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아동학대 피해로 파생된 정신적 고통
우리 가정을 둘러싼 허위적인 소문은 여전히 온 동네에 무성하고 사실을 알리고자 나간 뉴스가 사람들이 믿지를 않는 기괴한 상황 속에 나는 대놓고 힘들었고 남편은 묵묵히 힘들어했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정신건강의학과를 함께 찾아갔다.
피해사실에 마음이 가뜩이나 아파죽겠는데 이런 억울한 상황들까지 겹쳐 내 아이의 등원, 하교시간 마저 집 밖을 나가기 싫었던 당시의 나.
남편은 스트레스로 피부가 다 뒤집혀 피부과를 다니고 머리도 빠져서 탈모약을 먹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이미 그 선생님에게 괴롭힘을 받았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지만 그때의 나는 걱정을 하면서도 상담을 하고 올 정도로 심각성이 보였음에도 집에 와서는 청소를 해놓고 또 잠시 티비를 보고 낮잠을 잤을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너무 괴로웠다.
아이를 더 빨리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상당했다.
나는 일생생활에 나도 모르는 순간적인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도 그 죄책감에 멈춰서 계속 웃지 못했다.
그 가벼운 웃음조차 아이에게 내가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또 그 선생님에 대한 가장 큰 분노와 원장님, 주변 소문을 낸 사람들 등등 모두에게 화가 잔뜩 났고 독기가 온몸에 퍼졌다. 사람이 다 싫었다. 가족도 싫고 타인은 더더욱 싫었다. 당시 사람을 사람이라고도 부르기 싫고 '인간'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엄마인 내가 이러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갈까 싶어 또 정신을 차려보려고 노력하고 또 잘 안되어 며칠을 슬픔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일어나려고 노력했다가를 반복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되레 내 눈치를 보았다.
그걸 아는데도 내 정신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여기서 이사를 가면 간단한 것을 반대를 해 사람을 여기 두고 감옥같이 이 좁은 동네에 살아야 하는 것이냐고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남편은 그러면서도 피해자가 이사를 가면 안 된다며 지금은 아니라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결국 남편과 나는 정신과 선생님을 만났고 부부 동반으로 진료를 받았다.
정신과 선생님을 보자마자 이야기를 쏟아내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크게 어떤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 분노의 감정을 말하는 나보다 남편을 선생님은 더욱 걱정했다.
힘들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조심스럽게 남편분이 더 걱정된다는 말을 전해줬다.
이해가 되었다. 힘든 상황 속에 표출하는 방식은 누구나 다 다르니까.
각자 다르게 많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견딜 수 없을 때는 버텨야 되는 일도 있지만 이렇게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병원에서 약을 받아왔고 나는 자기 30분 전 약을 먹었다.
사실 지금은 그 약을 먹으면 편안하게 잠이 들지만 그 당시에는 달랐다.
약을 먹어도 잠이 안 들어 밤을 새기도 하고 또 다음 날은 역시나 못 잘 것 같아 미리 약을 두 알을 먹고 세 알을 먹었다.
다음 주기가 되어 병원에 가서 선생님에게 말을 하니 그러면 안 된다고 위험하다고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시 잠도 한숨 자지 않고 여러 밤을 새웠지만 정신은 말짱하고 독기 서린 나만 남았다.
우리 아이가 선생님에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한 그 순간 혼자만이 본인을 지켜야 했다면,
나도 잠을 잘 수 없는 그 새벽 나를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죄를 짓지 않았고 피해를 받은 피해가정이니 당당하게 다니려고 노력을 했고 밖에서는 소위 '척'을 하고 지냈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건강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인간'을 경멸하고 지냈는데 말이다.
나의 정신과 진료 기록부에 주상병은 우울에피소드, 보조상병은 비기질성 불면증, 상세불명의 불안장애였다.
이런 사정을 아는 그 어린이집의 원장이나 구청에서도 우리 가정을 지켜주지 않았다.
그런 우리 부부는 우리보다 중요한 내 아이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소아정신과를 또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