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의 화해

“한쪽 눈으로도 세상을 온전히 본다”

by 소정

제때 치료하지 못해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동병상련과의 인연


“혹시… 도움 필요하세요?”


그 한마디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들 집에 머무는 동안, 나는 매일 우이천을 걸었다.

이른 아침, 햇살이 완전히 내려앉기 전의 물빛은
내 마음의 파문을 잔잔히 가라앉혀주곤 했다.


그날도 능소화 핀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때였다.


앞서가던 한 여인이 비틀거리며 멈춰 섰다.


그냥 지나치다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아...’

내 직감이, 조용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되물었다.
“제가 도움 필요한지, 어떻게 아셨어요?”


순간,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체념이 함께 섞여 있었다.

마치 자신을 숨기려는 듯했다.


그리고 문득, 내가 도와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순간, 나 또한 그녀에게서 위로받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눈이 잘 안 보여서요. 남편이 쉬는데 방해될까 봐

몰래 산책을 나왔는데, 이렇게 됐어요."


그녀의 말끝에 애달픔이 묻어 있었다.


“길에서 누군가와 부딪치며

‘앞 좀 잘 보고 다니세요.’ 하는 말이

가슴을 푹 찌르곤 해요.


그럴 땐,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말이 내 가슴을 울렸다.


한쪽만 남은 내 시력보다도,
곱지 않은 시선이 남기는 어둠이

훨씬 깊게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저도… 한쪽 눈이 안 보여요.”


그녀의 놀란 얼굴빛에서,
나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나의 상처를 마주했다.


“앞으로는 숨기지 말고,
‘제가 잘 안 보여서 그래요.’ 하고 당당히 말하세요.”


그 고백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우리의 만남은 서로의 어둠을 마주한 인연이었다.


오랜 세월 마음 깊이 묻어둔 아픔을
조심스레 꺼내놓는 그 순간,
우리 둘 사이에는 따뜻한 빛이 번져 들었다.


어둠이 짙을수록,
그 빛은 더 선명해지는 법이니까.




한쪽 눈의 시작, 미뤄진 치료


한쪽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은,

남편이 병원 치료를 받을 무렵부터였다.


안과 진료에서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술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때의 나는 내 시력보다 남편의 병환이 더 위급했다.


요즘 피로해서 그런가? 충격 때문일 거야.
“조금만 참자, 곧 회복되겠지.”
그 결정이 내 시력을

천천히 어둠 속으로 밀어 넣은 줄도 모르고 버텼다.


남편이 떠난 뒤,

나는 살아내야 했다.
아이들의 학비와 나의 학업,
그리고 하루의 생계를 위해 눈을 혹사했다.

박사과정을 이어가며 낮에는 대학에서 강의하고,
밤에는 과외와 출판 일을 이어갔다.


그때는, 피곤하다는 단어조차 사치였다.


치료는 미룰 수밖에 없었다.
살아내는 일이 더 급했으니까.


그렇게 나의 밝은 시간은 흘러가고

차츰 시야가 흐릿해지고 사물이 뭉개져 보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조용히 말했다.


“한쪽 눈은 이미 빛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더 늦추면 반대쪽 눈까지 위험합니다.”


그 말은 마지막 경고이자 판결 같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앞으로 제대로 걸어갈 수 있을까,

여기쯤에서 멈춰 서야 할까.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끝이 아니야.”


그 속삭임이,
내 남은 시야를 붙잡은 마지막 빛이었다.




혼자 맞선 두려움과 결정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사물의 윤곽이 희미하게 번졌다.


강의 중에 글씨가 겹쳐 보일 때마다

'실수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결국 병원을 다시 찾았다.


지방 대학병원에서는 서둘러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마음속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 서울의 큰 병원에서 정확히 진단을 받아보자.’


그 길은 멀고도 외로웠다.


새벽부터 서너 번이나 교통수단을 갈아타 겨우 서울에 닿았다.

혼자 서울의 병원 네 곳을 돌며 진료와 검사를 받았다.


육 개월쯤 지난 후, 결과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시신경 부위에 종양이 있습니다. 더 늦으면 위험합니다.”


그중 한 병원의 진단은 달랐다.

"악성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개복수술을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병원의 의사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비록 명의라고 이름이 나 있었지만,
마치 내 몸이 누군가의 실험대 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병원에서 아무리 99%라고 해도,

그 나머지 1%가 나에겐 100% 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 병원의 진료를 포기했다.


내 병은 내가 결정해야 했고,
환자도 의사만큼 자기 질병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무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속에서도

‘나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이 더 앞섰다.


뜻밖의 보호자 나타나다


담담한 척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작은 공포가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


두려움보다 더 무거운 건,
이 모든 과정을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대기실의 풍경은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양가 부모와 배우자, 자녀의 손을 꼭 잡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인 나는,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진단서를 들고 밤마다 자료를 읽고,
교수에게 물을 질문을 정리했다.


나는 나의 환자이자, 나의 연구자였다.


결국 네 곳 중 한 병원에서
안과와 신경과 교수들이 협진을 거듭한 끝에
감마나이프 시술이 최선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개복 대신, 정밀한 빛으로 시신경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2019년, 세상이 팬데믹으로 멈춘 그 시기—
나는 오랜 진료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치료의 문턱에 다가설 수 있었다.


그리고 2020년 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3박 4일간의 입원 끝에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날, 간호사가 보호자를 찾았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제 보호자입니다.”


간호사는 잠시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음날 새벽,
아들이 병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와 내 손을 잡았다.


“엄마, 이제는 내가 엄마 보호자야.”

그 말과 함께, 아들은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순간, 나는 삼종지도를 떠올렸다.

어느새 내 아들이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내 안의 빛이, 조용히 다시 깨어나는 찰나였다.




한쪽 눈으로 버틴 삶

제때 치료하지 못해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나는 여전히 남은 눈으로
나의 삶을 지켜내고 있다.


남편 대신 젖은 등짐을 짊어지고
버텨온 스물다섯 해.
그건 용기이자, 때론 배짱이었다.


일흔의 나이를 마주한 나는

더 이상 눈을 혹사할 일이 없다.


한쪽 눈으로도 세상을

찬찬히 꿰뚫어 보는 통찰을 지니게 되었다.


잃은 것은 시력이었지만
얻은 것은 ‘멈춤의 지혜’였다.


이제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


그 시선이 오늘의 나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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