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28살 그날의 빗소리

#버려진 땅

by 전태현 작가
ChatGPT Image 2025년 9월 25일 오후 02_23_59.png



은정과 나는 같은 방,

그러나 다른 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새벽 여섯 시가 되면 일어나 바닷가를 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녀의 몸매는 때로 나의 눈길을 붙잡고,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 취향은 오로지 남자다.



차도 외제차를 구입했다.

벤츠, 그것도 가장 비싼 모델이다. 운전은 은정이 맡는다.



7월과 8월, 제주도의 공중파 라디오와 신문에 체인점 모집 광고비로 3억을 지출했다.

조건은 간단했다.

땅 300평 이상, 방 6개 이상.



유튜브 채널은 개설한 지 석 달 만에 구독자 수가 백만 명을 돌파했다.

수익은 전부 은정이 가져간다. 애초부터 그녀에게 줄 생각이었다.



요즘 영상의 콘셉트는 바다에서 낚시를 하고,

은정의 아버지가 회를 떠 소주잔을 기울이는 장면이 많다.


제주도에는 펜션으로 등록된 업체가 500개가 넘는다.

그중 차로 15분 거리에 아담한 펜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도로 안쪽에 자리한 그곳에서,

사장으로 보이는 여자가 말을 매어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으며 차까지 내어왔다.

35세, 이혼 후 아이와 단둘이 산다고 했다.

제주도 토박이로, 부모의 땅에 펜션을 세운 지 4년째지만 수익은 공장 월급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본인 거주 공간을 제외하면 방은 네 개뿐.
나는 체인점 지원을 권했으나,

조건이 ‘방 여섯 개 이상’이라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두 분, 비키니가 너무 아름다우세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사장님도 아름다우신데요.”
“저는 이제 아줌마예요.”
“저도 아줌마랍니다.”




8월 말, 체인점 지원자는 100명을 넘었다.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내 이름 사용료는 한 달 30만 원.

운영은 업주가 알아서 하고, 일주일에 한 번 교육만 받으면 된다.

가맹비 천만 원에 본점이 인터넷 광고와 예약을 모두 책임진다.



만약 1년 안에 포기하면 가맹비와 간판비를 돌려주는 조건이었다.



9월, 30개의 가맹점이 선정되었다.

은정이 큰 몫을 했다.



그림을 그리던 그 이혼녀 역시 펜션 체인점을 시작했다.



교육은 일주일 합숙으로 내 펜션에서 이루어졌다.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 저녁에도 2시간이다.



강사는 서울에 사는 미진이었다.

결혼해 아이를 키우는 그녀는 실력과 성실함으로 교육을 맡았다.



나는 오후 마지막 한 시간만 맡았다.

사실 미진을 불러내고 싶지 않았다.

결혼한 여자를 다시 내 곁에 두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무렵부터 꿈에 보연스님이 자주 나타났다.

스님은 광활한 땅을 보여주며 건물을 지으라고 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펜션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바닷가 목장 자리를 보러 갔다.

제주시와 서귀포에서 각각 20분 거리, 크지 않은 관광지이다.
그곳은 버려진 땅, 3만 평의 황량한 대지였다.



호텔, 사우나, 식당 외에는 뚜렷한 용도가 떠오르지 않았으나,

나는 결국 50억에 매입했다.

이튿날부터 터를 닦는 공사가 시작되었고, 총괄은 은정이 맡았다.

모든 교육이 끝나자 본격적인 홈페이지 영업과 유튜브 홍보가 시작되었다.



새롭게 합류한 출연자는 화가 선생이었다.

놀랍게도 그녀가 단 한 번 출연한 영상으로 10월 예약이 거의 마감되었다.




화가 선생의 초청으로 저녁 식사 자리에 갔을 때,

그녀의 부모와 펜션 손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인사를 건네고, 손님들에게 사인과 사진을 함께 나누어 주었다.


그날 펜션 손님은 네 팀. 신혼부부, 결혼 10주년 부부, 예비신랑 신부,

그리고 여자 셋이 함께 온 팀이었다.



숙박비는 평일 18만 원, 주말 27만 원.

그런데도 예약이 가득 차 있었으니, 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화가 선생 역시 아름다웠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긴 다리를 드러내며 일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 직원도 채용했다.

소고기와 회를 먹고 밤 10시쯤 귀가했다.



모든 체인점이 가득 찬 것은 아니었지만,

평균 예약률은 60% 이상. 단 1%의 포기 이유도 없어 보였다.



일요일 아침, 은정은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혼자였다.



펜션 손님들과 담소를 나눈 후 차를 몰아 보연사로 향했다.


햇살이 화창한 아침, 그날 이후 처음 찾는 길이었다.

사실 나는 보연스님을 자주 떠올린다.

귀신도 아닌데, 이미 죽은 사람에게 집착하다니.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옛날 택시로 올랐던 길이 떠올랐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자 나는 깜짝 놀랐다.
분명히 여기가 맞는데…

버려진 흉가처럼 집들은 쓰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불과 6개월 전의 모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잡풀이 무성해 마치 십 년 이상 방치된 듯했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생각에 잠겼다.



‘정말 귀신이었던 걸까?’



마을 회관에 들러 작은 선물을 전하고 어르신들에게 보연사 이야기를 물었다.
연로한 한 어르신이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보연스님이라면 오래전에 이 동네 사람이었지.

마을 처자와 결혼해 절을 지었는데… 30년 전에 이미 죽었어.

그 뒤로 부인이 혼자 절을 운영하다가 10여 년 전 세상을 떴지.

연고가 없으니 마을 사람들이 화장해 납골당에 모셨네.

10여 년 전에도 젊은 색시 같은 이가 찾아와 귀신과 밥을 먹었다느니 술을 마셨다느니…

허튼소리를 하더구먼.”




나는 답례를 드린 후 어르신들이 알려준 납골당으로 향했다.



제주시에서 관리하는 납골당은 깔끔했다.
2층 몇 번째 칸이라고만 들었지 이름은 알 수 없었다.

사진이 있다고 해서 찾아온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심장이 요동쳤다.
그리고 2층에 다다라 몇 발짝 걸은 순간,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두 사람의 사진.
너무나 생생한 얼굴. 보연스님, 그리고 그의 아내.
사망일은 각각 30년 전과 10년 전.



그 딸이라던 여자.
내가 만났던 그 얼굴과 똑같았다.




스님의 사진도 흑백이었으나, 내가 보았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가다듬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이 내 앞에 다가왔다.



“보살님, 감사드립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잔잔했으나 내 가슴을 울렸다.
“당신 덕분에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인연을 저승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말이 끝나자, 눈앞에 한 장면이 펼쳐졌다.
결혼 초야. 방 안은 촛불처럼 붉고 따스했으나,

보연스님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는 비극적 장면이었다.



나는 화들짝 눈을 떴다.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소원을 빌었다.



“앞으로 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마주할 때면…

내 길을 밝혀 안내해 주십시오.”



두 사람은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곧 사라졌다.
나는 한참을 울었다.




‘왜 그 여자가 스스로를 딸이라고 말했을까…?’



밖의 작은 커피숍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들이키며 생각에 잠겼다.



정녕 내가 귀신과 이야기를 나눈 것인가?
혹은 나 역시 이미 귀신이 된 것은 아닐까?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얽히게 했다.




그날 저녁, 갑작스런 고열에 시달리며 응급실로 실려 갔다.



약도, 주사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10일을 앓으며 온몸이 불덩이 같았다.
절망 속에서 나는 다시 간절히 빌었다.



“제발… 아프지 않게 해주십시오. 너무나 아퍼다.”


잠이 든 순간, 꿈속에 보연스님이 나타났다.
“내일은 퇴원할 것이다.

그런데… 빌딩은 언제 세울 거냐? 나, 배가 고프다. 시주 좀 해주거라.”

나는 꿈속에서 간절히 외쳤다.



“스님! 스님…!”


눈을 떴다. 새벽 네 시.
목이 말라 일어나 물을 마시고 담배가 떠올라 병원 밖으로 나갔다.



원무과 직원들이 나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환자분, 나오시면 안 됩니다!”

“내가 환자…?”



몸은 거짓말처럼 가벼웠고, 열도 이미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병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다짐했다.



퇴원하면 다시 보연사를 세우자.
그리고 빌딩 공사도 이어가야 한다.



사실 나는 종교가 없다. 절에도, 교회에도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남들이 본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절에 미쳐버린 여자 아니냐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나니 정신이 맑아졌다.
오전 열 시, 퇴원 수속을 마치고 곧장 보연사 터로 향했다.



은정에게 땅 소유주를 알아보게 하고, 터 닦는 공사를 지시했다.


대략 400평 규모.

내가 꿈에서 보았던 세 채의 절을 그대로 짓도록 했다.



운영은 누가 맡을지가 문제였으나,

며칠 뒤 화가 펜션 사장이 자청해 나섰다.



그녀의 부모님이 함께 도울 거라 했다.

다행히 불교 신자 집안이라 적합했다.
이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들르면 될 것이다.



배고프다던 보연스님에게 작은 시주를 올린 마음으로,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리고… 또 다른 버려진 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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