해서라도 운동은 필수였다.
오후에는 오침을 한다.
돌아가며 3시간씩 교대하는 듯했다.
저녁 6시에는 다시 경호동에서 식사하고, 밤 10시에는 야식을 먹는다.
이것이 경호원들의 하루 일과였다.
대체로 밤에는 깊이 잠들지 않는다.
잠잘 때도 근무복 차림이다. 군복과 등산화가 기본 복장, 말 그대로 군대의 1분 대기조였다.
아침 식사 후에는 경호실장과 함께 한 시간가량 걷는다.
집 주위 울타리 안에서다.
처음 이사 올 때는 땅이 작았는데, 살다 보니 울타리가 점점 커졌다.
지금은 대략 6천 평 정도 되는 것 같다.
오후에는 주로 영화를 보며 혼자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같이 먹은 뒤에도 대부분 혼자 지낸다.
그리 답답하지는 않았다.
10일째 되는 날.
오후에 경호실장이 보고를했다.
“첫날부터 감시 차량이 대기했는데, 지금은 인원이 더 늘었습니다.”
“어떻게 늘었나요?”
“대형 버스가 이틀 전부터 주간에는 있다가 밤이면 돌아갑니다.
그리고 위쪽 산에서는 망원경으로 두 명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대책은요?”
“불법이긴 합니다만, 제 차에 엽총 다섯 자루와 실탄 100발 정도가 있습니다. 유사시 사용하겠습니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세요.”
“네, 사모님.”
그날 저녁,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숯불에 고기를 굽고 소주도 한잔씩 권했다.
경호실장이 직접 내게 술을 따라주었다.
건배하며 웃으면서 원샷을 했다.
15일째 되는 날, 새벽 2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니?”
“경호실장입니다.”
문을 열자, 그는 엽총을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밖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나는 서둘러 군복으로 갈아입고, 목도리와 장갑을 챙기고 등산화를 신었다.
“지금 상황은?”
“밤 10시부터 버스 4대가 대기 중입니다. 최소 150명은 넘어 보입니다.”
“경찰에 신고하면?”
“저 정도 인력이면 이미 다 조치를 해놨을 겁니다.”
“그럼 어쩌죠?”
“상황이 벌어지면 탈출해야 합니다. 따뜻하게 옷 입으십시오.”
그 순간, 탕! 탕! 탕!
엽총 소리가 터졌다.
경호실장이 전기를 모두 차단했다.
우리는 뒤쪽문으로 피신을 하였다.
그러나 곧 상대가 강력한 서치라이트 다섯 개를 켜자, 대낮처럼 환해졌다.
총성과 칼부림, 비명소리가 뒤엉키며 집은 전쟁터가 되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칼을 들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경호실장이 총을 쏘며 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나를 노리는 듯한 10여 명이 별도로 달려왔다.
그 순간, 아랫배 깊숙이 차가운 무언가가 파고들었다.
칼에 찔린 것이다.
경호실장 또한 칼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부축해 강 쪽으로 향했다.
보트장에 도착해 엔진을 켜려던 순간, “으악!” 총성이 터지며 그의 어깨에 총알이 박혔다.
칼에 찔리고, 총에 맞은 그는 결국 보트 위에서 쓰러졌다.
“사모님… 시동을…”
나는 눈물을 머금고 시동을 켰다.
전속력으로 보트를 몰았다.
경찰에 신고하기도 전, 멀리서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총성이 울려 이미 경찰이 출동한 것이다.
나는 112에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
“총상 환자가 있습니다! 빨리 와주세요!”
하지만 경호실장은 의식을 잃어갔다.
“죽지 마! 제발, 죽지 마!” 나는 그의 몸을 흔들며 절규했다.
연료통이 깨져 더 이상 육지 가까이 붙이지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옆에 있던 소총을 들고 허공에 두 발을 발사했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곧 구조대원이 보트를 타고 다가왔다.
그는 구급차에 실려갔고, 나는 그의 손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긴급 수술이 진행됐다.
몇시간 뒤 큰아들이 도착했고,
병원은 경호원 100여 명과 무장 경찰 100여 명이 둘러싸며 철통 경계가 이뤄졌다.
다음 날 아침,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총격 사건이 뉴스에 도배됐다.
우리 경호원도 죽었고, 공격한 조폭들 역시 사망자가 발생했다.
다행히 내 상처는 깊지 않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유언장 원본과 USB를 방송국 기자에게 전달했다.
조건은 단 하나, 9시 뉴스에서 방영 한다는 것이다.
긴급 속보입니다.
“어젯밤 민간인들의 총격전으로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재벌가의 상속 다툼과 유언장 조작이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먼저 유언장 원본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방송을 본 대통령은 즉시 검찰에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를 지시했다.
잡힌 조폭들은 “이렇게까지 사건이 커질 줄 몰랐다,
총격전은 상상도 못했다”라고 진술했다.
하루만에 검찰은 둘째 아들을 살인교사 등 중대한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막내딸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부자집 딸로 살아온 그녀에게 감옥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결국 순조롭게 정리되었다.
이사회는 큰아들을 정식으로 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사건 발생 한 달 후,
나는 병실에 앉아 경호실장의 손을 잡고 있었다.
며칠 뒤면 퇴원이다.
나를 위해 총과 칼을 맞아가며 끝까지 지켜낸 사람이다.
그때 두 딸이 병실로 들어왔다. 나는 딸을 안아주며 말했다.
“아빠, 건강하시니까 곧 집으로 가실 거야.”
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준비해둔 현금을 수표로 바꾸어 전부 건네주었다.
경호실장은 불법 무기 소지로 벌금형만을 받았다.
두 딸은 내년 대학을 졸업하면 큰아들이 유학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내가 타던 고급 승용차도 선물로 이전해 주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집은 불도저와 포크레인으로 완전히 밀어버렸다.
바라케이드로 진입로를 막아두고,
7만 평이 넘는 땅은 당분간 그대로 둘 예정이다.
퇴원하는 날에,
백화점에 들러 경호실장에게 양복 한 벌을 사주고,
두 딸에게는 옷을 법인카드로 사주었다.
그리고는 그 카드를 잘라 버렸다.
현재 내 전재산은 이렇다.
무기명 채권 1,000억 원을 현금으로 바꾸어 통장에 넣어 두었고,
주식은 오래전에 평가했을 때 이미 600억이 넘었다.
그리고 내가 살던집 7만 평의 땅이다.
시장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입던 옷을 모두 버리고 청바지, 운동화, 겨울 점퍼, 목도리 등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작은 배낭도 하나 사고, 만 원짜리 립스틱도 샀다.
붕어빵을 한 봉지 사 들고 눈을 맞으며 걸었다.
“마지막 겨울이라… 눈이 내려서 좋다.”
시장 앞 버스 승강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타보는 버스였다.
버스비가 얼마인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김포공항에 도착해 제주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혼자 걸었다.
마음이 평온해질 때까지, 모든 것을 잊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부모님이 계신 목포에서 정착할 생각이었다.
지난 시간들이 파도처럼 스쳐갔다.
회장님과 함께 올랐던 목포 유달산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윽고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려 하늘로 치솟았다.
이륙의 진동이 온몸을 흔드는 순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