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28살 그날의 빗소리

#가을날의 왈츠

by 전태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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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난 딸과 함께 놀아주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특히 토요일만큼은 눈을 뜨자마자 아이와 함께 놀아준다.

아이들은 엄마가 많이 놀아줄수록 더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을 것이다.

외동딸이었던 나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셨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8월 중순경, 오빠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상희야, 왈츠를 배워봐라. 너 인생이 바뀔 거야.”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다 알아보고 나서 내게 권한 것이었다.

직장 근처에서 버스로 네 정거장쯤 가면 왈츠 학원이 있다고 했다.



9월이 시작되던 날, 오빠와 함께 학원에 가서 등록을 했다.

학원비도 석 달 치를 오빠가 완불해 주었고,

일주일 정도는 퇴근 후 직접 데려다주기로 했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15분 정도 기본 스텝을 따라 해보았다.



5일째 되던 날, 오빠는 댄스 구두와 연습용 댄스복을 선물해 주었다.

그 주는 연습을 마치면 늘 오빠가 집까지 태워다 주어 한결 편했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는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다.


오빠와의 데이트는 거의 일요일로 정해졌다.



보름쯤 연습을 하니 어느 정도 왈츠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했고,

대학교 때도 한 학기 정도는 동아리를 다녔던 덕분인지 춤에는 소질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학원 분위기도 익숙해졌고,

학원생들의 얼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연습만 하고 바로 집으로 와버렸기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9월과 10월은 퇴근 후 왈츠를 배우고,

집에 와서 또 연습하며 눈 깜짝할 새 흘러갔다.


두 달이 지나자 자세도 제법 잡히고,

원장은 내 키에 잘 어울린다며 폼이 예쁘다고 칭찬해주었다.



이제는 학원생들과 자판기 커피를 함께 마실 여유도 생겼다.

오빠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더 다가가지도, 물러서지도 않은 채 말이다.



11월에는 1박 2일로 서해안 바닷가 여행을 다녀왔다.

신혼여행 같은 느낌이었고, 정말 최고였다.

펜션에서 밥도 해 먹고, 소주도 마시고, 고기도 구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내 마음이 오빠에게 기울고 있음을 느꼈다.

사랑이 싹트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빠가 내 마음을 이용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내 혼자만의 감정일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왈츠를 석 달쯤 배우자 원장이 춤에 감각이 있다고 칭찬했다.


내가 가는 시간엔 학원생이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중 한 분이 나와 자주 파트너가 되어 연습을 했다.

그냥 연습일 뿐이었다.

5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분은 가끔 집까지 태워다 주기도 했다.



하지만 따로 만나거나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왈츠는 파트너를 바꿔가며 여러 사람과 연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특별히 대회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12월 초순, 눈이 내리던 어느 토요일 밤.



우리는 소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는 계좌로 약속했던 돈을 보내주었다.

나는 이별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 밤은 우리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정말 눈물이 흘렀다.

엉엉 울었다.

붙잡고 싶었다.




“오빠,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어요?”



“나도 아직 몰라. 모든 게 정리되면 연락할게…”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알고 시작한 관계였지만, 가슴은 너무나 아팠고 눈물은 앞을 가렸다.

오빠도 함께한 시간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말하며,

작은 선물이라며 팔찌와 목걸이를 주고 떠났다.



정신나간 사람처럼 새벽에 반지하 집에 들어와 잠들었다.

엄마의 전화로 눈을 뜨고, 점심은 딸과 부모님과 함께 먹었다.


근처 학교 운동장을 딸과 산책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소주를 마신 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월요일, 화요일… 학원에 가지 않았다. 결국 일주일을 통째로 쉬었다.

사랑은 아니었다.


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다시 학원에 나가자 모두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히 50대 오빠가 유독 기뻐했다.

연습을 마치고 그는 차 한잔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따라 나가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냥 좀 쉬었어요.”라고만 했다.

왈츠도 연말까지만 배우고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출퇴근할 때 데려다주겠다며 같이 다니자고 했다.

기분 전환도 필요해 그러자고 했다.



이후 한 달 동안 그는 매일 사무실 앞에서 날 태워 연습장으로 데려가고,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주말에도 함께 학원에서 연습을 했다.



1월 하순, 그는 놀라운 제안을 했다.



그는 대형 24시간 감자탕 체인을 10년 넘게 운영해 온 사장이었다.

네 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중 하나가 수입이 적다고 했다.



“이 식당을 네가 맡아라. 수익은 7대 3으로 나누자. 네가 7할이다.”



나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분명 나를 짝사랑하기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며칠 뒤, 중고차 사무실 일을 그만두었다.

그는 새것 같은 소형차를 중고차 사무실에서 사서 선물해 주었다.


2월 1일부터 내가 식당을 맡기로 했다.



그 일주일,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고,

1박 2일 여행도 다녀왔다.

자연스레 연인 관계가 되었다.



25살이나 차이 나는 사람이다.

하지만 돈의 힘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는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을 빼앗겼다고 했다. 사실인 듯했다.

부모님께는 “식당 매니저로 일한다.”고만 말씀드렸다.

사장과의 관계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딸은 엄마 집에서 자고, 나는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나는 24시간 감자탕집을 운영하는 매니저가 되었다.

그리고 미진이도 직원들과 회식으로 식당에 찾아왔다.



가은은 올해 스물여섯. 부모님은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의대와는 맞지 않는다며 은행에 입사했다고 말했다.



나는 밤낮으로 식당에 매달려 장사했다.

그렇게 해서 가져가는 7할이 월 이천만 원을 넘었다.




미진은 코인으로 대박이 난 남자와 결혼해 지방으로 내려갔다.

결국 가은만 혼자 남아, 가끔 술을 마시러 식당에 찾아오곤 했다.



사실 이제는 가은이 내 친구가 되었다.

가을이 되어갈 무렵, 식당 사장의 집착이 심해졌다.



여자의 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결국 내게 동거를 제안했다.

식당을 내 명의로 해주겠다고도 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딸과 부모님께 뭐라 설명해야 할지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조심스레 달랬다.



“오빠, 저 어디 도망 안 가요. 항상 오빠 옆에 있을 거예요.”


그제야 사장은 안심이 된 듯 보였다.

그날은 이 사람을 만나고 처음으로 외박을 했다.

불안해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 나 역시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시간을 내주기로 했다.


왈츠도 함께 하고, 커피 타임도 챙기며 나름대로 배려했다.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잘 적응하고 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돈이 벌리니 마음은 행복했다.



겨울이 지나고, 식당 운영을 한 지 16개월째 되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저… 00입니다.”


낯선 목소리에 이어지는 한마디에 숨이 멎는 듯했다.

“미국에 유학 갔던 식당 사장의 딸이에요. 차 한잔 할 수 있을까요?”



오후 두 시.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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