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일이 다가왔다. 동생과 나는학교 수업이 끝나면 시장 옆 금은방으로 달려갔다. 처음엔 가게 문 앞만 서성였고 가격만 물어보기를 수차례. 무얼사든지 싸게 주겠다는 주인아저씨의 약속을 받아내고는곧장 집으로 와서 TV 옆에 있던 빨간색돼지저금통의 배를 갈랐다.
'엄마는 무슨 색을 좋아하지? 초록색? 파란색? 잘 모르겠다.'
일단, 단골집 슈퍼에 가서 동전을 지폐로 바꾼 다음 금은방으로 가서 가장 저렴했지만 제일 화려한 색으로 채워져 있는 칠보 은쌍가락지를 골랐다. 그 당시 학교 앞 구멍가게 주전부리가 백 원이었는데, 반지 가격이 만 오천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엄마에게 쌍가락지를 선물하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내 손에도 동생 손에도 문방구에서 파는 보석 반지가 있었지만, 우리 엄마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의 폐물함(?)에는 액세서리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는 액세서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1988년 그 당시 속설 때문이었다.
'맏딸이 은 쌍가락지를선물하면 무병장수한다더라'
1988년 선물했던 은쌍가락지
"엄마! 기대해. 우리가 특별히 준비했어. 아마 엄마는 상상도 못 한 선물일 거야!"
잔뜩 신이 난 나는 엄마에게 **금은방이라고 찍혀있는 반지상자를 내밀고 엄마의 반응을 살폈다.
엄마가 웃는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 반지를 꺼낸다.
"기특하게 이런 생각을 했어? 정말 예쁘네. 고마워. 평생 간직할게."
"응. 엄마, 오래오래 살아."
엄마는 헛도는 반지를 이 손가락 저 손가락에 꼈다 뺐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 이불꿰매는 두껍고 하얀 실을 여러 번 감아 반지를 끼고 다녔다. 엄마가 반지를 끼고 다녔던그 오랜 기간 동안 나는 엄마의 지인들로부터 '역시 딸 밖에 없다.''착하다' '기특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35년이 훌쩍 지나갔다.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고, 나는 그때의 엄마보다 더 어른이 되었다.엄마 집에 갔다가 거뭇거뭇해져 세월의 흔적을 품은 반지를 내 손에끼워봤다.
"엄마 이 반지 생각나?"
그때의 추억을 소환했다.
"그때 반지가 커서 바꾸고 싶었지만, 너희가 골라온 반지라서 그냥 끼고 다녔지. 이사할 때도 가장 먼저 챙기는 반지야."
손마디가 굵어진 엄마의 손에는 이제 맞지 않고, 내 손에선 빙글빙글 헛돈다. 평범했지만 어쩌면 특별했을 1988년 11월 그날의 추억은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