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금기어처럼 절대 내뱉지 않는 말들이 생겼다. 말의 힘은 참으로도 커서 우리를 견고히 세우기도 하지만, 손쉽게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몸이 안 좋아 공공장소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때 응급실에 홀로 누워 조용히 다짐했다. 절대로 이 일에 대하여 자신에게 '왜'를 묻지 않기로.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그냥 알아차렸던 것 같다.
우울을 겪는 지금도 그때와 같은 다짐을 새겼다. 이 일에 대하여 그 어떠한 경우에도 이유를 묻지 않기로.
이해하기 어려운 시간들이 찾아오면, 이상하게도 그 이유들을 찾아 나서고 싶어진다.
난 어쩌다 이러한 순간에 도착해버린 것일까. 길을 어디서부터 잘못 들었던 것일까.
왜 나는 지금 이 순간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 수많은 '왜'들은 블랙홀처럼 중력이 있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끌어당긴다.
무거운 질문들의 중력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다면 멀리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중심을 지킬만큼의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요즘 나에게 '왜'는 꺼내지 않는 금기어가 되었다. 대신 무수한 질문들이 솟아날 때면, '그래'라는 대답을 대신 들려주기로 했다.
그래, 여기가 지금 너의 현 위치야.
그래,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그래, 이제부터 나만의 삶을 천천히 걸어가면 돼.
언제나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믿는다. 어제는 스스로에게 짐을 지웠다면, 오늘은 그러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다.
나의 매일매일의 선택들과 작고 어설픈 긍정들이 모여, 다가올 내일을 지금보다 더 빛나게 만들어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