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엄마를 생각하며, 사랑의 온도를 배운다
세상에 핀, 가장 조용하고 순정한 꽃 한 송이.
태어난 지 백일 된 아기의 숨결에
햇빛마저 고요히 머문다.
햇살 아래 나비처럼 너울대는 아가의 몸짓,
그 속에서 세상은 전쟁도, 불화도 멈추게 한다.
나는 그 평화를 보았다.
아가의 팔과 다리를
대자로 펴고 잠든 모습이
내 얼굴에는 웃음꽃을 피운다.
나비잠, 이것이
백이 된 아가의 잠든 모습이라는 것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삶의 따스함을 다시 이어주는 징검다리는 것을.
수술실 문이 열리고,
딸의 이름이 불렸던 날.
나는 삼십구 년 전,
너무 작아서 안을 수도 없던
내 아기를 품었을 때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런 아이가 이제 엄마가 되었다.
나는 말없이 속삭였다.
“내 딸이, 나처럼 엄마가 되었구나.”
그러나 기쁨 뒤엔 낯선 서운함이 따라왔던 것은
임신 중에도, 출산 준비에도
내가 설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던 딸.
궁금해서 전하를 하면,
“시댁에서도 신혼 방해한다고 전화도 안 하는데…”
그 말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가끔 카톡으로만 오가던 소식도 망설였다.
나는 엄마이기를 다독이며,
고요히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의 전화가 왔다.
“엄마, 집으로 퇴원할 거야. 언제 올 수 있어?”
산모조리원에서는 부모의 방문도 제한했다.
톡으로만 아가의 모습을 받아보다가
한 달 만에 들어본 딸의 목소리였다.
낯선 집, 불편한 공기.
딸의 짜증과 눈물 사이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새벽마다 밥을 짓고, 신혼살림을 정리하고,
아기를 돌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는 지금, 가정부일까? 엄마일까?
아니면 그저… ‘누군가의 도우미’ 일뿐일까.
출산으로 힘든 딸의 의미 없는 말들이 가슴에 꽂혔다.
“남들은 출산도 못 하게 한다는데,
엄마는 아들딸 낳고 잘 살라는 말을 덕담이라고 하고…”
그 말은 내 지난 세월을 무너뜨렸다.
그런 날이 싸이면서 나는 몸도 마음도 무너졌다.
결국 응급실로 실려갔다.
의사는 조용히 말했다.
“심리적 위기 상태입니다.”
가사도우미를 구해두고,
나는 집으로 내려왔다.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상담을 받고,
보건소에서 찾아오는 간호사의 손길에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안의 오래된 상처를 마주했다.
그건 딸 때문이 아니었다.
엄마의 도움 없이 아이를 낳고, 홀로 키워온
내 지난 여정의 피로였다.
지금은 모든 것이 조금씩 이전으로 찾아갔다.
영상통화 속 손주의 미소는
내 아픔을 녹이는 햇살 같았다.
딸의 떨리는 손끝, 불안한 눈빛 속에서
나는 옛날의 나를 마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조용히 속삭여 준다.
“괜찮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 한마디 속엔
묵은 눈물과, 오래 미뤄둔 사랑,
그리고 세대를 잇는 평화가 스며 있다.
이제 나는 안다.
모든 갈등도, 아픔도, 눈물까지도
결국은 사랑이라는 징검다리로 이어진다는 것을.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의 온기가
이제 내 딸과 손주에게 닿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다.
엄마의 딸로, 딸의 엄마로, 손주의 할머니로.
사랑은
끝없이 세대를 이어진다.
오늘도 엄마를 생각하며, 사랑의 온도를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