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선녀의 왈츠
24시간 장사를 하다 보니 삶이 퍽퍽했다.
반지하에 살던 시절에는 돈에 허덕였는데,
지금은 돈이 많아지니 삶의 질을 논하고 있었다.
‘이것이 인생이려니…’ 하고 지내는 나날이었다.
미진에게도 서운하지 않게 급여를 챙겨주었다.
하지만 장사란 게 오래 가면 견제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병원 노조에서 직영을 하겠다며 임단협 조건을 내세운 것이다.
가은이도 머리 아플 일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조가 파업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3년 계약을 마치면 가게를 비워주기로 하고, 임단협은 성사되었다.
그래도 가은은 3년 동안 충분히 배웠고, 사실상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병원 근처에 대출을 끼고 700평을 매입했다.
건물은 그대로 리모델링해 1층과 2층을 24시간 감자탕 체인 본부로 만들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번 돈을 모두 여기에 쏟아부은 셈이었다.
3년 계약이 끝나는 날, 우리는 소박한 파티를 열었다.
우리 집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전세였던 집을 내가 매입했고, 마침내 내 나이 서른여섯의 봄이 찾아왔다.
부모님도 오시고, 딸도 와서 함께 고기를 구워 드셨다.
그 자리에서 가은이 미진과 나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1억씩이 담겨 있었다.
지난 3년의 도움에 비하면 약소하다며, 그래도 꼭 받아 달라 간청했다.
우리는 흔쾌히 그 돈을 받았다.
체인 본점은 인테리어 공사 중이었다.
직원은 병원에서 일하던 주방과 서빙 인원을 그대로 두었고, 급여도 그대로 지급했다.
그들에게는 15일의 유급휴가를 준 셈이었다.
미진은 점심만 서빙하고 오후에는 체인점 개설 영업을 다녔다.
건물 공사와 대출까지 포함해 총 35억이 들어갔다.
그런데 장사는 역시 병원보다 더 잘 되었다.
점심, 저녁마다 단체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4월에 개업해 8월까지, 단 5개월 만에 완전 대박이었다.
2호 체인점은 미진의 부모님이 노량진에 창업을 하며 생겼다.
나는 마진 없이 오픈을 도와주었다.
미진은 오전에 한두 시간 부모님 가게를 돕고 본점으로 왔다.
입소문은 타고, 지역 일간지에 대대적인 홍보까지 이어졌다.
9월에 3개, 10월에 10개, 11월에 15개, 12월에 무려 30개.
그렇게 63개의 체인점이 탄생했다.
본사 옆 3층 건물까지 매입해 사무실을 꾸렸다.
3층은 내 개인 사무실, 아래층에는 9명의 직원과 인테리어 3개 팀이 상주했다.
기본 공사 기간은 20일 남짓.
올해는 더 많은 체인점이 생길 게 분명했다.
나는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었다.
서른일곱이 되던 1월, 나는 미진을 체인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연봉은 2억, 100개 이상 오픈하면 인센티브 3억을 얹어주기로 했다.
이혼하고 비 맞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오던 그 초라한 미진의 모습은 이제 없었다.
본점 사무실직원은 30여 명, 주차 관리원도, 내 기사도 있었다.
차는 외제차로 바꾸었다.
2월, 눈이 유난히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오후,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보고 있는데 직원이 들어와 말했다.
“사장님, 어떤 분이 사장님을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본부장에게 면담하라고 하세요.”
“아니요, 꼭 사장님을 뵙겠다고 하십니다.”
“그럼 들어오시라 하세요.”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눈물을 쏟았다.
핸드폰 가게 오빠였다.
나는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울기만 했다. 오빠는 내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너는 잘 살 거라고… 오빠가 말해줬잖아.”
“네, 오빠… 그 말이 맞았어요.”
우리는 시외 카페로 나가 차를 마시며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다.
눈 내리는 풍경은 아름다웠고, 오빠와의 재회는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오빠는 몇 달 전 핸드폰 가게를 정리하고 고향 전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2층 건물을 사서 1층은 식당, 2층은 집으로 쓰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날, 내가 먼저 말했다.
“오늘 밤… 같이 놀자.”
“그래, 밤새 같이 놀자.”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오빠와 왈츠를 추었다.
감미롭고 아름다운 춤이 왈츠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우리는 호텔에서 함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본점 식당에서 해장을 했다.
그리고 나는 오빠를 미진에게 소개했다.
“내 인생을 바꿔준 오빠야.”
그제서야 미진도 알아보았다.
“나이트클럽에서 봤던 그 오빠… 맞죠?”
“응, 내가 그 오빠야.”
우리는 며칠 동안 왈츠를 추고 술을 마시며, 마치 천국에서 지내듯 시간을 보냈다.
내 안의 막힌 혈관이 뚫린 듯 머리는 맑아지고 몸은 가벼워졌다.
선녀가 된 기분이었다.
오빠는 5일 만에 전주로 내려갔고,
나는 개업식 날 꼭 가겠다고 약속했다.
떠나는 순간에도 눈물이 흘렀다.
백화점에서 내가 직접 고른 양복과 순금 팔찌를 선물했다.
“오빠가 배우라 한 왈츠 덕분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야.”
가을비 내리던 어느 날, 방송국 PD라는 젊은 여자가 나를 찾아왔다.
인간극장 촬영을 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연예인도 아니고, 방송 나온다고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닌데 나설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날마다 찾아왔다.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5일째 되는 날,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반지하에 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미혼모에게 사장님은 희망입니다.
저도… 미혼모입니다.”
결국 방송 출연을 수락했다.
다음 날부터 5일간 촬영이 이루어졌다.
내가 사는 집, 부모님 집, 그리고 딸까지 출연했다.
인간극장, 5부작으로 방영될 예정이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공중파 방송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미처 몰랐다.
촬영이 끝난 뒤, 나는 며칠 동안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내 사생활이 그대로 세상에 드러나는 것 같아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흔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방송이 나가던 날.
첫 회가 전파를 타자마자,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
“사장님 맞죠?”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저도 미혼모예요. 사장님 덕분에 용기를 냈습니다.”
낯선 번호, 알림, 메시지…
공중파의 파급력이 이렇게 클 줄 정말 몰랐다.
본점 앞에는 방송을 보고 찾아온 손님들로 긴 줄이 늘어섰다.
체인점은 전국에서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사람들은 단순히 감자탕을 먹으러 오는 게 아니었다.
내 이야기를, 내 삶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무대 위에 선 연예인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구나.’
체인점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나의 일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하지만 얼마전에 가끔 문득,
눈이 오던 그날 오빠와 함께 춤추던 순간이 떠올랐다.
왈츠의 선율처럼 나를 천국으로 데려갔던 그 시간이다 .
내 안의 선녀는 그때 깨어난 게 아닐까.
본점 옆 또 500평 건물을 매입해 사무실로 사용 중이었다.
그렇게 나는 감자탕집을 오픈한 뒤, 4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서른아홉 살이 되던 여름.
비서가 다가와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사장님, 조금 전 다녀가신 분이 두고 가셨습니다.”
명함을 보니 우리나라 10대 대기업에 드는 영업총괄본부장이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그는 주차장에 있다고 했다.
“아직 점심 전입니다. 같이 식사하시죠.”
나 역시 점심을 못 먹은 터였다.
곧 마주한 그는 40대로 보이는 훈남이다.
자세히 보니 그룹 회장의 아들이었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어조로 말했다.
“저희 그룹에서 회장님 지시로 감자탕 체인 전부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옆 사무실까지 모두 포함해서요. 직원도 그대로 승계합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물었다.
“얼마를 주실 건가요?”
“300억입니다.”
어차피 흥정은 제일 낮은 금액부터 시작하는 법.
내 입에서 망설임 없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500억 주신다면, 지금 바로 계약하겠습니다.”
내 자신도 놀랄 만큼 빠른 반응이었다.
그러나 머리가 빠르게 계산을 한 결과였다.
본부장은 회사와 전화를 주고받으며 한참을 밖에 머물렀다.
30분쯤 지나 다시 돌아왔다.
“오늘 계약금 50억을 입금하겠습니다.
중도금 100억, 잔금 350억은 10일 뒤에 지급하는 것으로 하시죠.”
“좋습니다.”
그 자리에서 계약금 50억을 이체받고, 서명까지 끝냈다.
본부장은 돌아가기 전 조언을 하나 남겼다.
“대전 근처 땅을 알아보세요. 특히 세종시 쪽을요.”
“거긴 이미 많이 오른 거 아닌가요?”
“아직 시작일 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 나는 미진에게 사실을 알렸다.
“너는 여기 그대로 일해라.”
“아니야. 너도 없는데… 그냥 쉬면서 부모님 가게 도울래.”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통장에 500억이 입금되었다.
나는 미진에게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하고 싶었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선물로 사주었다.
그렇게 30대의 마지막 여름을 맞이했다.
부모님 집은 예전 옆집까지 매입해 2층 고급 주택으로 다시 지어드렸다.
대지만 200평 가까이 되었다. 부모님은 1층에, 나는 딸과 함께 2층에 살았다.
여름 내내 나는 부모님, 딸과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그리고 처음 번 돈으로 매입했던 집은 팔지 않았다.
여전히 그곳에서 잠을 자곤 했다.
팔고 싶지 않았다. 내 손으로 처음 마련한 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