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속의 인연
양을 키우다가,
지금은 개만 열 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 녀석들은 참말로 말을 잘 듣는다.
논밭 임대 수익과 커피숍 수입으로,
미진과 반반씩 나누어 가진다.
땅은 특별히 더 매입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일은 여전히 미진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과 함께 청와대 이전,
해양수산부 이전까지 이어지는, 상상조차 못 한 호재가 터져 나온 것이다.
건설사에서 제시한 금액은 무려 2천억 원.
정부 역시 비슷한 금액을 제시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도시 근처에서 이만한 규모의 땅을 찾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결정하면 강제수용은 불가피하다.
그렇기에 건설사와의 거래가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카페에서 협상단이 도착했다. 다섯 명이었다.
나는 혼자였다.
복잡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3천억 주시면, 지금 바로 계약하겠습니다.”
이미 다섯 번째 협상이었다.
그들도 망설였다.
이번 협상이 결렬되면, 정부가 2천억에 강제 수용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건설사가 손해다.
옆 땅 역시 같은 가격에 넘어가게 되니 말이다.
“2,500억 하시지요.”
“3천억입니다.”
“2,600억 하시지요.”
“2,900억입니다.”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끝에, 협상단이 최종적으로 말했다.
“2,750억, 결정하시겠습니까?”
나는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그 자리에서 계약금 275억 원을 받았고, 열흘 뒤 이전하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미진과 가은을 불러 소고기 파티를 열었다.
이제는 가은이 다니는 대형병원보다, 내가 더 큰 부자가 된 것이다.
나는 빚도 없었다.
주식과 코인으로 불려둔 돈까지 합치면, 대략 3천억 원이다.
다음날, 미진과 가은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 정장과 팔찌를 선물했다.
“5년 동안 시골에서 고생 많았지.”
나는 미진에게도 서운하지 않도록 돈을 챙겨 주었다.
10월이었다.
딸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방학이면 일 년에 두 번은 집에 돌아온다.
부모님은 정년퇴직 후 집에 계셨다.
옆 주택을 매입해 텃밭을 가꾸며,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고 계셨다.
아버지 명의로 전부 해드렸고, 내가 살던 집까지 명의 변경을 해드렸다.
생활비도 충분히 드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서 셋이 식사를 했다.
많이 늙으셨다. 예전보다 세월의 흔적이 깊게 보였다.
나는 당분간 집에서 쉬며 다시 사업 구상을 하기로 했다.
사실 이 돈이면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지만,
나는 활동적인 여자라 그렇게는 못 산다.
서울 집으로 올라와 가장 크게 바뀐 건,
아침마다 한 시간씩 달리기를 하고 뒷산을 오르는 습관이었다.
그렇게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헬스클럽이나 필라테스는 다녀본 적도 없다.
며칠 전에는 부모님과 온천에도 다녀왔다.
미진 부모님은 여전히 체인점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예전에 미진에게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사주었는데, 지금은 값이 40억이 넘는다.
내가 타던 외제차도 미진에게 주었다.
나는 아직 차가 필요 없어, 택시를 타고 다닌다.
마당에는 작은 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어찌나 귀여운지, 보는 내내 웃음이 났다.
한 달을 집에서 놀았더니,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12월, 눈이 제법 내렸다.
모든 것이 조용하고, 세상마저 정지된 듯 고요했다.
요즘은 가끔 마사지숍에도 들른다.
서른아홉까지만 해도 피부가 타고났다고 생각했는데,
마흔을 넘기자 조금씩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나를 서른 초반으로 본다.
키가 크고 늘씬해서 더 젊어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부모님 댁에서 머문 시간이 어느덧 네달째이다.
2월 20일, 나는 김포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랐다.
얼마나 머무를지는 나조차 몰랐다.
어제 내린 눈이 공항 활주로를 덮고 있었다.
비행기는 50분 만에 착륙했다. 오전 11시 10분.
짐은 캐리어 두 개와 작은 배낭 하나뿐.
필요한 건 아버지가 택배로 보내주실 것이다.
나는 제주시에서 가장 크고 비싼 호텔로 향했다.
택시로 10여 분, 호텔 보이가 짐을 받아주었다.
이틀을 예약하고, 숙소에 들어섰다.
20층 창문을 열자, 제주의 바다가 한눈에 펼쳐졌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별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 나가고 싶진 않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자,
오히려 열이 나서 밖에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저녁 다섯 시, 호텔 로비를 지나 카페에 앉았다.
여행객들로 붐볐다.
주스를 마시며 어디로 나갈까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어두워졌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잦아들어,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조금 걷자, 포장마차가 보였다.
나는 회와 소주를 주문하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또 한 병을 주문했을 때, 스님 한 분이 다가왔다.
마흔 후반쯤으로 보이는, 다부진 체격의 남자였다.
“시주를 부탁드립니다.”
나는 가방에서 5만 원을 꺼내 배낭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농담처럼 말했다.
“스님, 소주 한 잔 하고 가세요.”
그런데 스님은 진짜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소주를 한 병씩 마셨다.
술이 취해, 스님은 나를 호텔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의 손목을 붙잡고 뜨거운 키스를 했다.
그는 단단한 근육으로 나를 감쌌다.
그렇게 우리는 이틀 동안 함께였다.
천국이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그 순간 내 곁에 있었다.
나는 그의 품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내 손끝에서 5만 원짜리 지폐 여러 장이 땅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고 있었다.
황급히 허리를 굽혀 돈을 집어 드는 순간
그곳에 서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그 스님이었다.
불과 2~3초의 찰나였다.
지난 이틀 밤낮이, 그 모든 것이 마치 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돈을 주워 그의 배낭에 넣으며 물었다.
“보연 스님… 맞으시지요?”
그는 고개를 들며 빙긋 웃었다.
“어찌 제 이름을…?”
“이틀 밤을 함께 지내며, 이름도 모른단 말입니까?”
그는 제주 어딘가 작은 절에서 지낸다고 했다.
보연사이다..
그리고는 더 말없이 떠나버렸다.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설 성전과 칠선녀가 떠올랐다.
아직도 그 남자의 온기가 내 살갗에 남아 있는데,
아직도 그 남자의 숨결이 귀끝을 스치는데,
아직도 내 몸속 깊숙이 파고든 그의 흔적이 생생한데…
그 모든 것이 단 몇 초의 환영이었다니 말이다.
말문이 막혔다. 혹시 내가 헛것을 본 것일까.
밖으로 나가 스님의 흔적을 찾아보았으나, 그는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호텔 직원에게 물었다.
“보연사라는 절이 있나요?”
직원은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주소를 주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절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콜택시를 불러 주소를 건넸다.
“오늘 하루는 제 동행이 되어주세요. 일당은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30분 남짓 달려 작은 산길을 넘어가니,
초라하지만 정갈한 절이 나타났다.
민가와는 다소 떨어져 있었고, 건물은 세 채뿐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절.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은 아니었다.
택시 기사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고, 나는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마침 마당을 쓸던 보살 한 분이 고개를 들어 나를 맞이했다.
서로 미소를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나는 시주를 올리고, 보살이 권해주는 녹차 한 잔을 마셨다.
“이 절에는 스님이 안 계신가요?”
그녀는 잔잔히 미소 지었다.
“저 혼자 지낸 지 오래되었습니다.”
“보연사라는 이름은 누가 지으신 건가요?”
“제가 지었습니다. 아버지의 법명이 보연이셨거든요.”
“그럼… 아버지가 보연 스님이신가요?”
“네.”
그녀는 마흔쯤 되어 보였지만, 내가 본 그 남자는 분명히 마흔 후반이나 오십 초반의 풍모였다.
“아버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돌아가신 지 오래되셨습니다.”
나는 숨이 멎는 듯 했다.
인상착의를 설명하자,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진 한 장을 가져왔다.
나는 사진을 보는 순간,
손에서 힘이 빠져 사진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아버지를… 만나신 건가요?”
그녀의 눈빛이 떨렸다.
나는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네.”
그녀가 말했다.
“처음엔 저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30년이 되었거든요.
사흘 전이 아버지 30주기 제사였어요.”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덧붙였다.
“사실 처음 주차장에서 보살님을 보았을 때,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꿈속에서 만난 바로 그 여자라는 걸요.”
그날 우리는 점심을 함께 먹고, 오후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나는 보연사에 1천만 원을 시주했다.
“앞으로 제가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요?”
내가 묻자, 그녀는 잔잔히 웃으며 대답했다.
“처음엔 작게 시작하세요.
숙박업을 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크게 성공하실 상입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자주 들르겠습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조심스레 눈가를 닦아주며 속삭였다.
“울지 마세요.”
호텔로 돌아온 나는 소주 두 병을 비우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택시를 불러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